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채용입니다" 한마디에 머쓱해진 '명문대 아들' 부모
'해외 명문대'를 졸업한 아들이 한국은행 신입직원 채용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며 항의하는 글이 한국은행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글쓴이는 “세계 최일류대 출신이 서류전형에서 떨어지면 도대체 어느 대학 출신을 뽑았느냐. 빽으로 뽑았다고 볼수밖에 없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자 한국은행 채용 담당자는 “지원서에 학교명 기재란이 없다”는 짤막한 답변을 달았다.
채용 전형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 글이 한국은행 홈페이지에 올라온 건 서류전형 결과가 발표된 지난달 27일이었다. 아들이 지원했다고 밝힌 글쓴이는 “호주 G8 출신인 아들이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며 “세계 최일류대 출신을 서류에서 떨어뜨리면 도대체 어느 대학 출신을 뽑았느냐. G8을 능가하는 대학이 세계에서 몇 곳이나 되느냐. 빽으로 뽑으면서 채용공고 내서 희망고문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담당자의 답변을 받지 못한 글쓴이는 다음날 다시 글을 남겼다. 그는 “세계 최고 대학 중 하나를 졸업한 사람이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면 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뭘로 생각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지며 채용기준 공개를 요구했다.
이어 “큰애는 호주 명문대 나와 한국은행 서류심사 떨어지고, 작은 애는 일본 명문대 나와 주일대사관 서류심사에서 떨어지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지원했나. 참으로 한심하다. 여러분이 대한민국 경제를 운영하는데 이 나라가 아직 안 망했다는게 신기하다. 명확한 답변을 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글을 마쳤다.
그러자 “인사팀 채용담당자입니다. 2018년도 종합기획직원 지원서에는 학교명 기재란이 없었습니다"라는 한국은행 측 답변이 게재됐다. 탈락한 아들이 '명문대 출신'임을 내세워 '채용 비리' 의혹을 제기했던 글쓴이가 머쓱해질 답변이었다. 글쓴이가 올렸던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인데, 답변글은 여전히 남아 있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 공공기관에 도입된 '블라인드 채용'
이 글쓴이를 머쓱하게 한 것은 올해 하반기부터 공공기관에 도입된 '블라이드 채용' 방식이었다. 332개 공공기관이 7월부터, 149개 지방공기업은 8월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고, 9월부터는 모든 지방 출자·출연기관으로 확대됐다.
한국은행은 2015년부터 지원서에서 주소, 가족사항, 제2외국어 기재란을 없앤 데 이어 올해부터는 학교와 성적 등 7개 항목을 추가로 삭제했다. 서류전형은 자기소개서와 어학성적(토익, 토플, 텝스)으로만 평가했다. 한은 관계자는 “어학성적이 없더라도 자기소개서를 충실히 작성했다면 서류를 통과할 수 있다. 지원동기, 직무역량, 수험준비 과정을 구체적으로 쓰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도 하반기 공채를 100% 블라인드로 진행한다. 이력서에 학력, 가족사항, 주소란을 없앤다. 서류전형을 폐지하는 대신 필기시험을 두 차례(1차 객관식, 2차 주관식) 치른다. 한국농어촌공사는 학력 전공 성별 연령 기입란을 삭제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한국가스공사는 2013년부터 서류전형을 폐지해 지원자 전원에게 필기시험 기회를 주고 있다. 학교, 학점 등을 가린 블라인드 면접도 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은 문재인정부가 공공부문을 넘어 민간부문에까지 확대하려 팔을 걷어붙인 정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청와대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에서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를 지시했고,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인사혁신처 등은 7월 '평등한 기회·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이성기 고용부 차관은 합동 브리핑에서 "채용 과정에 편견이 개입돼 불합리한 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출신지, 가족관계, 학력, 외모 등을 걷어내고 실력을 평가하여 인재를 채용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