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 영정 앞에서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아"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피해자의 입장을 배제한 한·일 위안부 합의는 잘못됐다." "대한민국 국민은 한일협상을 거부한다."
2015년 12월31일 오전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를 주장하며 일본 대사관에서 기습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1년3개월이 흐른 지난 21일 검찰은 이 시위에 참가했던 대학생 1명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예상치 못한 검찰의 실형 구형에 피고인석에 섰던 김샘씨(25)는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심란한 심정에도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다'라고 생각한 그는 천천히 최후변론을 이어나갔다.
지난해 1월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한일협상무효 토요시위에 참석한 김복동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일본대사관에서 기습시위를 벌였다가 연행당했던 김샘씨를 위로하고 있다. 2016.1.2/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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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몇십년간 싸워온 할머니들의 삶은 고려하지 않고 단 몇시간 만에 합의를 한 것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은 합의로 많은 사람이 상처받았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나서 문제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승적 타결'이라는 내용의 긍정적인 보도만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합의 내용의 문제점을 알려주는 사람이 필요했었습니다. 판사님이 잘 판단해 주시길 바랍니다."
최후변론의 내용처럼 김샘씨가 기습시위를 하고 소녀상을 지키며 노숙 농성을 했던 이유는 '사실'을 알리고자 함이었다. 2015년 12월28일 소위 '최종적·불가역적'이라는 수식이 붙은 '한·일 위안부 합의' 결과가 발표됐을 때 김샘씨의 휴대폰으로는 '축하한다' '다행이다'라는 연락이 왔다. 지인들은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된 것으로 알고 그에게 그런 내용의 연락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샘씨가 보기에 위안부 합의 내용은 피해자 당사자들에게 전혀 축하할 일도, 다행인 일도 아닌 또 하나의 '싸움의 대상'이 만들어진 일이었다. 외교부는 협상을 진행하며 한차례도 당사자인 피해자 할머니들의 입장을 묻지 않았다.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마치 이 문제가 해결된 듯한 보도가 이어졌다. 그래서 그는 피켓을 들고 이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일본 대사관에 안 갔으면, 농성을 안 했으면 이 내용이 묻혔을 것 같았어요. 항의 방문이랑 농성을 시작한 이후에 언론에 나오기 시작하니까 한일 합의가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은 퍼센트로 나왔어요. 결국 나서서 행동한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사람들에게 위안부 합의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알리게 됐지만 김샘씨 개인의 삶은 더 힘들어졌다. 일본 대사관 시위 이후 곧바로 경찰에 연행됐고 풀려난 직후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12월30일부터 시작한 농성을 이어나갔다.
한겨울에 시작한 농성은 63일이 지나서 끝났다. 영하 20도의 추위에서도 경찰이 농성을 도로 위에서 진행하는 '미신고 불법집회'라고 규정해 한겨울을 방한 텐트도 없이 비닐과 침낭으로만 버텨야 했다. 김샘씨는 "농성 기간 동안 몸이 안 좋아져서 아직도 아픈 곳이 있다"고 말했다.
농성은 그렇게 끝났지만 김샘씨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재판이 있기도 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아직도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김샘씨를 만난 김복동 할머니는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라며 분노했다.
김샘씨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는 한국 정부가 최선을 다했다고 보지 않아요. 독일의 경우도 독일 사람들이 단순히 착했기 때문에 그렇게 사과한 게 아니잖아요. 주변 국가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어요. 사실 중국에도 필리핀에도 심지어 북한에도 엄청나게 많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있는데 이들과 함께 연대해서 일본을 국제적으로 압박할 노력을 한국 정부는 하지 않았어요. 일본이 그렇게 사과하길 바라는 것보다 하게 만드는게 필요하죠."
지난 2015년 12월 31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건물에서 대학생 30명이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규탄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 뉴스1 DB
김샘씨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면서도 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위안부 문제 해결에 힘써볼 생각이다. 앞으로 얼마 안 있으면 돌아가실지 모르는 할머니들의 영정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싶다는 게 그의 말이다.
김샘씨는 현재 이 사건 말고도 3가지의 사건에 대해 재판을 받고 있다. 소녀상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구호를 외친 것, 국정교과서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이순신 동상에 올라 기습시위를 한 것, 2014년 열린 농민대회에 참석했다가 도로로 행진한 것, 이 3가지가 그에게 부여된 혐의들이다. 비슷한 집회·시위에 관련 사건들이고 같은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지만 재판부가 사건을 병합하지 않아 김샘씨는 한달에 4차례 꼬박꼬박 법정에 나가고 있다.
사회 문제에 참여 한다며 휴학을 2년 반이나 했기에 학업을 더는 미룰 수도 없는 시점이지만 재판으로 인해 김샘씨의 시계는 더 더뎌지고 있다. 이제 대학 동기들은 다 졸업을 했고 학과 사무실에는 후배가 앉아서 조교를 하고 있다. 그는 이제 친구들보다 조금은 늦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해서 보았던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은 평범한 국문과 학생이었던 김샘씨를 전공보다는 국제 분쟁, 전쟁, 전시 성폭력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도 '정당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고 행동하게 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제는 해결되지 못할 문제' '이제는 타협해야할 문제'라고 이야기할 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대학생에 대한 선고가 오는 4월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내려진다.
소녀상 함께 선 김샘씨 모습? New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