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시리즈[서론] : 삼국지란?

축구왕배춘배 작성일 18.05.10 18: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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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물은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라는 댓글들이 많이 달리기에 삼국지와 관련해서 실제 역사는 어떠했는지


시리즈물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해서 직접 작성해 봤습니다.

 

물론 실제 중국사에서 삼국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작습니다.

 

어떤 분 말마따나 구품관인법 외에는 딱히 역사적으로 주목할만한 꺼리가 없어서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삼국지연의의 인기와 일반 대중들의 관심도를 봤을때 이만한 폭발력을 가진 혹은 관심도를 가진 시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논란과 논쟁이 있고 각종 카페와

 

토론방에는 역사적 사료를 가지고 열띤 토론(부모욕과 상대방 인성 깎아내리는게 다반사인건 함정...)이 여전히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기에 저도 한번 편승(?) 해서.. 에헴...


아무튼 일부 제 개인적인 의견도 들어가있고 유명한 정치가, 역사가 등의 평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타임머신을 직접 타고 돌아가보지 않았기에 사료를 가지고 앞뒤 개연성을 따져서


추측을 할 뿐이지 정말 실제로 "그랬기 때문에 그랬는지" 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옛날 역사가, 정치가들이 현대에 사는 우리보다는 좀 더 많은 사료들을 접할 수 있었을 것이기에 그 시대에


가까운 자료일 수록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게 올바른 추론일 것이다 라고 믿을 뿐입니다.

 

 


본론에 들어가자면,


다들 아시다시피 삼국지 관련 저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삼국지 연의>는 소설로서 원명 교체기에 살았던 나관중이라는 작가가 저술한 책입니다.


<삼국지> 라는 역사서를 기반으로하고 <삼국지평화>라는 소설의 줄거리를 토대로 창작과 고증을 통해 만들어 냈습니다


즉, 100퍼센트 본인의 능력으로 지은 것은 아니란 말이죠. 기존에 있던 내용을 각색하고 좀 더 매끄럽게


좀 더 읽기쉽게 만들었으니 소설가라기보단 편집자 혹은 역자라고 보는 관점도 맞을 수 있겠습니다.


이 이후 여러 판본이 나오지만 청나라 때 사람인 모종강이 <촉한정통론>에 입각해 새로운 판본을 만들어낸


모종강본이 현대에 나오는 대부분의 삼국지연의의 기본 판본이 됩니다.


물론 연의가 읽기 쉽고 창작된 줄거리가 많긴 하지만 그 기반은 실제 역사입니다. 그리고 실제 스토리를


창작할때 당대의 식자들 혹은 민중들 사이에서 그 인물이 어떠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자면(아래에 다룰것이지만..), 위진남북조 시대에 집필된 <세설신어> 란 책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야사로서 내용은 귀신이 나온다던지 하는 터무니 없는 내용이 주이지만 당시의 생활상 혹은 삼국시대의

 

어떤 인물에 대한 당시 민중들의 이미지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것들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자료로 여겨집니다.


특히나 이 소설이 집필된 시기가 삼국시대가 끝난 직후였단 점에서 당대의 평가에 굉장히 근접한다고


볼 수 있겠죠. 우리나라의 삼국유사와 비슷한 자료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위와 같이 소설이나 야사 등도 당시 상황을 파악하기에 나름의 중요한 요소들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이건 소설이니까 이건 야사니까 무조건 배척해야돼.' 라는 식의 접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길게 적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또 반대로 소설이나 야사의 이야기가 마치 실제 역사인양 부풀려져서 실제론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라는 식으로 평가가 되어서도 안되겠죠. 두 가지 모두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위에 적은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역사서를 적어보겠습니다.

 

 

<정사 삼국지>
저자가 진수라는 사람으로 서진의 신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게 삼국지라는 저서가


서진의 신하로서 지은걸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으로 삼국지는 진수가 개인적으로 지은 사찬서입니다.


당시 진은 위를 정통으로 삼고 있었으므로 진수가 저술한 이 책도 <위진정통론>에 입각해서 서술되었기에


후대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시는 서진시대였고 시대상황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쓸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는 됩니다. 비판을 받았단 사실과는 별개로 나름 균형잡힌 시각에서


작성되었다고 볼만한 요소들이 꽤나 많이 있기 때문에 사실 이 논란은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다면


밤을 세워 토론해도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이쯤에서 넘어가겠습니다. (많은 역사가들도 이에 대해 평을 달리합니다)


어찌됐든 비교적 삼국시대에 근접한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라는 점, 위, 촉, 오에 대한 기록 뿐 아니라


당시의 이민족 등에 대한 기록도 남겨놓았기에 주변국의 역사(ex. 위지 동이전 등)를 엿볼수 있다는 점 등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료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소설 형식의 스토리텔링이 아닌 기전체의 방식을 사용했고 <위지> <촉지> <오지> 로


나뉘어졌고 위지 30권, 촉지 15권, 오지 20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진수가 지은 삼국지


본연의 내용보다는 남북조 시대 사람인 배송지가 주석을 달아놓은(그것도 꽤나 신뢰성있게) 버전을 주로


정사 삼국지라고 통칭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후한서>
제목과 같이 후한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위진남북조 시대의 남조 송나라 사람인 범엽이란 사람이 편찬했습니다.


본기 10권, 열전 80권, 지 30권으로 되어있는데 이중 본기와 열전은 범엽이란 사람이 지었지만


사형을 당하는 바람에 지 30권은 후에 다른 사람(유소)이 기존에 있던 역사서를 주석을 달아 포함시켜 완성하게 됩니다.


당시 역사서가 으레 그렇듯이 역시 기전체로 서술되어있으며 특이한 점은 정사 삼국지에서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던


혹은 혹평을 했던 인물들(ex. 원소)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다뤄져 있어 그 나름의 사료로서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또한 삼국지와 더불어 동이열전을 따로 기록했기에 우리나라에서도 고대사 사료로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자치통감>
북송 시대에 사마광이란 정치가가 저술한 역사서로 조정의 도움을 받아 무려 1300여년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입니다(물론 혼자한건 아님..) 사마천의 <사기> 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사료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걸보면..

 

사마씨가 역사 기록에 굉장한 재능이 있지 않나라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_-b


특이하게 편년체로 작성이 되어있는데 (연대기 형식으로 서술한 것을 편년체라고 합니다) 권수는 무려 294권으로

 

엄청나게 방대한 양을 자랑하며 이중 삼국시대를 다룬 <위기>는 10권 정도의 분량이지만 

 

비교적 고증에 굉장히 충실했기에 신뢰도가 상당히 높은 사료중 하나입니다.

 

특히나 부족하거나 의심이 되는 부분은 사마광 스스로 주석을 달아 놓아 후대에서 스스로 검증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놓은 모습도 볼 수 있는 등 현대에 들어서도 상당히 높게 평가받고 있는 역사서입니다.

 

후대에는 주자가 60여권으로 축약해놓은 <자치통감강목> 이 조선시대에까지 널리 읽혀지기도 했습니다.

 


<영웅기>
실제 삼국시대 인물인 형주 유표의 관료였던(후에 조조에 항복) 왕찬이 저술한 저서로서 삼국시대의 인물들과

 

동시대의 인물이었던만큼 실제 본인이 들었거나 보았던 것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사료중 하나입니다.

 

정사 삼국지에 주석을 달았던 배송지도 이 영웅기를 많이 인용했는데

 

다만, 왕찬 개인의 능력을 떠나 (건안칠자의 일원이자 천재)  당시 시대상 풍문으로 들었던(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기록했을 가능성이 존재 합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소실되어 원본을 찾아볼 수 없고 다른 역사서에 인용되어 주석으로

 

남아있는 자료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습니다.

 

 

<위략>
영웅기와 마찬가지로 현재는 소실되어 원본을 찾아볼 수 없긴 하지만 역시 당대에 지어진 역사서이고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위나라에 대한 역사를 주로 다루었습니다. 배송지 또한 이 위략을 많이 인용하긴


했는데 다만 문제가 잇는 것이 이 책에는 위나라 외의 역사는 말도 안되는 글들을 많이 집어넣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유선이 어릴때 노예로 팔렸다가 나중에 유비를 찾아와 태자가 되었다는 둥 (유선 벤허설),


제갈량이 유비를 직접 찾아가 사관시켜달라고 했다는 둥 동시대를 기록한 다른 역사서와 교차검증에서 말도 안되는


기록들이 상당수 적혀있기에 내용을 무작정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주변국들에 대한 기록이 상당히 풍부한 점(ex. 고조선, 심지어 로마) 저자가 위진의 사람이었기에 위진의 기록에는


비교적 충실했다는 점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서>
위나라 사마의 시절부터 진나라 시대까지 기록한 역사서이지만 내용면에서 현재까지도 까이고 있는 역사서입니다.


제목이 <진서> 이기에 사마의에 대한 미화가 심한 편이며 사실 관계를 다르게 적어놓는(혹은 과장하여) 등 당대의 지식인


뿐만 아니라 후대의 지식인들까지 대차게 깝니다. 흠..그냥 참고용 정도의 사료라고 판단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참고로 얼마전 엽게에 올라온 사마의가 제갈량을 평가한 내용중 "제갈량은 뜻이 크나 기회를 살피지 못하고 꾀가 많으나


결단력이 부족하고 용병을 좋아하나 임기응변이 없으니 비록 10만 군사를 이끈다 한들  내 계획 속으로 빠져들 뿐이라


반드시 격파할 수 있다" 라고 말했단 게시물이 있는데 정확히는 동생 사마방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이 <진서 선제기>에 나온 내용으로  개인적으로는 사마의가 실제 저런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저 허세에 불과 했을 거라 봅니다. 

 

어쩌면 자신을 걱정하는 동생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저런 내용을 적어줬을 수도 있겠죠.

 

우리가 군대가서 부모님이나 가족에게 난 잘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듯이 말이죠.(실제론 못지내지만..ㅠ)


이렇게 추론하는 이유는 제갈량과 사마의가 직접적으로 맞붙었던 3차 북벌과 5차 북벌 시기에 두 군세가 정면으로 맞붙어


두 번 다 제갈량에게 깨졌기 때문입니다. 4차 북벌 시기에서는 아래에 다룰 <한진춘추> <자치통감> 과 <진서 선제기>의


기록이 충돌하는데 진서 자체가 신빙성이 부족하다보니 후대에 저술된 <자치통감>에선 <한진춘추>의 내용을 따릅니다.

(한진춘추도 그다지 신빙성이 높지 않다는건 함정...)


이 얘기는 여전히 논란 거리이고 각종 토론방에 관우와 함께 주된 떡밥으로 이에 관해선 나중에 적을 제갈량 편에서

 

다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진춘추>
동진시대의 역사가인 습착치에 의해 저술되었습니다.

 

이 역시 비교적 삼국시대에 가까운 시대의 인물의 저서이긴 하지만 습착치라는 인물이 과장이 심한 역사가이기에

 

이 또한 크게 신빙성을 가지긴 어렵다고 많은 역사가들이 판단합니다. 이 또한 교차검증의 자료로서 활용되며

 

<촉한정통론>의 뼈대를 만들어낸 역사서라 할 수 있습니다. 역시나 안타깝게도 현재는 소실되어 찾아볼 수 없는

 

역사서로 주석에 인용되어 있는 것으로 그 내용을 추론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세설신어>
위진남북조 시대에 지어진 책으로 각종 사건이나 설화, 민담, 귀신, 기물 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당연히 내용이 허황되기 때문에 역사적 사료로서는 가치가 없을것 같지만 의외로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서술하는 구절들이 많아 사료로서 참고되기도 합니다. 또한 당시의 생활상이나 백성들이 느끼는 당대 인물들의


이미지 등을 추론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나온 대표적인 고사성어가 <등용문>


이라는 단어입니다.

 

 


삼국지와 관련된 역사서들이 저렇게나 많습니다. 쓰다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졌네요.


다음편엔 삼국지를 대표하는 인물 <위촉오>의 가장 강력한 군벌세력이었던 위나라의 <조조>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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