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재림과 7년 환난의 연속선상에 있는 지구

말라카오 작성일 17.01.21 03: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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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웬 천동설?

 

모두가 천동설을 믿던 중세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것은, 당시에는 반역적인 행동일지 몰라도 현대에 돌아보면 새로운 발상이자 합리적인 과학적 방향으로 돌아선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기 전에 나를 변화시키는 것을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라고 지칭하기도 하는데, 물론 이 말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지구가 돈다고 인정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었으니 나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에 부담을 갖지 말자는 의미인데, 나도 과거에 잘 모르고 이런 논리를 편 적이 있다.

그러나 믿기 어려워도 이것은 큰 실수이다. 나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나 성경과 하나님을 등져야만 가능하다는 면에서 실수라는 것이다.

 

성경에 반하는 지동설의 역사는 무척 오래된 것이지만 본격적인 주장은 BC 3세기 경의 고대 알렉산드리아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후대에 성경을 부패시킨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주는 것일까? 어쨌든 지동설은 16세기경 코페르니쿠스의 반쪽 이론이 그의 사후에 주목받아 케플러 등을 통해 완성되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과학자들이 계산을 통해 태양의 크기를 알아내고, 위치 이동에 따른 거리와 수치 등을 계산한 것은 당연히 천체와 지구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어느 편을 기준으로 측정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사실 진화론자들에게 천동설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처럼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우리가 천동설을 믿는 데는 우선 상식과 과학으로도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과학자들도 종교적 편견 없이 천동설을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공전, 즉 태양 주변을 1년에 한 번 도는 속도는 연중무휴로 초당 약 30km이며 자전, 즉 지구 스스로 매일 한 바퀴씩 덤블링(?)하는 속도는 초당 약 460m이다. 이처럼 엄청난 지구의 공전과 자전 속도를 인간이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는 것이 가장 첫 번째의 단순하고 상식적인 이유인데, 지구가 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 시간에도 공전과 자전으로 도합 초속 35km에 가깝게 원을 큰 그리며 수평이동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저항감이 없는 이유는 관성의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 등으로 이 모든 것이 설명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대운동이기 때문이다. 에른스트 마하(마흐, E. Mach)는 뉴턴의 절대운동 이론에 반대해 상대운동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마하의 원리이다. 한마디로 우주가 도는지 지구가 도는지는 아무도 밝혀낼 수가 없고, 보는 관점과 기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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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마하. 음속을 뜻하는 '마하'라는 단위는 그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굳이 돌고 있는데 안 어지럽다고 애써 판단할 이유가 없으며, 성경이 틀렸다고 하면서까지 지동설을 붙잡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처음 저항을 받은 이유도 성경과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실험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하나의 세계관과 철학의 변화에 있어서 이슈를 선점한 사건이다. 최소한 지동설의 명백한 입증은 불가능하며, 오직 가상의 이론으로만 가능하다. 그런 차원에서는 천동설도 입증 불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동설이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여호수아 사건과 지동설의 충돌

 

그런 것들은 뒤로하고, 우리에게 가장 권위 있는 성경적으로 본다면 어떨까. 창조과학자들도 천동설을 주장하는 것은 비상식적으로 느낀다. 아니, 천동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없을 만큼 지동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창조과학계에서 천동설을 논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들어본 일이 없다. 나는 2010년 말에 나온 <30가지 테마로 본 창조과학>에 한 과학자가 쓴 '지진' 부분 중 지구의 회전에 대한 언급 부분에 주석으로, 현대에도 천동설을 주장하는 이가 있으며 그것이 성경적이라는 것을 첨가해 놓긴 했지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다.

 

한 번은 허블 망원경을 통해 태양이 은하계 안에서 2억 6천만 년이 걸리는 큰 궤도를 그리며 돌고 있다는 것을 주장한 이들이 있었는데, 일부 창조과학 관련자들이 이것이 성경에서 해가 움직인다는 내용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태양도 미세하게 움직인다는 의미지만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튼 이 시대에 천동설을 주장하는 것은 창조론 진영에서조차 생소한 일인 것은 틀림없다고 하겠다.

다음은 태양이 멈추었던 사건에 관한 여호수아서의 기록이다.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아모리 족속을 넘겨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주께 아뢰고 또 이스라엘의 눈앞에서 이르되, 해야, 너는 기브온 위에 멈추어 서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해가 멈추어 서고 달이 멈추어서 마침내 백성이 자기 원수들에게 원수를 갚으니라. 이것이 야셀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냐? 이와 같이 해가 하늘 한가운데 머물러 서고 거의 하루 동안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더라. (수10:12~13)

 

이 사건에 대한 잃어버린 시간(거의 하루, 23시간 20분)이 수학적으로 계산되었다고도 하고, 그에 대한 반론도 있지만, 일단 나는(우리는) 성경에 기록돼 있으므로 사실로 믿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과학자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믿으려고 할지 모르겠다. 이것을 믿는다는 것에는 큰 덩어리가 함께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마치 성경이 한 부분만 골라서 믿으면 계속 모순에 빠지고 결국 그 믿는다는 부분에 대한 믿음도 거짓일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가 멈춘 것을 그대로 믿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해가 멈춘 것을 지동설적으로 믿으면 매우 큰 문제가 발생한다. 해가 거의 하루 동안 멈췄는데 지동설이면, 즉 지구가 도는데 해가 멈춘 것처럼 보이고, 그 태양이 한 곳만 비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바로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멈춰야 한다. 최소한 자전은 멈춰야 한다.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길까.

 

지구가 돌고 인간이 만유인력과 관성의 법칙에 따라 불편 없이 살고 있다가 지구가 멈춰버린다면 지구에는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모든 사람과 물건은 지구 바깥쪽으로 높이 떠올랐다가 떨어질 것이고, 건물이 붕괴되며, 바다가 넘치고 호수도 쏟아져 노아의 홍수에 버금가는 일대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자전의 중단만으로도 1초에 30km의 속도로 달리다가 멈춰버리는 것과 같은 효과일 테니까 말이다. 물론 해가 멈추는 사건이 끝나고 다시 돌기 시작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을 것이다. 속도를 서서히 줄였다가 다시 천천히 재시동(?)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이 사실을 지동설을 믿는 크리스천 과학자들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이 해가 멈춘 사건을 믿지 않거나 지동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이 사실이라면 지구가 멈추거나 태양이 움직여야 하며, 성경대로 믿으면서 지동설을 택한다 해도 태양이 큰 원을 그리면서 지구의 도는 각도를 따라와야 하니 어차피 지동설은 붕괴된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펼치심

 

우주는 무한의 큰 공간이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므로 고정돼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무한한 우주도 어차피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이다. 빅뱅이 비논리지만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들도 깨달은 부분이다. 우주의 생성에 대해 창조론적으로 가장 타당한 것은 '씨앗우주론', 즉 '펴지는 우주론'이다. 씨앗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꽃봉오리에 꽃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것처럼, 겨자씨만 한 믿음이 부실하고 작은 믿음이 아닌 것처럼, 작지만 그 안에 모든 것을 담고 있다가 펼쳐진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창조 당시에는 지금 수억 광년 떨어진 별빛이 관측될 정도로 가까웠다고 보는데, 실제로도 빛의 속도는 과거로 갈수록 무한대라고 한다. 성경도 이런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분께서 하늘들을 휘장같이 펴시며(stretcheth out) 그것들을 거주할 장막같이 치시고 (사40:22 하반)

 

그분께서 자신의 능력으로 땅을 만드시고 자신의 지혜로 세상을 굳게 세우시며 자신의 분별로 하늘들을 펼치셨도다(stretched out). (렘10:12)

 

인간이 다 이해할 수도 없는 이 공간도 하나님이 펼쳐 만드신 곳이며 이 우주가 별들을 품고 땅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가 멈추는 것도 그 공간에서 이루어진 일이며 지구에 어떤 해도 입히지 않았다. 조금 더웠을지는 모르지만.

하나로 묶여 있는 시간과 공간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쥐었다 폈다 하실 수 있으며, 해를 멈추는 일도 작가가 집필 중인 소설의 한 구절을 고치는 것보다 더욱 간단한 일일 것이다.

 

 

 

태양은 움직이고 땅은 고정돼 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땅이 영원할 것이며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땅의 기초들을 놓으사 영원히 움직이지 아니하게 하셨도다. (시 104:5)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하늘은 나의 왕좌요, 땅은 나의 발받침이라. 너희가 나를 위해 짓는 집이 어디에 있느냐?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에 있느냐? (사66:1)

 

여기 하나님의 왕좌가 있는 '하늘'은 셋째 하늘로 볼 수 있고, 땅은 땅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우주팽이처럼 두 지점은 그대로 있고 가운데 하늘이 움직이며 우주의 균형이 팽팽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땅이 흔들린다는 표현이 여러 곳에 있으나 주 하나님의 분노로 땅이 떨며 흔들린다는 표현들은 지구의 회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주의 날'에 땅을 흔들어 움직이게 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땅의 '제 자리'가 있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내가 만군의 주의 진노 가운데서 그의 맹렬한 분노의 날에 하늘들을 흔들며 땅을 제 자리에서 움직이게 하리니 (사 13:13)

 

한편 "그분께서는 북쪽을 빈 곳에 펴시며 땅을 허공에 매다시고(욥26:7)"라는 구절의 '매달다(hangeth upon)'라는 표현도 매달아 고정시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며, 돌게 하거나 움직이게 한 것이 아님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1611년의 용례는 모르겠지만 hang on은 '꽉 잡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지구가 우주에 매달려 있는 반면에 태양은 움직이고 순환한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해가 하늘 끝에서부터 나아가며 그것의 순환 회로(circuit)는 하늘 끝들에까지 이르나니 해의 열기에서 숨을 것이 없도다. (시19:6)

 

또한 주의 날에는 해가 어둡게 되지만 자기 길로 나아간다고 했다. 나아가는 자기의 길이 있다는 것이다.  

 

하늘의 별들과 하늘의 별무리들이 빛을 내지 아니하고 해가 자기 길로 나아가도(going forth) 어둡게 되며 달이 자기 빛을 비추지 아니하리로다. (사13:10) 

 

전도서에도 해가 서둘러 자기가 떠올랐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또 해는 뜨고 해는 져서 자기 처소 곧 자기가 떴던 곳으로 속히 돌아가고(hasteth = hastens) (전 1:5)

 

이는 눈에 관측되는 현상을 묘사한 것일 수 있지만 성경은 그런 표현 속에서도 늘 진실을 말하고 있으며, 그리스 신화에서처럼 해를 나르는 신이 수레에 태양을 싣고 매일 동쪽에서 서쪽으로 간다는 식의 표현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무엇보다 앞서 살펴본 여호수아서의 말씀이 이미 해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해가 멈추어 서고 달이 멈추어서 마침내 백성이 자기 원수들에게 원수를 갚으니라. 이것이 야셀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냐? 이와 같이 해가 하늘 한가운데 머물러 서고 거의 하루 동안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더라. (수10:13)

 

멈추어 서고, 머물러 서고, 내려가지 않고... 등의 표현은 원래는 움직인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므로 성경을 받아들이려면 땅의 고정을 믿을 수밖에 없고, 지동설을 주장하려면 성경의 창조를 신화로 여기는 수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어떤 위성에서도 지구의 도는 모습은 촬영된 적이 없다. 아무도 촬영하지 못 했다. 왜냐하면 전혀 돌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 우주과학 기술로 골프공까지 촬영한다는 인공위성이 왜 하루에 한 바퀴씩 도는 지구의 모습을 잡아내지 못하는 것일까? 왜 지구가 도는 모습은 모두 그래픽인가? 지구는 무수히 많이 사진으로 보이지만 지구가 도는 것이 촬영된 일은 전혀 없다.  

 

 

지동설과 천동설이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주제가 아니고, 또한 측정에 있어서 상대적인 것이므로 굳이 이 문제로 다른 크리스천을 설득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지만, 성경을 믿는 것은 전체를 믿는 것이고, 선택적으로 골라서 믿을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은 취하면서 창조의 원리에 대해서 다르게 이해하는 것은 모순이다. 나의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는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 그 자체가 되시며 처음에나 지금이나 동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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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재림과 7년 환난의 연속선상에 있는 지구


최근 지구촌이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기상이변과 경제난, 해수면 상승, 미얀마의 사이클론과 중국 쓰촨 성의 대지진을 비롯해 광우병과 조류독감 등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는데, 특히 자연재해는 그 횟수와 규모와 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우선 이것이 불신 민족들에 대한 징계라고 정죄하는 이들이 있지만, 열대성 저기압인 '사이클론'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태풍임에도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인구가 밀집된 지역을 지나갔기 때문에 많은 인명이 희생된 것이며, 쓰촨성 역시 부실공사가 만연된 지역이기 때문에 더욱 큰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더욱 강력한 토네이도가 출몰하고, 일본 등지에서도 큰 지진들이 있으며, 유럽에는 이상 한파와 광우병 등이 발생하므로 반드시 특정 지역에 대한 징계로 보기는 어렵다. 한편 그토록 낙후한 지역이 존재하는 것은, 공산주의와 무슬림 등 반성경적 사상을 용납한 결과라는 측면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징계를 일부 거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역사의 시간표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땅에 죄가 들어오면서 인간과 지구는 태엽을 감았던 시계처럼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법칙에 의해 모든 것은 결국 부패하고, 생물은 죽음을 맞이한다. 지구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이제 사람들은 지구에서 많은 인구가 지속적으로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우주를 개발하는 등 갖가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해 가신 것처럼 다시 오실 재림의 시기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아무도 그날을 알 수 없지만 깨어서 주목하며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들려 올라간 후에는 지구에 7년간의 환난이 이어지고 그 이후에 땅이 새롭게 되면서 천년왕국이 지구에 들어설 것이다. 예수님이 전한 천국 복음은 모두 이런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복음이며, 7년은 뒤늦게 회개할 이스라엘 백성들 일부와 극소수의 이방인들이 전무후무한 고통을 견디고 구원받는 마지막 기회다. 
주님의 재림이 없다면 이 지구는 계속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는데, 어두운 전망이 많다. 먼저 수질이 오염되고 있는데, 각종 쓰레기와 하수 오물을 바다에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발생되는 탄소는 온난화를 가속시켜 태풍을 점점 강력하게 만들고, 전염병의 위험을 높여 이제 우리나라도 수도권까지 말라리아 등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인구 폭증으로 식량의 위기가 현실이 되고 에이즈와 광우병·조류독감, 사스 등의 전염병과 유행성 질환도 늘어간다. 토지의 부식과 도시화로 인한 작물 재배 지역의 사막화로 황사가 심해지는 지역도 많으며, 열대 삼림의 파괴로 점점 열기가 식지 못하고 생태계 교란을 초래한다.
재림 이후 7년 환난의 기간 중 전 3년 반 동안은 일곱 봉인과 일곱 나팔의 재앙이, '대환난'으로 불리는 후 3년 반은 일곱 대접의 재앙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이후 지구는 에덴에 있던 동산과 같은 상태로 복원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이 지금부터 환난의 시기까지 지구에 일어난다는 뜻이다.

 


앞으로 지구에 닥칠 일들과 창조물이 겪는 고통의 이유


7년 환난 시기에 일어날 예언들을 보면, 지구 환경이 그런 상황들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때가 되면 기근이 닥치고, 바람이 불지 않으므로(계 7:1)

 

온난화로 증발한 물은 내륙으로 이동하지 못해 대기권으로 올라가 노아 때 비로 내린 궁창 위의 물(수증기막)을 회복시킬 것이다. 지하수는 고갈되고 목초지는 황폐해지며 초원과 산에 대규모의 산불이 발생한다(계 8:7). 강물이 마르고(계 16:12) 태양은 권능을 받아 빙하와 만년설을 녹이며 낮은 지역의 도시와 섬들과 산은 물에 잠기게 된다(계 16:20). 소행성들이 지구에 충돌하고(계 6:13) 강력한 지진이 나서 큰 도시가 세 조각으로 갈라진다(계 16:18~19).
이 모든 것은 아마겟돈 전쟁으로 끝이 나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주님은 이 땅을 천년왕국에 적합한 땅으로 새롭게 만드신다. 큰 깊음의 샘들이 회복되고 극지방은 평야가 되며 궁창 위의 물이 회복되어 폭우를 내리지 않고, 오존층은 복원되고, 인간과 동물은 모두 방주 사건 전처럼 초식성으로 돌아간다. 수명도 예전처럼 길어질 것이다. 


이렇게 대환난의 징조들은 지금 인류가 걱정하는 사안들과 (바람이 불지 않게 되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하다. 이 성경의 징조들을 살펴보면 그것들이 7년 환난이 시작되면서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나고 있다. 세계적인 물 부족, 기근과 식량난, 만년설의 붕괴, 그리스와 미국의 산불, 아시아의 황사, 아마존 등 삼림의 파괴, 중국과 미국 및 일본 등지의 대지진 등은 앞으로 올 대환난의 전초전을 보는 듯하다. 
오늘날은 세계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지구에 닥친 많은 어려움의 이유를 알 수 있는 말씀이 있다.

 

"피조물이 간절히 기대하며 기다리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헛된 것에 복종하게 된 것은 자진해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소망 중에 그것을 복종하게 하신 분으로 인함이라. 이는 피조물 자신도 썩음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런 자유에 이를 것임이라. 또 모든 창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 (롬 8:19~22).

 

아담의 범죄 이후 만물에 질병과 부패와 죽음이 들어왔고, 사람은 마귀의 자녀로 태어나게 되었다. 모든 피조물은 무질서에 노출되어 점점 더 신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고통은 하나님께서 '소망 중에'복종하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피조물들은 큰 탄식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소망하고 있는데, 바로 구원받아 맏아들 되신 예수님의 형제요, 하나님의 아들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들림 받고 7년 후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시키실 천년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나타나는 그때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마지막 때가 가까움을 알 수 있는 세태와 징조들


피조물뿐 아니라 심지어 성령님께서도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신다고 하셨는데(롬 8:26), 이 고통은 '산고'이다. 고통이 커질수록 해산의 기쁨이 있는 고통의 끝이 다가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깨어 준비하고 기다리라고 하신 재림의 날이 가까웠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마지막 날들에 위험한 때가 이르리니 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1~2)

 

이 여러 가지의 현상 중에 비교적 덜 익숙한 두 가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먼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복음이 세상의 풍조와 혼합된 오늘날에는 '자기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크리스천들까지 지배한다.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느냐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면서 그것이 먼저 자기부터 사랑하라는 뜻이라고 그럴듯한 말로 가르친다. 그러나 이런 '자기애'는 성경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상이며 이는 어떤 것보다 더 큰 우상숭배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


주님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에 이르도록 그것을 보전하리라"고 하신다(요 12:25). 또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다(마 16:24). 


다니엘은 의인이었는데도 '자기 자신을 징계하기로 결정한 날부터' 하나님이 그의 말을 들으시고 마지막 때의 비밀을 알려 주셨다(단 10:12).

인간 중에 가장 큰 자였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은 반드시 흥하여야 하겠으나 나는 반드시 쇠하여야 하리라"고 고백했다(요 3:30).

 

이처럼 우리는 자기 생명을 미워하며 주님의 품에 안길 날을 사모하고, 바울이 경고한 마지막 날들의 현상들과는 반대로 살아야만 할 것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강도가 심해질 것이다. 최근 모 방송국에서 인간 사회에서의 신의 존재에 대해 인본주의적으로 접근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교계가 시끄럽다. '종교의 자유'라는 큰 틀에서 이루어진 이 프로그램은 일반적인 학술적 접근을 표방한 것으로, 원색적 비방보다 표현 자체는 완곡하지만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한 차원 높은 모독이라 할 수 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어지러운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에게 경고와 해답을 함께 주고 있다.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태워지리라.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해체될진대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냐? 모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서두르라...." (벧후 3:10~12)

 

누가 뭐라든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이 우리의 본분이다. 거룩함이란 따로 떼어 구별하는 것이다. 거룩과 경건은 낡은 구호로 여기고 무조건 즐겁고 행복하고 풍족하고 승승장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것은 자기 사랑이요, 탐욕이며 많은 이들이 찾는 '사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지구에 사는 모든 창조물과 인간들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조차) 점차 그 신음과 고통을 더해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재림의 소망 중에 인내하며 모든 창조물의 고통이 끝날 그날을 깨어 기다려야 한다. 세상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리고 거룩히 행하며 그날이 가까움을 시급히 전파해야 할 것

 

하늘의 계시를 받아먹고 와서 
이 계시를 지시받은 대로 전하실때 계시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 속에 
마귀 신이 있기 때문이요 범죄자의 유전자 즉 마귀의 씨로 났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씨로 다시 나야 하나님의 신 성령이 함께하시게 된다
태초의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생명이며 
하나님의 생명의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고(눅 8:11) 하나님의 씨로 난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이는 옛 사람이 아니요 다시 난 새 피조물인 하나님의 나라(천국) 백성이 되고
성도는 누구나 신약 계시 말씀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야
천국 갈 자격을 갖게 될것이다
계시를 받은 약속의 참 목자는 만민들도 계시받아 
하늘의 참뜻을 깨달아 믿고 천국 가족이 될수있다

---불철주야 불신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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