영화 밀정의 실제인물 김시현 의사

무명객혼돈 작성일 16.09.05 09: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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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구 김시현(1883~1966)은 항일독립운동가이며 부인 권애라여사와 함께 의열단으로서 무장독립운동의 중추였으며

 

해방후에는 2번의 국회의원 당선까지 되나 이승만 암살을 직접 주도해서 사형을 선고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 8년간의 옥살이를 마친 의인이십니다

 

하지만 이승만 암살배후로 인하여 독립유공자 훈장 하나 못 받았다고 하더군요

 

영화 보는데 스포일러가 잇을까봐 간단한 약력과 몇몇 말씀만 소개하겠습니다

 

그의 약력

 

29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전문부를 거쳐 법학과를 만학으로 다니다가 1917년 귀국하여 1919년 만세시위 때 경북 상주에서 상주헌병대에 체포되었다가 탈옥한 후 상하이로 망명했다.

 

1920년 9월경 의열단이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할 목적으로 국내에 폭탄반입 시도에 가담하다

대구에서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년간 투옥되었다.

 

1922년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저격사건에 가담, 소위 ‘황옥 사건’으로 체포되어 7년간 투옥후 1930년에 출옥했다.

 

난징 비밀 군관학교를 설립하여 활동하다 1933년 베이징에서 체포되어 5년간 투옥되었다.

 

1944년 또다시 체포되어 복역하던 중 광복을 맞이하여 출옥하였다.

 

-------------------------일제강점기 6번 투옥에 19년 수감생활-------------------------------------

 

출옥하면서 고려동지회 회장으로 활동하여 1950년 2대 민의원(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52년 백범 암살 배후로 이승만을 지목하여 유시태를 통해 저격을 시도 계획이 실패하여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후 1960년 4.19혁명으로 석방되었다.

 

해방 이후 또 7년 수감생활

 

독립운동과 독재타도로 인한 수감생활이 도합 26년 수감생활 거기다가 독립유공자 인정도 못 받음

 

재판당시의 발언

 

8월2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저격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김시현은 사실심리에서 암살시도 동기를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이 대통령은 독재자이며 정실인사를 일삼을 뿐만 아니라 민생문제를 해결할 역량도 없다.
6·25 발발 6개월 전부터 북한은 전쟁준비로 분주했음에도 정보에 어두웠다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이고,  “개전 이튿날 방탄차를 타고 도망가면서 백성들에게는 안심하라고 뱃속에도 없는 말을 하고  한강철교를 끊어 시민들의 피란을 막았으면 국가원수로서 할복자살을 해도 용납이 안될 판에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으니 어찌 대통령이라 하겠는가”또한 “국민방위군사건·거창양민학살사건 등으로 민족 만대의 역적이 된 신성모(申性模·1891~1960·전 국방장관)를 죽이기는커녕 되레 주일대사를 시키는 그런 대통령을 그냥 둘 수 없었다”  “암살 후 누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에 둔 사람은 없으나 누가 하더라도 이승만보다는 나을 것” 이라고 말한다.  의열단의 ‘7가살(七可殺)’  1919년 만주 지린성(吉林省)에서 의열단을 창단할 때 처치해야 할 일곱 부류의 인간들을 규정했다.  1. 총독부고관 2. 군 수뇌 3. 대만총독 4. 매국노 5. 친일파 6. 밀정 7. 반민족적 토호 147303607369794.jpg14730361109490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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