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 그림 하나가 대한민국을 다시 '표현의 자유' 논란을 촉발시켰습니다.
문제의 작품은 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주최하고 '표현의 자유를 향한 예술가들의 풍자 연대'가 진행하고 있는 그림전 '곧, BYE, 展'에 걸려 있는 '더러운 잠'이라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인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것으로 창 밖으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고 박근혜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며, 박근혜의 몸 위에는 그녀가 청와대에서 키우고 있는 진돗개 2마리가 놀고 있습니다. 배 근처에는 아버지 박정희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사진과 미사일이 놓여져 있습니다. 박근혜의 옆에는 주사기 다발을 든 최순실이 선글라스를 머리에 끼고 앉아 있습니다. 세월호 당시 희생자들을 구하지 못했고, 사고에 대한 책임감 있는 지도자 역할을 하기보다 자신의 시술에 더 신경을 썼다는 루머에 근거해 풍자가 들어가 있는 그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그림이 '나체'라는 이유로 비판을 합니다. 더 나아가 여성인 박근혜를 홀라당 벗겼다는 이유로 '여혐'을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그림은 풍자와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 한 인격체를 모독하고 여성을 희화화했다고 뜨겁게 비판받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하자면, 그림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마네의 '올랭피아'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합니다. 마네가 '올랭피아'라는 작품을 출품했을 때에도 지금과 같은 뜨거운 논란이 일었습니다. 당시 문화 분위기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문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그림들은 주로 역사와 신화를 그렸습니다. 당연히 그 대상은 비너스와 같은 여신이나 님프. 하지만 마네의 작품은 현실의 매춘부를 그대로 그려냈습니다. 작품의 이름인 '올랭피아' 자체가 당시 매춘부 이름으로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그림 속 여성은 매춘부였고, 곁에 있는 흑인 여성은 남성 손님이 선물한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표현기법이나 피사체 등등 모든 것이 당시의 예술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더욱이 예술을 독점하던 '고상한 관객'들에게 싸구려틱한 그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작품 속 여자가 거만하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으니 얼마나 맘에 들지 않았을까요? 작품을 보기 전 성매매를 한 남성이었다면 그 부끄러움이 분노라는 형태로 포장되어 나왔을 것입니다.
못 생긴 여성이라고 할 지라도 자신의 성욕을 만족시킬 수 있다면 괜찮다는 식의 남성들의 욕망을 절묘하게 패러디하고 있는 이 작품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집니다.
다시 '더러운 잠'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저는 이 그림이 그림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충분히 풍자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줄 수 있다고 봅니다. 박근혜는 세월호 비극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이 있을 뿐더러 표현의 방식에서 그녀를 모독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나체? 이것은 마네의 올랭피아에 표현된 그대로의 그림이고, 실제 박근혜의 나체도 아닙니다. 어떤 대상을 보는 해석은 모두 달라질 수 있지만 오히려 풍자의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 나체에만 신경을 쓰면서 이를 인격 모독이니 여혐이니 이렇게 보는게 이상하다고 봅니다. 작가의 메시지는 다른 곳에 더 핵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박근혜가 너무나도 밉기에, 새누리당이나 바른정당이 아닌 민주당 소속의 국회의원이 구설수에 올랐기에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블로그를 예전부터 들어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저는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표현의 자유가 윤리를 넘어설 수 없다고 봅니다. 이때문에 과거 아이유의 zeze를 강력 비판했었습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 제제는 가족으로부터 학대를 받는 아이입니다. 매일매일 맞고, 무시당하면서도 말썽을 멈추지 않는 제제. 이를 두고 아이유는 제제를 섹시하다고 생각했고, 제제를 성적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고, 다시는 자신처럼 가족으로부터 학대를 받는 아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듬뿍 담긴 작품입니다. 작품의 해석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지만 학대로 인해 아픔이 가득한 아이를 성적대상화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표현의 자유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유태인 학살을 피해 숨어서 지내는 안네. 그런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기를 쓰는 여유를 보여주는 모습에서 섹시함을 느꼈다.
영화 '아이엠샘'에서 다코다 패닝은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아버지의 딸로 어렵게 살아감에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섹시함을 느꼈다.
아이유의 zeze가 표현의 자유로 인정을 받는다면 안네도 다코다 패닝도 성적 대상화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집니다.
민주주의의 성숙함, 권력의 허용범위에 따라서 정치인들의 권력 지분은 달라지지만 정치인은 일반인들보다 많은 혜택을 받고 살아가기에 그에 따른 비판과 책임도 함께 존재합니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기에 풍자도 폭넓게 허용이 됩니다. 단지 그 풍자가 어떤 정책이나 과도한 세금과 같은 것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젠더 혹은 외모와 같은 것에만 맞춰진다면 그 풍자는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풍자의 수위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은 외국
오늘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더러운 잠'이 만약 마네의 '올랭피아' 속 여인의 나체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 촬영된 누드 사진에다가 박근혜 얼굴을 붙여 놓았다면 저는 그림 자체에 큰 비판을 쏟아부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원작의 차용 후에 풍자를 하였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오히려 저는 이 그림의 문제보다 박근혜 탄핵 국면과 자연스럽게 이어질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과 그 후보들이 입을 데미지에 주목합니다. 분명히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이번 일을 가지고 물고 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의 지지도가 40%를 넘고, 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대선후보인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이 30%를 육박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민주당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논란이 될 수 있는 사건을 자초하고 말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격을 받을 빌미를 주게 되었습니다.
지금 민주당과 그 대선후보들은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합니다. 전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말년병장의 심정으로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도 조심스럽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기득권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그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기회만 호심탐탐 노리고 있는 그들에게 공격거리를 스스로 내어주면 어떻게 하나요?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