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디 가서 말해봤자 내 얼굴 침 뱉기 같고 속은 쓰리고 하소연 좀 하고 갈게요.
제목 그대로 거스름돈 가지고 남자친구랑 싸웠어요.
딱히 잘잘못을 가리고 싶진 않아요.
답정너 느낌일 거 같긴 한데 전 제 잘못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대다수 분들이 제가 문제라고 하면 돌이켜 보겠지만 지금 심정으로는 그쪽으로 사고가 돌지 않아요.
지금 술이 하나도 안 깬 상태라 조금 두서없어도 양해 부탁드릴게요.
둘 다 일이 바빠 오늘 오랜만에 만났어요.
저녁 먹으면서 간단히 반주를 하고 술집 옮겨서 조금 더 마셨어요.
그리고 집 앞 슈퍼에서 간단한 주류를 사서 방에서 한 잔 더 하기로 했어요.
어차피 배도 부른 상태라 술만 좀 필요했어요. 과자 몇 가지랑 음료수, 맥주랑 소주를 샀어요. 자주 가는 가게인데다가 산 물품이 얼마 되지 않아 가격대가 대충 예상이 가더라고요.
지갑에 현금이 있어서 만 원짜리 두 장을 빼들고 슈퍼 주인아저씨가 바코드 찍는 걸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막상 계산하려고 찍힌 금액을 봤는데 구천원대 안팎이 적힌 거예요. 절대 이 금액이 나올 수가 없는데 이상해서 목록을 보니까 아저씨가 맥주 패트병을 안 찍으셨어요.
아무 생각 없이 아저씨 이거 빼먹으셨어요 하니까 당황하시더니 고맙다며 마저 결제를 했어요.
그리고 돈 지불하고 거스름돈 받아서 나왔고 그때까지는 아무 생각 없었어요.
집 가서 대충 상 차리고 술 마실 때쯤은 아예 잊고 있었고요.
그런데 남자친구가 뭔가 표정이 묘한 거예요. 왜 그래? 왜 그래? 몇 번이나 물으니까 얘기를 하는데 제가 이해가 안 된대요. 뭐냐고 물으니까 그 거스름돈 얘기하면서 피곤하게 산대요.
그 말 들으니까 바로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혹시 내가 그 돈 돌려주지 않았어야 되냐 생각하냐니까 자기 같았으면 그렇게 했대요. 고의도 아니고 오늘 운 좋았다 웃고 넘길 일 아니냐고요. 돌려준 돈이 아깝대요.
아니 제가 못 봤으면 모를까 이미 본 상태에서는 다분히 고의성이 성립하지 않나요? 물건을 샀으면 제 값을 지불해야 되는 거 아니냐니까 수퍼 측의 실수니까 그래도 된대요.
그 뒤로 둘 다 조용히 술만 마셨어요. 남자친구도 뭔가 생각하는 거 같은데 저도 머릿속이 좀 복잡했거든요. 사실 오천원 정도 되는 돈 별 거 아니잖아요. 보통 카드로 계산할 때는 저도 일일이 확인 안 해요. 때맞춰 현금을 들고 있어서 이상하다 싶었던 거지.
그 슈퍼를 방문한 지 벌써 3년이 조금 넘었어요. 한 곳에 오래 살아서. 그다지 친하지는 않지만 주인집 부부 내외와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예요. 대부분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런 말만 나누지만 가끔 아주머니 핸드폰으로 어플 같은 거 받아주기도 하고 상품가치 떨어진 야채를 챙겨주시기도 해요. 그런 분들 겨우 오천원으로 공돈 먹기 싫어요. 처음 가 보는 가게라도 마찬가지로 행동했겠지만.
그 뒤로 남자친구와 몇 마디 더 얘기를 나눴지만 계속 빙빙 돌았네요.
남자친구 입장은 네 말이 옳다, 네 행동도 옳다, 하지만 그 오천원 없다고 굶어죽을 가게도 아니고 그 정도는 술 먹으면서 운이 좋았다 우스갯소리로 넘어가도 되는 거 아니냐. 넌 돈 모으기 힘든 거 같다. 큰 돈도 아니고 왜 작은 돈 가지고 일일이 착해보이려 하냐 이거였고.
제 입장은 내 행동이 착한 거라고도 생각 안 하고 차라리 큰 돈이면 욕심 때문에 눈 감았을지 몰라도 푼돈에 괜히 꺼림칙하기 싫다 이거였어요.
결국 결론은 그래 네 말이 맞다 이러대요.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술 마셔서 예민했다. 이러고 술 자리 파하고 집에 갔고 저는 앉아서 맥주 좀 더 마시다가 글을 쓰고 있어요.
저도 공짜 좋아해요. 이벤트 당첨 되면 기쁘고 길 가다 백 원짜리 주워도 좋아요. 그런데 이건 케이스가 좀 다른 거 같은데. 그냥 생각이 조금 많아져요.
더 이해가 안 가는 건 정말로 돈 때문이 아니거든요.
둘 다 넘쳐 흐르지는 못해도 벌 만큼 벌어요. 평소 서로에게 돈도 안 아끼고 데이트도 비싼 곳에서 자주 즐겨요. 그게 무리가 되지도 않고.
아마 제 모습이 본인 기준에서 답답해 보인 모양인데
저는 오히려 제 기준에서 남자친구에게 조금 실망감이 들어요.
술 마셔서 생각이 많아지는 건지 말마따나 제 성격이 피곤한 건지 조금만 더 마시다 자야겠네요.
긴 얘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