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간 친구들의 뜻을 따라 죽는 날까지 민주화 운동과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하다 간 문익환 목사
문성근 씨는 20일 자신의 트위터에 “김기춘씨가 고령을 핑계로 불구속을 호소했을거 같아 기억을 되살려 드립니다. 문익환 목사는 통산 6회에 걸쳐 11년 3개월 감옥살이를 했는데 마지막 5, 6번째 구속될 때는 나이 70세가 넘었고, 그 때 법무부 장관이 김기춘씨였습니다”라고 남겼다.
지금은 고인인 문익환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이며 통일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참여시인이었다. 문익환 목사는 1989년 통일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는 당시 진보 기독교인들의 인식에 따라 북한을 방문, 김일성 주석과 회담했으나 정부와 사전 협의 없는 독자적인 방북이어서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잠입죄’로 투옥돼 1993년 석방됐었다.
일제 강점기, 황군 장교였던 '박정희'(좌)와 독립군 '장준하'(우)
장준하 선생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가, 종교인, 언론인, 사회운동가로서,
광복군으로 재직 중 미국 CIA의 전신인 OSS 활동을 하다가 귀국. 김구의 비서로 있다가 민족청년단 활동하였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52년 문교부 국민사상연구원 기획과장, 서무과장, 사무국장 등을 지내고 《사상계》를 창간하였으며, 1956년 동인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사상계》는 당시 자유당 정권을 규탄하며 4·19 혁명의 단초가 되었으며, 혁명 이후 제2공화국에서 장면내각의 문교부 대학교육심의회 의원, 국토건설단 기획부장, 국토건설단장 등을 지냈다.
5·16 쿠데타 이후 한일회담 반대운동, 베트남 전쟁 파병반대운동에 가담. 6대 대선에서 윤보선의 지지 유세 중 박정희의 친일파,남로당 경력을 문제삼았다가 국가원수 모독죄로 옥고를 치렀고, 1975년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어 군사정권의 의문사로 남았다.
'장준하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공동위)의 의뢰에 따라 장 선생의 유골 등을 부검, 감식한 법의학 전문가 이정빈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이날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국민보고대회'에서 장 선생 머리뼈 골절과 엉덩이 뼈 골절이 따로 일어났다고 결론을 내리고 "머리 가격을 당해 사망한 후에 추락해 엉덩이뼈 골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머리뼈 골절과 관련해 "망치보다는 아령이나 돌과 같은 물체로 가격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