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3일 저녁 열린 영화 <자백> 관련 간담회는 조금 특별했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파헤친 해당 작품이 입소문을 타며 어느새 누적관객 수 10만을 넘긴 가운데 국정원의 생리와 구조를 보다 자세하게 들을 기회가 마련됐기 때문. 안기부의 북풍 공작을 고발했고, 국정원 조직도를 최초 공개하는 등 20년 넘게 국정원 전문기자로 활동한 김당 기자가 함께 자리했다.
▲ 지난 3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자백>의 시사가 진행됐다. 시사 후 <시크릿파일 국정원>의 저자 김당 기자(좌측)와 최승호 감독의 간담회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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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3일 개봉 이후 관객과의 대화 행사가 꾸준히 있었지만 이날만큼은 보다 입체적으로 국정원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자리였다. 영화 말미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국내에서 활동하는 간첩이 2만 명이라 주장하는 것을 점잖게 반박하듯 김당 기자는 "김대중 정부 때 신건 전 국정원장이 '왜 간첩을 못 잡고 있냐'는 질문에 '없으니까 못 잡는 것'이라 답한 바 있다"며 "북한 입장에서도 이젠 간첩을 보내느니 차라리 구글을 검색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조작질과 헛발질
전반적으로 국정원의 헛발질 사례를 말 그대로 '조곤조곤' 언급하는 시간이었다. 최근 저서 <시크릿파일 국정원>을 출간한 김당 기자는 "그간 국정원 직원은 50명 정도 만났고, 그래서 조직도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며 "그것과 함께 1998년 대통령 인수위원장실에서 실질적인 조직표를 봤다. 그래서 공개할 수 있었다"며 취재 비화부터 언급했다. 그간 이어졌던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 "국정원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역할 확대를 위해 벌인 것"이라 진단한 그는 "유우성씨나 그 이후 홍강철씨 사건 역시 국면 전환을 위해 만든 일"이라 설명했다.
조작과 국면 전환이라면 선거개입을 빼놓을 수 없다. 최승호 감독이 <시크릿파일 국정원>의 집필 취지를 언급하며 국정원의 댓글 조작 사건을 언급하자 김당 기자는 "댓글 공작으로 인한 표를 계량화 할 순 없지만, 계량화 할 수만 있다면 탄핵감"이라며 "국정원 조직이 가담한 것이기에 국가범죄임이 틀림없다. 여론 형성이 중요한 선거에서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그렇죠. 계량화가 안 돼서 그렇지 된다면 큰 문제입니다. 실제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검사가 기소하려 했는데 당시 검찰총장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못하게 지시를 해서 국정원법 위반만 적용했잖아요. 선거법위반이 적용됐으면 박근혜 당선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문제 삼을 수 있었을 텐데 황교안씨가 방패막이가 된 셈 아닌가요." (최승호 감독)
▲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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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의 핵심인 간첩조작에 대한 대담이 이어졌다. 유우성의 동생 유가려씨의 진술 번복 등에서 조작의 징후를 포착한 최승호 감독이 "허위자백을 위해 사실상 유가려씨를 고문한 국정원의 합동심문 시스템 등이 잘못됐음에도 국정원은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간첩으로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그에 맞게 증거물 또한 왜곡하고 조작한 국정원을 과연 믿을 수 있을지 최승호 감독이 물었다.
"1970년대부터 간첩조작의 유형 중 가장 많은 게 영사 기록물 조작입니다. 재외공관에 가면 대사와 공사가 있거든요. 외교부 공사와 국정원 공사 두 명 체계로 돼 있습니다. 국정원 직원이 해외에 나가 있는 건데 간첩 행위를 했다는 확인서만 떼 주면 그게 재판에서 증거로 쓰입니다. 그런 식의 (간첩 조작) 방법이 많이 쓰였는데 유우성씨 경우처럼 출입국 기록 자체를 위조한 경우는 없었죠. 최승호 감독님이 큰 역할을 하신 겁니다." (김당 기자)
"전 국정원의 미련함을 느꼈는데요. 자료를 검증하지 않습니다. 엉터리 자료를 보내도 재판부에서 받아들이니 국정원 입장에선 과학수사를 할 필요가 없지요. 그런 식으로 일 한 겁니다. 유우성씨 사례에서 국정원이 수렁에 빠진 게 중국에 남아 있던 증거를 과소평가해서거든요. 총제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기구 아닌가 생각합니다. 과연 결정적 순간에 결정적 정보를 왜곡하거나 날조하지 않으리란 법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북한이 핵미사일 쏠 것이니 우리가 선제 타격해야 한다는 등의 일도 있을 수 있고. 사실 이건 미국 소관이긴 하지만요. 이런 식의 정보를 믿을 수 있을지. 굉장히 위험한 기구 아닌가요." (최승호 감독)
관객들이 묻고 이들이 답했다
대담 이후 관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대체적으로 국정원의 생리와 그 조직에서 일하는 이들에 대한 궁금증이 주였다. <자백>을 관람한 중년 남성은 "국정원 직원들이 생활인이기도 한데 그간 잘못에 반성하는 사례가 있었는지, 앞으로 국정원이 바뀔 희망은 없는 건지" 물었고, 다른 중년 여성은 "국정원을 보완하거나 해체할 가능성도 있는지"를 물었다.
"과거 정부와 비교하면 확실히 (국정원의 생리가) 드러납니다. 적어도 김대중, 노무현 10년 동안엔 한 번도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한 일이 없었어요. 근데 김영상 정부 시절 안기부는 북풍으로 직접 개입했고, 총풍 사건도 있었으나 미수에 그쳤죠. 이명박 정부 땐 댓글 조작이 있었고요. 이걸 보면 정권이 바뀌면 국정원이 기본적 중립은 지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도 나름 엘리트들이에요. 그럼에도 상명하복 문화가 군대보다 더 센 곳이기도 합니다. 국정원장 지시를 거스르기 힘들다는 거죠. 내부 고발자 제도가 갖춰진다면 좋겠지만 일단 대통령과 국정원장이 누구인지가 중요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을 수술하긴 했습니다. IMF를 맞았을 당시 국정원도 인원을 11% 정도 줄였고요. 노무현 정부 들어서 두 차례 개혁을 진행했습니다. 그 이후 국정원의 힘이 빠진 건 사실입니다. 예전 중앙정보부가 검찰을 통제하던 것에 비하면 빠진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개혁해야 합니다. 수사권을 검경에 돌려줘야 할 필요성은 있죠." (김당 기자)
베일에 싸인 국정원 직원들 자체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위장 단체 소속으로 일하는 건지, 서로에 대한 경조사는 챙기는지 등 호기심이 어린 질문이었다.
"현행법상 국정원장과 정무직인 차장들 기조실장까지만 신원을 공개하고 나머진 공개할 수 없습니다. 국정원 직원은 당연히 외부에 공개 안 합니다. 가족에겐 어떻게 하냐고요? 제가 만나본 직원에 따르면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진 숨겼다고 하더라고요. 서울대 교수라 하는 사람도 있고(웃음). 의료보험카드에도 국정원 직원으로 안 나옵니다. 심지어 이혼을 했을 경우 위자료 때문에 남편 월급을 산정하려 해도 알려주질 않아요.
국정원 직원은 한 번에 100명 정도를 뽑는데 1년 동안 교육받습니다. 전반기 6개월은 기숙사에서 삽니다. 기혼자도 마찬가지고요. 후반기엔 출퇴근 하며 교육을 받는데 그래서 동기의식이 굉장히 강합니다. 자기들끼리 모임도 갖고요. 경조사 물론 가지요. 그런데 신분 공개가 안 되잖아요? 결혼하거나 상을 당해도 직원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식장에 국정원장 화환이 있으면 아, 직원이구나 추측은 가능합니다." (김당 기자)
▲ 영화 <자백>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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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을 준비하며 어떤 압력이나 압박은 없었는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최승호 감독과 김당 기자 모두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김당 기자는 "취재 기자 시절 세 번 정도 국정원에 끌려가 조사받은 적은 있었다"고 전했고, 최승호 감독은 "압력을 주는 게 오히려 언론인을 도와주는 일"이라며 "명예훼손으로 국정원이 절 고소한 일은 있었지만 법정에서 완벽히 이겼다. 언론이기에 그런 압력은 공개하면 된다"고 취재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20대 대학생의 마지막 질문이 이어졌다. "아버지 덕에 <자백>을 보게 됐다"며 그는 "젊은 친구들이 현재에만 관심 있고 다른 이면엔 관심 없는 게 사실인데 세상 돌아가는 걸 어떻게 제대로 알 수 있을지"를 물었다.
"젊은 친구들 진짜 어려운 요즘이죠. 예전엔 KBS나 MBC 뉴스를 좀 보거나 신문만 좀 봐도 돌아가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요즘은 도통 믿을 수 없으니, 이 언론 저 언론 찾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뭐가 사실인지 헷갈리는 시대입니다. 방송은 JTBC 하나 보세요. KBS나 MBC는 절대 보지 말고요. 종편도 웬만하면 안보는 게 건강에 좋겠고, 신문은 한겨레나 경향 보시고, 오마이뉴스도 봐주세요(웃음). 뉴스타파도 가끔 봐주시고. 정보를 찾아다니며 노력하면 동시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최승호 감독)
박정희 시대의 종말
▲ 지난 3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자백>의 시사가 진행됐다. 시사 후 <시크릿파일 국정원>의 저자 김당 기자(좌측)와 최승호 감독의 간담회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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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당 기자의 마무리 발언이 이날 간담회의 주제였다. 현재 이어지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 파문 등을 떠올리며 김당 기자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국가의 불법행위와 조작행위로 국가가 개인에게 배상한 액수가 2500억 원입니다. 최근 국정감사 자료를 보니까 그 액수가 훨씬 늘었더군요. 통계를 보니 박정희 정부 시절 간첩 조작으로 배상한 돈이 전체의 49%, 그 다음이 전두환인데 24%예요. 세 번째가 이승만 정부인데 14%였고요. 다 합치면 얼마죠? 90% 정도. 그러니까 공권력 범죄에 대한 배상액의 90%가 세 정부에서 벌어졌다는 겁니다.
95건의 간첩조작사건이 있었는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없었어요. 그리고 새롭게 집권한 보수정권에서 두 명의 조작 사건이 나왔잖아요. 정권에 따라 국정원의 행동이 다를 수 있음을 확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국가 배상액은 다 국민 세금이고, 그것의 절반이 박정희 정부 때문에 생겼죠. 박근혜는 박정희의 자산과 정신을 승계한다는 사람 아닌가요? 그 신화 덕에 대통령이 된 거고요. 당연히 부채도 승계가 되니 국민은 박근혜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1200억 세금을 쏟아 부었으니까요. 박정희 체제의 종말을 고하는 여러 사건이 있지만 그 한 축을 <자백>이 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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