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긴 하지만, 나는 현 박 대통령을 지칭할 때마다 꼭 '박근혜', 이름 석자를 억지로 붙여 대통령이라 칭한다. 내가 몹시 소심한 탓도 있겠지만, 그저 '박 대통령', 이렇게 표기하면, 아버지 박 대통령이 자동적으로 떠올라 기분이 몹시 불쾌해지고 섬뜩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도 한때 공산분자였으니, 그 피를 그대로 이어받아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박근혜 대통령은 친북 좌파인 것만 같다. 자신의 모든 책임을 항상 북한을 끌어들여 모면하려들기 때문이다.
모든 게 북한 탓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가뜩이나 국가 경제도 어렵고 북한의 핵실험과 연이은 도발로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단정하면서, 일체의 정부 비판적인 행동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위기와 사회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 역정을 내기도 했다. 말하자면 현재의 사회적 위기와 문제점들을 대부분 북한 탓으로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북한과 박근혜 대통령은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북한 사회가 존속하는 한, 그리고 북한이 핵실험을 계속 자행하는 한, 박근혜 정부가 저지르는 모든 부조리, 불법, 비리 등이 모두 다 합리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속으로는 박근혜 정부 스스로가 북한이 계속 핵실험을 감행해주길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자신의 무능, 무지, 무모함이 다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재수 장관의 해임건의안조차 '비상사태'에 직면한 한국적 현실에 대한 안이하고 무책임한 정치적 책략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폄하해버린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연일 터져 나오는 '비선 실세' 의혹, 요컨대 '최순실 게이트(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에 대해서도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에 다름 아니라며 일축해버린다. 어쨌든 비리가 터질 때마다 "일각이 여삼추가 아니라 삼추가 여일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조급한 마음" 자세로 언제나 '비상사태'를 촉발하는 북한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 마디로 박근혜 정부는 현재 '북한 없이는 잠시도 연명할 수 없을 정도'라고 스스로 자백하고 있는 것처럼 비칠 정도다. 친북좌파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일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북한에 읍소할 수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정신적 국유화 조치와 다를 바 없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역시 사회주의자처럼 밀어붙이지 않았는가. 마치 유치원생 수준의 정치를 보는 것만 같다. 유치원생은 자기 잘못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3무(無)
박근혜 대통령은 '3무(無)'를 자랑한다. 무능, 무지, 무모함이 바로 그것이다. 지극히 사소한 사례 몇 가지만 들어도,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 무지, 무모함의 실체를 금세 눈치 챌 수 있다. 예컨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무분별한 처리, 사드배치의 졸속결정, 개성공단의 천진난만한 폐기처분 등은 무능의 상징이다. 아울러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의 즉각적 거부는 신경질적인 무모함의 표출이다.
그리고 광복절 경축사에서 "안중근 의사께서는 차디찬 하얼빈의 감옥에서 유언을 남겼다"라고 슬프게 열변을 토한 것은 무지의 습관적인 발로, 그 자체였다. 왜냐하면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당시 러시아 영토였던 하얼빈 기차역에서 일본의 초대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저격했지만, 현장에서 체포돼 중국의 뤼순 감옥으로 옮겨져 거기서 사형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앙받는 의사의 한 분께서 거사를 벌인 장소와 숨진 장소를 -초등학생 정도면 다 알 수 있는 사실임에도- 대통령께서는 안타깝게도 혼동해버린 것이다.
얼마 전 어느 매스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위기의 대통령"이라 역설한 적이 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들추어내면, 위기를 만들어내는 장본인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라 할 수 있다. 현 정부는 '창조경제' 대신에, '창조위기'의 기획 및 실행자 노릇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 정부는 정치적 위기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정치 자체의 위기를 창조해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복잡할 게 없다. 간단하다. 정치란 국민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일, 그 자체다. 하지만 현 정부는 청년실업률 12.5%(2016년 2월 기준)로 역대 최고를 기록케 함으로써, 국가의 미래를 암담하게 만들고 있다. 나아가 자살률은 10년 넘게 OECD 최고를 기록한다. 10~30대 사망원인의 1위가 다름 아닌 자살로 드러날 정도로 참담한 실정이다.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이렇게 통탄할 정도다.
박근혜표 민주주의의 실체
우리 국민은 지금 양면의 절망적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참담한 현실과 암담한 미래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물론 정치 자체가 위기에 빠짐으로써 더욱 더 심화한다. 이러한 실정(失政)이 박근혜 정권의 책임이 아니라면, 과연 우리는 어디서 그 책임의 소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도 그걸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지금껏 한 번도 이러한 실정(失政)을 자인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박근혜 대통령이 "비상시국 운운하면서 지진, 북핵, 최악의 민생경제, 창조경제 게이트, 우병우 수석 비리 등등 온갖 문제가 겹겹이 쌓이고 있지만 모두가 네 탓이요, 자기 탓이 아니라는 말만 되뇌고 있다"고 통탄할 정도다.
박 위원장은 때때로 촌철살인의 말 비수를 날리기도 한다. 박 위원장은 "경복궁이 무너지면 대원군 묘소에 가서 따질 것인가, 경부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국립묘지 박정희 대통령 묘소에 가서 따질 것인가"하고 조롱조로 되묻는다. 나아가 그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 반 동안 5번의 북한 핵실험 중 4번이 일어났다"며 공박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회에 거대야당이 들어섰다. 이러한 현상은 총선을 통해 드러난 준엄한 민심의 발로, 그 자체다. 그것은 현 정부에 대한 도도한 국민적 불만의 민주적이고도 직접적인 표출인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마치 남의 나라 일인 것처럼 오불관언(吾不關焉)으로 일관한다. 국정 실패 및 인사 참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오만과 독선이야말로 현 정권의 본질 그 자체다. 이것이 바로 박근혜 표 민주주의의 실체인 것이다.
야당도 항상 남 탓
물론 야당도 그리 탐탁한 편은 결코 아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조차 내세울 만한 성과를 보여주는 게 거의 없다. 피아노 때리면서 피아노를 배우듯이, 야당은 항상 남만 탓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수제자처럼 항상 남 탓, 즉 정부 탓만 되풀이하는 법만 배운 것 같다. 야당은 대안을 제시하면서, 스스로 난국을 타개해나가는 자율적 역량을 키우고 발휘해나가야 할 것이다.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적의 적이 때로는 자신의 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음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예컨대 <교수신문>은 지난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로 '혼용무도(昏庸無道)'라는 어휘를 제시한 바 있다. 어리석고 용렬한 군주를 만나 무도한 정치가 행해졌음을 지적하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어느 한 날카로운 투사형 논객은 지금은 "용기 있는 투사형의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최소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 YS의 우직한 용기가 필요하고, 서슬이 퍼렇던 반공법과 중앙정보부의 무지막지한 탄압이 난무하던 그 시대에 '무모하게도' 연방제 카드를 줄기차게 주창했던 DJ의 패기가 필요한 때"라고 안타깝게 목청을 돋운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아니 기회를 일부러 만들어가면서까지, 거의 모든 지면에서 구구단처럼 수없이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해온 소소한 소신을 하나 갖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다원화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해관계의 상호충돌이 필연적이다. 따라서 협상과 타협이 필연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칙 없는 타협을 우리는 야합이라 부르고, 타협 없는 원칙을 독선이라 칭한다. 우리의 정치세계에는 바로 이러한 야합과 독선이 판쳐왔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근엄하게 그 정상에 앉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원칙을 준수하는 타협'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대통령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진정으로 행복하고 번창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언제쯤 끝이 날까?
다른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국민들께 드렸던 약속을 지금 이 순간까지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며, "국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만들어드리고, 더 나아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선물하는 게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라 역설하며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듯한 발언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소인배로서, 삼가 박근혜 대통령께 다음과 같이 간곡한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다. 이제는 부디 "국민들께 드렸던 약속"을 얼른 잊어주시고, 앞으로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선물"할 생각을 아예 모조리 다 접어달라고 엎드려 빌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의 정치현실을 흘낏 한 번만 쳐다봐도, 어찌 이러한 소인배다운 당부말씀이 절로 심장 밖으로 굴러 나오지 않겠는가. 우리의 현실이 참담의 극을 달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수준을 한껏 저급하게 낮추어서, 부디 '최소한의 형식적 민주주의'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이행해주셨으면 하는 기막힌 바람으로 자신을 달랜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대통령 자신이 워낙 무능하고 무지하고 무모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실낱같은 희망마저도 절망으로 뒤바뀔 것만 같아 가슴이 아프다. 언제쯤 끝이 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