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역사의 비극으로 남아있는 게 바로 5.18 민주화운동입니다.
비극이 남긴 건 수많은 희생자뿐 아니라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터져나온 반미감정이기도 했습니다.
전남도청 앞 유혈사태 뒤에 시민들은 미국이 구하러 와줄 거라 믿었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시민들이 목격하게 된 건 신군부를 지원하고 군부의 편에 선 냉혹하고 차가운 미국이었습니다.
특히 인권과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신군부를 안보라는 이름으로 지지했던
백악관 회의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결과만 공개됐던이 회의록의 구체적인 내용을
지난달 광주MBC 취재진이 미국 현지에서 확보했습니다.
회의 참석자가 손으로 깨알같이 적어둔 수기 메모가 40여년만에 그 존재를 드러낸 건데
이를 전문가들과 심층 분석해 봤더니 체로키 파일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놀라운 내용들이 매우 생생하게 기록돼 있었습니다.
미국과 5.18의 관계를 밝히는 결정적인 자료가 되는 건데 이 메모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집중 분석합니다.
전남도청 앞에서 끔찍한 살상이 이뤄진
이튿날인 1980년 5월 22일
미국 백악관에 모인 국방장관 등 최고위급은 회의를 열고 비상시 한반도 파병 계획을 매우 구체적으로 거론했습니다.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해럴드 브라운이 시위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면 한국 군부가 대규모 무력을 투입할 것이라며
이로 인해 휴전선 공백 등 상황이 악화될 경우 신군부를 지원한다는 계획을 언급한 겁니다.
최근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도 같은 취지로 비상계획을 언급했습니다.
더구나 위컴의 증언에는 시위에 가담한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미국이 군병력을 직접 지원하는 내용까지 담겼습니다.
5.18 당시 광주 시민군들은 부산항에 미국의 항공모함 코럴씨호가 와있다며 도움을 기대했었지만
미국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려 한 건 신군부였던 겁니다.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 사실들은 미국이 신군부의 유혈진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려 했음을 입증하고 있어
지난 37년간 미국이 꾸준히 부인해 온 5.18 책임론에 무게를 더하게 될 전망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건 전남도청 앞에서 잔혹한 유혈 학살이 벌어진 직후
미국은 이미 전두환 씨를 대통령으로 맞이하는 상황을 논의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75분간 백악관 최고위급들이 광주 상황을 논의하며 가장 자주 언급한 이름은 바로 전두환입니다.
특히 브라운 국방장관이
친 전두환적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며
논의를 정리하고 이끄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광주에서 공수부대에 의해 60명의 사망자와 400명의 부상자가 나온 구체적 보고와 더불어
유혈사태의 책임자인 전두환 씨가 미국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자
브라운 장관은 즉시 전두환 씨가 실권하면 권력공백이 생겨 문제가 더 커진다고 답합니다.
군부의 폭력으로 인한 사상자 수를 듣고도 오히려 전두환 신군부가 무력을
적절하게 잘 썼다며 면죄부를 줍니다.
특히 안보가 위기라는 점을 들어 한국 군부와 긴밀히 협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에 뒤이어,
전두환이 청와대에 입성하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회의 맨 끝에서도 전두환을 반대하는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된다...고 다시 못박았는데,
이것이 이 회의의 결론이었습니다.
수백명의 사상자가 도청 앞에서 피를 흘린 지 채 40시간도 흐르지 않은 때,
이미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는 상황과 미국의 승인까지가 논의되고 있었던 겁니다.
이 회의록은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확보됐으며 회의 참석자 중 한 명인 당시 미국 국제안보담당 부차관보인
니콜라스 플랫이 수기로 작성한 것을 메모와 증언을 토대로 복구한 겁니다.
광주MBC는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5.18과 미국의 관계를 재정의해줄
이 대화록 전문을 공개하기로 했으며, 전문은 광주MBC 홈페이지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