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라면의 아픈역사 또다른 썰(펌)

tpboy 작성일 17.06.08 09: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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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밑에 농심 불매글 보고 궁굼해서 찾아보다...퍼왔어요149688084457351.JPG 

삼양의 아픈역사(펌글)

60년대 중반 세상에서 한국보다 더 배고픈 나라가 없던 시절에 서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방법으로 
라면시장에 뛰어든 기업이 삼양식품 전중융사장임. 
단백질 보충을 위해 소고기를 원료로 한 스프로 국물을 만들고 
저가 팜유가 아닌 값비싼 소 우지로 면을 튀긴 라면이 삼양라면임. 

질 좋은 원료로 만들어서 저가로 팔았기 때문에 5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절대 가격을 올리지 않았음.
그런데 삼양라면이 20년간 써온 2등급 소고기 우지가 폐기물오일인 것처럼 조중동에서 보도 하는 바람에 라면시장을 농심(롯데 회장과 형제)에 넘겨줬다. 

이때 조사한 검찰의 검찰총장이 김기춘,,,,그는 후에 농심 이사로 재직한다.

박정희대통령도 유일하게 믿고 세무조사를 하지 않았던 기업은 유한양행과 삼양식품 뿐이었다.

타사의 라면은 MSG화학조미료를 퍼넣지만 삼양라면은 MSG를 넣지 않는다.

67년 당시 창업주 전중융 사장이 남대문 시장을 걷다가 
꿀꿀이 죽이라도 얻어 먹으려고 기다리던 가난한 어린이들을 보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한참동안 눈물을 흘린 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그 잘나가던 제일생명을 팔고

그 돈으로 일본에 구걸하여 기술을 이전받아 만든 대한민국의 유일한 양심적 먹거리 기업이기 때문이다. 

 

추가

 

사실과 다른 점이 있어요
삼양식품 창업자 전중윤은 일제 때 총독부 체신국 보험과에서 일하다가 
해방 후 동방생명, 제일생명의 임원이 되었습니다.
전중윤이 라면사업에 뛰어든 건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김종필, 박정희의 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전중윤은 516 이전부터 김종필과 친분이 있는 관계였습니다.
박정희로부터 해외 차관의 특혜를 받은 전중윤은 
과거 총독부 근무 시절의 연줄을 통해 일본의 묘조식품(현 닛신식품)과 기술제휴 계약을 맺습니다. 
삼양공업주식회사에서 삼양라면이 처음 나온 건 1963년이고
스프엔 아지노모토(MSG)가 첨가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라면 스프에서 MSG가 빠진 건 2005년 농심으로부터이고
2006년 MSG 유해성 논란을 거치면서
농심은 2007년부터 전 제품에 MSG 무첨가 표시를 달게 됩니다.
이후 삼양도 MSG를 넣지 않은 제품을 출시하게 되고요.

사족 : 
농심이 네티즌들에서 미운털이 박히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 조선일보 불매운동이 번졌을 때
수많은 네티즌들이 농심과 삼양에 조선일보 광고 중단을 요청했는데
삼양은 즉각 조선일보 광고를 철회한 반면 농심은 이를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농심이 밉다고 삼양을 민족기업인양 추켜 세우는 건 또 다른 왜곡의 시작입니다.
삼양의 시장점유율이 쪼그라든건 권력의 핍박때문이 아니라
창업자 일가가 라면 팔아 번 돈으로 대관령에 목장 만드는 등
제품개발 및 경영과 직접적인 관련없는 일에 몰두하면서 망테크를 탄 경우입니다.
한국의 라면 원조였던 삼양이
1980년대 초 농심이 사발면과 안성탕면 출시하면서부터 옆치락뒤치락 2위로 밀려났고,
농심의 신라면 출시 이후엔 시장점유율이 30% 후반대로 주저 앉게 됩니다.
우지 파동 후엔 20% 중후반대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오뚜기, 팔도 등의 라면시장 진출 이후엔 20% 초반대로 떨어지더니
2014년부터는 오뚜기에게 2위 자리에서 밀려났고
급기야 2016년에는 팔도에게도 뒤져 꼴등이 됩니다.
삼양의 현재 시장점유율은 간신히 10% 대 턱걸이 하고 있는데 조만간 한자릿 수 시장점유율을 가질 듯 합니다.

기업은 계속 기울어 가는데 회장은 미성년 자식들에게 재산증여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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