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대(1997년)와 17대(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로 나섰던 허경영씨는 요즘 잔뜩 화가 나있다. 정치인들이 독창적인 자신의 과거 대선공약을 마구 베끼고 있다며 수차례의 유투브 강연을 통해 격정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네티즌 사이에서 간간이 회자되던 허 전 후보의 과거 대선공약의 내용은 2014년 3월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자신의 SNS에 분석글을 올리면서 새롭게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편승해 일간신문, 종편채널, 인터넷방송 등이 앞다투어 관련 기사나 허 전 후보와의 인터뷰를 다뤘다.
심지어 이재명 성남시장은 2015년 10월 고려대 강연에서 "허경영씨를 존경한다"며 복지정책과 관련해 "나라에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도둑놈이 많아서 그렇다는 그의 말에 100% 공감한다"고까지 말했다.
돌이켜보면, 그의 20년 전 대선공약은 군소 후보로서 시선을 끌기 위한 것일 뿐 실현가능성이 희박해 보여서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 당시 많은 국민들과 정치인들은 황당하게 보이는 그의 대선공약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고 그를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기회주의자로 치부해 버렸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황당했던 그의 대선공약들이 하나둘씩 실현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허 씨의 20년전 15대(1997년) 대선공약의 주요내용을 보면 상당부분이 현실화됐거나 또는 현실화의 가능성이 높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정도면 허경영이 정치인이 아니라 족집게 점쟁이처럼 보일 정도다.
물론 허 씨가 단지 일부 대중의 희망사항을 잘 모아서 인기에 영합하는 공약을 제시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10년전인 17대(2007년) 대선 공약을 보면 달라지고 만다.
지금은 모두가 동의하지만 10년전만 해도 고령화, 독신증가, 저출산, 청년실업 등의 이슈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허 씨가 이미 10년전 이를 정확히 진단하고 또 구체적인 해법까지 제시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종종 보이는 정치 외적인 기이한 행보(예: 예능, 기치료 등)를 무시한다면 그를 가히 정치천재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런 신박한(신기하다는 의미의 인터넷 용어) 상황에 네티즌과 언론이 흥미를 가지고 주시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20년전의 대선 공약이 이제 와서 마법처럼 현실화되는 상황을 흥미거리 정도로 웃어 넘기기에는 왠지 씁쓸하다. 저성장, 양극화, 고실업 등의 경제적 위기와 자국중심주의적 국제질서 위기에 불구하고 사회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도덕불감증이 날로 더해가기 때문이다.
사실 허경영의 과거 대선공약은 여러 국민들이 예전부터 사석에서 서로 주고받던 내용들과 유사했다. 그럼에도 그의 대선공약이 혁명적으로 보여졌던 것은 소위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기성 정치집단의 사익추구 행태에 염증이 난 국민들의 정치 허무주의 때문이었다.
아웃사이더 허경영은 기성 정치인과 달리 그 당시 국민의 마음을 가감 없이 대변했을 뿐이며 그의 과거 대선공약이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한치 앞발도 내딛지 못하는 무능한 썩은 기성 지도층에 대한 염증과 반발 때문이다.
지난 26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상공회의소 CEO 조찬간담회에서 “국민이 국회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현실의 10%에 불과하다”며 “국회의 실상을 알게 되면 국민은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털어 놓았다. 이제 국민들은 두 얼굴의 기성 정치인들의 모습에 진절머리가 난다.
기성 지도층이 금권의 늪에 빠져 정쟁과 사리사욕 추구 집단으로 낙인 찍히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남의 정책공약이나 따라 하는 무능한 집단으로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모습이 한심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