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아산 설화산 금광구덩이에 묻힌 민간인 유해발굴 시작
[오마이뉴스 심규상 기자]
그가 흐느꼈다. 6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슬픔의 감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김광욱(73)씨.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당시 온양읍 방축리에 살던 김씨의 아버지(김갑봉, 당시 30세)는 인민군에게 부역한 혐의로 끌려갔다.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두 남동생이 모두 연행됐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김씨는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후에 김씨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자 어머니는 아버지는 물론 삼형제가 부역 혐의로 끌려가 금광 구덩이에서 경찰과 치안대에 의해 살해됐다고 전했다.
22일 오전 11시 30분, 김씨의 아버지 등 300여 명이 살해돼 암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금광구덩이(아산시 배방면 중리 산86-1번지 일대) 앞에 김씨를 비롯해 1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아산시와 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 유해발굴공동조사단(발굴단장 박선주 공동조사단 공동대표, 아래 공동조사단)이 유해를 본격 발굴하기 위한 개토제를 하기 위해서다.
현장에는 박수현 충남도지사 예비후보, 전성환 아산시장 예비후보 등 지방선거 출마예정자들이 참석하기도 했다.
아산시와 공동조사단은 이날부터 한 달간 일정으로 희생자 유해를 수습한다.
김장호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 아산유족회장은 "유해발굴 예산을 지원한 아산시와 관심을 두고 적극 나서준 공동조사단에 감사드린다"면서도 "유해가 발굴되지만, 가슴에 박힌 흉탄은 어디로 보내야 하냐"고 물었다. 이어 "총질을 한 경찰서로 보내야 하느냐, 아니면 정부로 보내야 하냐"고 덧붙었다.
그는 현장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드러내지는 않지만) 아산지역에 사는 유족들이 많다"며 "이들을 잘 보듬어 달라"고 호소했다.
그때였다. 김 회장 옆에서 묵묵히 얘기를 듣고 있던 김광욱 유족회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김 회장을 부둥켜안으며 한참을 흐느꼈다.
아버지를 잃고도 오히려 '빨갱이 자식'이라는 손가락질로 고향마저 등져야 했던 설움이 북받쳐 오른 듯했다.
그는 이날 가슴에 품고 온 아버지 사진을 내보이며 또 다시 눈물을 훔쳤다.
유해발굴아산지역대책위원회 장명진 대표는 "67년 세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기 위해 내몰리던 착한 사람들이 참담하게 학살됐다"며 "유해를 발굴한다고 돌아가신 분들을 되살릴 수는 없지만, 우리가 끌어안고 위로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이곳을 시작으로 아산시 곳곳에 산재해 있는 나머지 유해들도 발굴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산시 관계자는 "유해발굴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말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아산시와 공동조사단은 이날 개토제를 시작으로 오는 28일까지 1차 발굴을 벌일 예정이다.
이후 3월 말까지 2차 발굴을 벌인 후 5월까지 공식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번에 수습 예정인 희생자 유해는 1951년 1월께 총살당한 대략 200~3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학살은 충남경찰국장과 온양경찰서장의 지휘 및 지시로 자행됐다.
또 경찰의 지시를 받은 대한청년단(청년방위대, 향토방위대)과 태극동맹 등 우익청년단체들이 동원됐다.
▲ 22일 오전 11시 30분,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경찰과 친안대에 의해 부역혐의로 불법 살해된 아산지역 희생자에 대한 유해발굴이 시작됐다. ⓒ 심규상
앞서 공동조사단은 지난해 11월 시굴조사를 통해 이곳에 다량의 희생자 유해가 묻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또 3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박선주 발굴단장은 "지난해 11월 시굴조사 당시 발굴한 3구의 유해에 대한 감식 결과 그중 한 명은 6~7세의 어린아이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등에 갓난이를 업고 양손에 어린아이 손을 잡은 일가족까지 몰살시켰다는 당시 목격자 증언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이날 개토제는 참석자들의 외침으로 마무리됐다.
"아버지, 어머니! 68년 어둠 걷어내고 밝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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