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후기

솔리테어 작성일 17.08.07 00:33:46
댓글 24조회 8,992추천 26

150203011294373.jpg

 

 

1. 예매율도 높고 좌석 매진이 상영시간 한참 전에 이루어짐. 별 수 없이 남는 자리 앉느라 친구랑 앞뒤로 떨어져서 앉음. 제일 앞줄 왼쪽 끝자리는 역시 영화 보기에 별로 좋지 않음. 모가지가 많이 아픔

 

2. 송강호는 힌츠페터를 싣고 광주로 향하는 서울의 택시 운전사 미스터김, 류준열은 광주의 대학생, 유해진은 처자식 딸린 광주 택시 운전사, 토마스 크레치만은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 어벤져스 2에서도 하이드라의 스트러커 남작으로 등장했던 토마스 크레치만의 나치 전문 배우를 맡아온 필모를 보자면 이번 영화의 배역은 예외적인 것에 속할 듯. 하지만 역시 선역으로 등장하니, 리암 니슨 삘 나면서 선이 굵직한 미남임이 새삼 드러남

 

3. 당연히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실화를 각색하여 만든 영화지만, 목숨 걸고 광주로 잠입해서 쿠데타 군벌이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진실을 세계에 알린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2016년 작고할 때까지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다시 만나고 싶어했던 택시운전사 '김사복'이란 실존인물에 포인트를 두고 그린 영화. 힌츠페터 선생께서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어도 김사복씨와 결국 재회할 수가 없었던 이유에 대해 영화에서는 택시 수리비까지 더 많은 보상금을 치르고 싶어하는 힌츠페터를 피해 의도적으로 가명과 가짜 전화번호를 주었다는 것으로 정리했지만, 어쩌면 작년에 돌아가신 힌츠페터 선생보다 훨씬 일찍 돌아가셨을지도 모를 일. 헤어지지 얼마지 않아 체포된 뒤 군벌 독재 세력에게 보복을 당했다든가...그리해서, 단순히 영화적 포맷에 적합한 실존 인물 각색만이 아니라 이 김사복이란 인물에 대해 한껏 자유롭게 표현하는 접근 방식이 가해졌고, 송강호가 연기한 그 결과물은 마치 그가 연기했었던 변호인에서의 송변처럼 원래는 데모를 싫어하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순응하는 소시민의 모습과, 사별하고 혼자서 딸을 기르고 있는 가난하고 약하디 약한 아빠의 모습을 합친 것.

 

4. 개인적인 평점은 68~73/100 정도 될 듯. 몰입시키고 흥미를 유발하는 데에도 썩 괜찮은 편이고, 억지로 웃기거나 눈물을 빼려고 하는 짓 없이 자연스럽게 재미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역시 완성도의 측면에서 보자면 전체적으로 완벽하거나 기발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어딘가 지리멸렬해지는 장면들이 군데군데 잠복해있음. 또 이 부분에서는 더 뽑아낼 수 있는데, 이 정도의 배우들을 모아놓고 좀 아쉽다 하는 부분들이 있음. 한편 군함도의 평점은? 평점을 매길 가치도 없는 논외작. 군함도가 택시운전사의 자세를 배웠더라면, 최소한 준수해야만 할 기본적인 것만큼은 실패하지 않았을 듯. 정리해서,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하여 아직 시도되지는 않았던, 또 시도되었어야 할 방향을 잘 잡은 영화. 이것을 높이사면 80점 별 네개짜리 평점도 줄 수가 있겠지만...단, 영화 자체는 감독의 역량인지 각본의 한계인지 봉준호급의 수작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는 것.

 

5. 소설, 영화와 같은 서사 예술의 근본은 '허구적 이야기(story)를 통해 진실을 이야기(telling)한다는 것에 있음.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거짓부렁의 동의어로 '소설쓴다'라는 표현을 관용어처럼 만들어가고 있지만 이것은 서사 예술 종사자들에게 있어 모욕에 가까움. 기상천외한 이야기(story)를 화려하게 보여주면 마냥 재미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태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통속.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대표적으로 심형래 디워 같은 것들. 통속은 말 그대로 말초자극적인 방향을 잡은 포로노 그라피 생산/소비 활동에 지나지 않음. A가 친구 B에게,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누군가가 듣도 보도 못했던 참신한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story)를 들려줌. 처음에는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해서 와 참 재밌다, 하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가만히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가 될 수밖에 없음. 왕비가 더러운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깊은 트라우마와 여성공포증이 생긴 왕중왕 샤흐즈만이 아내로 삼은 여자를 매일 같이 죽여버리게 되고, 왕의 새 아내가 된 현명한 여인 세헤라자드가 샤흐즈만에게 천일이나 되는 기간 동안 밤마다 샤흐즈만에게 기상천외한 이야기(story)를 통해 샤흐즈만이 상처를 낫게 하고 세상과 인간을 다시금 새롭게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도록 이야기(telling)해줌. 다시 말해, 분명한 목적성을 가지고 이야기(story)를 잘 구성하여 이야기(telling)하는 것이 서사이며, 이것은 현대적 서사 예술에서 '진실'을 보여주는 것을 그 목적성으로 하고 있다는 것. 군함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실체와 강제 징용 광부들의 처참한 생활이란 '진실'에도 다다르지 못했고, 진실과 함께 도출되는 메시지와 감독 의도가 고작 '일본 나쁘다', '징용 광부들이 허구적 이야기 안에서라도 일장기 가르고 탈출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에 그친다면 참으로 유치하고 무의미하기 이를데 없다는 점. 영화감독 A가 수천만 국민에게 영화를 만들어서 보여주는데, 그 이야기(story)를 이야기(telling)하는 의도가 고작 누구 나쁘다, 인간은 정의로워야 한다 같은 한마디 교훈 같은 거라면 수십 수백억을 들여, 수백만 이상을 모아다 놓고 들려주기에는 터무니없이 싱겁기 짝이 없는 것이기 때문. 고작 개과천선, 권선징악, 인과응보 같은 것을 담기에는 영화와 소설은 너무 거대하고 복잡한 도구이며, 그런 한두마디 말이 들려주고 싶은거라면 그냥 그 한두마디 말을 직접 하든가, 연설문을 써서 선언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 소설과 영화와 같은,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좋은 서사 예술 작품은 가공으로 만들어낸 것일지언정(허구), 현실의 문제들이 왜 쉽게 해결되지 않고 교착 상태에 머물러있는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독자와 관객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인물과 시대, 공간과 사건을 정교하게 재현함으로써 보여주는 것(진실)이 바람직한 사용방법. 그걸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 그렇게 해낼 자신이 없으면 처음부터 액션 오락물이다, 선언하고 처음부터 통속 작품 만들면 누가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음. 아, 물론 지금 이 시점의 그 누구도 군함도를 통속 작품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도 기본전제지만. 

 

얼마 전에 군함도 관련 게시물에 누가 '택시운전사 개봉하면 그 영화에 향해서도 실제 역사를 대상으로 허구적 이야기를 꾸며댔으니 짱공 사람들 또 냄비 근성처럼 난리피우겠네' 같은 소리를 해놨길래, 굳이 설명해둠.

솔리테어의 최근 게시물

엽기유머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