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닭년

간디옵하 작성일 16.11.01 10: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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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오른쪽)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012년 12월 16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방송국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에서 토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2012년 12월16일 저녁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말했다.
“참여정부 때 등록금이 가장 많이 올랐어요.”

그러자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가 물었다.
“그럼 이명박 정부 때 왜 반값등록금 안 했습니까?”

이에 박 후보가 답한다.
“제가 대통령 됐으면 했어요. 대통령 되면 할 거에요.”

잠시 뒤 문 후보가 다시 물었다.
“과학기술이 이렇게 추락하는 동안 박 후보님은 뭐하셨습니까.”

박 후보가 같은 답을 되풀이한다.
“그래서 대통령 되려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날 저녁 있었던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 TV토론은 일종의 징조이자 경고였다. 돌이켜 보면 그날을 비롯한 3차례의 TV토론은 박 대통령의 언어 구사 능력, 지적 수준, 타인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 등을 가늠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자리였다.

이전까지 국민들이 그에게서 들은 말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국회의원 시절 그는 민감한 정치사회적 이슈에서는 입을 다물었고, 별명처럼 수첩에 적힌 말을 읽었으며, 기껏 입을 열어도 짧은 문장에 불과했다. 기자들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그의 평소 생각을 알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날의 TV토론을 지켜 본 많은 사람들은 그때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박 후보의 말에는 “왜”와 “어떻게”가 없었다. 절차와 과정, 수단과 방법이 배제된 목적만 있었다. 이후 그의 공약들이 거짓말로 결론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였다.

그런데 우리 정서상 “말 잘 하는 사람” 혹은 “달변”에는 이상하리만치 인색하고 박하다. 오히려 말수가 적은 사람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을 무턱대고 믿는 일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어쨌든 말과 글로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특별한 ‘노력’도 없이 박 후보는 대통령이 됐다.

그의 ‘과묵한’ 습관에 대한 의문은 최순실씨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완벽하게 풀렸다. 평소 중요한 국가적 사안에 대해 말이 없었던 것은 진중한 성격 탓이 아니라 별로 아는 게 없어 말을 못했다는 것을. 임기 내내 조악한 수준의 단어 선택은 그렇다 치고, 왜 지금껏 그 흔한 토론이나 기자회견이 없었는지, 그럼으로 해서 왜 ‘불통’이란 비판을 자처했는지 이제는 알게 됐다.

국민 어느 누구도 그가 미리 써놓은 수첩이나 프롬프트(관객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배우에게 대사나 동작 따위를 일러 주는 일) 연설문 외에 긴 호흡을 갖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의 말에서 기억에 남은 것이라곤 숱한 ‘비문’들과 ‘유체이탈’ 화법 뿐이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90초짜리 사과문’이 있다. 공부와 고민의 결여에서 오는 스피치 능력의 부족이다.

통상적으로 대통령은 국가적 중대사를 결정할 때 끊임없이 숙고하고, 논의하고, 토론하고, 소통한다. 관련 보고서들을 쌓아 놓고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읽고 또 읽는다. 청와대 참모나 장관들과 장시간 회의를 하며 국민에 의견을 묻고, 고심과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린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중대사 결정은 속전속결이었다. 개성공단 폐쇄, 한국사 국정교과서, 일본군 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등의 결정 과정에서 고민이나 공부, 소통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과연 이 모든 결정이 정치외교적 전략에 따른 판단이었을까. 개성공단만 해도 보통의 대통령이라면 그 이후에 불어 닥칠 우리 기업의 피해와 같은 후유증, 중장기적인 남북관계를 충분히 헤아린 뒤 폐쇄 여부를 결정했을 것이다. 대통령이라면 큰 그림뿐만 아니라 ‘디테일’에도 강해야 한다.

그러나 통보만 있었을 뿐 변변한 사후대책조차 없었다. 개성공단은 그 경제적 효과는 둘째 치고, 그로 인해 따라오는 안보효과는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상징적 존재다. 가뜩이나 우리 경제가 힘든 마당에 이런 결정을 그리 쉽게 내린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알 것 같다. 개성공단 폐쇄 명분을 이성적, 논리적으로 설명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더욱이 최씨가 이런 무거운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있다고 하니 소름이 돋는다.

최씨의 조언을 들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당시 박 대통령은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감정적인 입장만 강조하고 폐쇄를 발표했다. 개성공단이 폐쇄된 이후 과연 북한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고 얌전해졌는가. 더 길길이 날뛰고 있지 않은가.

지금 분노한 국민들이 하야와 탄핵을 요구하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게 된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사실상 언론의 책임이 가장 크다. 대통령 자질이 부족한, 함량 미달의 사람을 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한 죄다. 지금의 사태는 이 정권의 이익과 부합하거나 혹은 압박을 못 이긴 언론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절반 가까운 국민들이 의아해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언론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박 대통령에 대해 검증을 생략하거나 외면해왔다. 검증은 커녕 찬양 일색이었다.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가 대표적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도록 방임하고 응원함으로써 박정희와 최태민의 사자(死者)한풀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지금 대다수 미국 언론이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의 과거 행적을 샅샅이 뒤지고 낱낱이 알리는 검증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보라.

1년여 뒤 우리는 차기 대통령을 뽑게 된다. 여러 명의 후보들이 나올 것이다. 평소 그들이 보여준 말과 글, 행동을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 언론은 검증, 또 검증해야 한다. 다시 똑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사태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또다시 ‘정상의 비정상화’를 방조해서는 아니 된다. 대통령 자질을 챙기기 이전에 사회인으로서의 자질부터 봐야 한다.

다시 4년 전 대선 TV토론장으로 돌아가 보자. 박 후보는 토론 내내 다른 후보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과거만 보고 미래를 안 본다”고.

이에 대해서는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이미 60여년전 답했다. 그는 나치 부역자들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려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게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승형 건설부동산부장 sean120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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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utu.be/J43t74ZCo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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