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시리즈[1-3편] : 조조 (자작)

축구왕배춘배 작성일 18.05.15 18: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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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http://fun.jjang0u.com/chalkadak/view?db=160&search_field=&search_value=&no=355555&page=1

<2부>

http://fun.jjang0u.com/chalkadak/view?db=160&search_field=&search_value=&no=356045&page=1

 

3부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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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기 - 협천자>

드디어 연주를 평정한 조조는 장막의 일족을 모조리 처형합니다 (195년 12월).

 

그런데 이렇게 조조가 동쪽에서 장막과 피터지게 싸우는 동안 서쪽의 장안성에선 조조의 운명을 가르는 사건이 생기는데

 
이각과 곽사에 의해 유폐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황제(헌제)가 장안을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195년 7월)

 

헌제는 우보(동탁의 사위)의 사병 출신인 동승과 백파적(산적) 출신 양봉 등에 의해 호위받고 있었는데

 

진짜 충심에 의해 헌제를 낙양으로 빼돌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동승과 양봉은 추격해오는 이각과 곽사의 군을

 

여러번 막아내며 (백파적을 끌어들였지만) 조조가 보낸 조홍이 군대를 이끌고 오자 이마저도 원술의 세력과 협력해

 

차단해 버립니다. (원술의 보호하에 들어가고자 했던 것으로 추측)

 

조홍이 실패하자 조조는 결국 예주 내의 원술 세력을 모조리 소탕해버리고 직접 군을 이끌고 가 폐허나 다름없는 

 

낙양에 있던 황제를 직접 허현으로 데리고 옵니다.
(2부에서도 기술되어 있지만 이 시기에 중원의 도시들은 황충에 의해 엄청난 피해를 받았고 낙양 또한 예외는 아니었음)

 

이 과정에서 산적과 다름없던 한섬, 양봉 등을 내쫓고 헌제를 허현에 옹립함으로써

 

드디어 조조는 인생의 큰 획을 긋는 '협천자' 를 이루게 됩니다.

 

이후 조조는 유비를 서주목에 임명하고 간도 크게 원소에게 황제를 통해 나무라는 투의 조서를 보내면서

 
그를 태위(사실상 명예직)에 임명하고 자신은 대장군에 오르자 원소는 이에 격노합니다.


사실 이전까지 원소의 위치는 군웅들 중에서 가장 독보적이었고 그 누구도 원소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으나


갑자기 조조가 조정의 수장이 되고 원소는 기존 황제의 정통성을 부인하던 입장이었으니
(유우를 옹립하려 했으나 정작 유우 본인이 거절)


원소 입장에선 잘못하면 반역자의 프레임이 씌워지게 될지도 모를 상황에 놓여진겁니다.


이에 원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으니 당연히 화가날만도 할 것입니다.

 

결국 현 황제를 인정하는 듯 보이면서도 태위 직책은 받지 않자 조조는 은근슬쩍 두려워져

 

원소에게 대장군 직을 양보하고 본인은 사공 겸 거기장군 직에 머무릅니다.

 

아직은 원소의 심기를 거스르기엔 이르다 판단한 거겠죠.


그러나 사실상 이때부터 원소의 위치는 흔들리게 되며 조조는 그만큼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협천자의 위력은 어마 무시했던 것입니다.

 

이 무렵, 여포에게 서주를 빼앗긴 유비가 조조에게 귀순합니다.

 

정욱은 유비를 경계해 이 기회에 그를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조조는 듣지 않고 그를 쿨하게 거두어 들입니다.


그리고 197년이 되자 조조는 허도에 위협이 될 만한 남양에 있던 장수의 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출전하지만


장수는 너무나도 쉽게 그냥 항복해 버리고 이 과정에서 조조는 장수의 숙부인 장제의 처를 범해 장수의 분노를 삽니다.
(추씨라고 알려졌으나 실제로 성은 모름. 연의의 창작)


장수의 반응을 알게된 조조는 장수를 숙청하려 하지만 되려 크게 당해 전위, 조안민, 조앙 등을 잃고 본인마저


화살에 맞는 등 저승의 문턱에 한발 담갔을 정도로 죽기 일보 직전에 겨우 도망해 허도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때 조조의 정실은 정씨 였는데 조앙은 정씨의 친자식이 아니었지만 조앙을 친자식 이상으로 아껴


모자 사이가 굉장히 돈독했으니 이 사건에서 조조가 조앙을 잃고 돌아오자 정씨는 어떻게 아비가 자식의 목숨을


버리고 아무렇지 않을 수 있냐며 대성통곡을 하다가 친정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조조는 그녀의 친정까지 직접 찾아가 울며불며 돌아오라고 애원하나 결국 정씨는 평생 두번다시 조조에게로

 

돌아가지 않게 됩니다.


연의에서는 조조가 다른것보다 전위를 잃은게 가장 애석하다 라고 표현을 했지만 실제로는 조앙과 조안민을 잃은 것


역시 큰 아픔으로 남았는지 조조가 죽기 전 아파서 누워있을때 평생 다른 것은 마음에 걸리는게 없지만


정씨와 조앙의 일만은 마음에 걸린다며 한탄했다고 합니다. (서주 대학살은 아무렇지 않았던듯..)

 

이 해에 조조와 마찬가지로 협천자를 노렸으나 실패한 원술은 원가의 덕은 모두 원소가 보고 있고 협천자마저 실패하자


탈출구가 없다고 느꼈는지 스스로 제위에 오르는데,

 

천자를 봉대하고 있던 조조 입장에선 이를 토벌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여포는 이 때 당시 연주에서의 일보다 원술에게 앙심을 품은게(원술에게 갔다가 쫓겨남) 더 컸으며


게다가 유비를 내쫓고 서주를 차지한 입장이라 중앙 정부의 공식적인 직함을 받고 싶어해 조조에게 호의적으로 대했는데,


원술이 보낸 사자를 조조에게 보내 허도에서 처형당하게 하자 이에 원술은 분노, 여포와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조조는 원술과 여포가 전쟁하는 틈을 타 원술의 본거지 수춘을 직접 들이치고 결국 수춘은 함락이 되며


원술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맙니다.

 

이 때 조조는 유표와 장수를 조홍으로 하여금 막게 했는데 조홍은 이를 막지 못했고 후방을 교란당하게 되자

 

수춘 함락 직후 병력을 돌려 유표와 장수군에 반격을 가해 격퇴시킵니다.


이듬해, 다시 남양을 점거하기 위해 병력을 이끌고 직접 원정을 나서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별소득 없이 허도로 귀환.


이에 조조는 방향을 돌려 이용가치가 없어진 여포를 치기위해 당시 예주목으로서 소패에 머무르던 유비와 여포의


불화를 트집잡아 여포를 치지만 선봉이었던 하후돈은 되려 고순에게 패하고 유비도 소패를 잃고 조조에게로 도망칩니다.

 

결국 직접 병력을 움직여 서주를 치는데 이에 다급해진 여포는 원술에게 그제야 구원을 요청하고 손을 잡게 됩니다.

 

원술은 여포가 당하면 다음은 자신 차례라는걸 뼈저리게 알았는지 직접 군을 이끌고 구원에 나서지만

 

조조에게 패하고 여포 또한 하비성에서 농성하다 결국 함락당해 붙잡혀 처형 당하게 되며

 

이로써 조조는 드디어 서주를 평정하게 됩니다. 

 

이후, 원소가 공손찬과 대적하는 틈을 타 하내마저 점령해 버리고 공손찬과 결탁해 뒤를 치려고까지 했으나


예상보다 공손찬이 더 빨리 무너져 버리게 되자 서둘러 돌아왔고 이 사건으로 인해 원소와의 불화는


완전히 표면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 무렵에 장수는 가후의 조언을 듣고 조조에게 항복해 남양 일대 역시 조조의 손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렇게 갈등이 점점 격해지고 있을 때 원술이 조조의 압박과 본인의 사치 등으로 인해 세력이 크게 쇠퇴하자


원소에게 합류하기 위해 북상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유비를 보내 요격하게 합니다.


정욱과 곽가는 유비를 보내면 안된다고 말리려 달려왔지만 이미 유비는 떠난 뒤,

 

유비는 결국 원술을 저지하고 원술은 꿀물을 찾다가 객사하게 됩니다. (꿀물황제 ㄷㄷ..)

 

유비는 이 군세를 이끌고 그대로 서주를 들이쳐 서주자사 차주를 죽이고 서주를 다시금 차지,

 

원소와 연합을 이루며 조조가 보낸 왕충의 군대마저 격파합니다. 

 

그리고 이때쯤 동승의 조조 암살 시도가 있었는데 이는 실패로 끝나고 유비를 제외한 모든 관련자가

 

삼족이 멸해지게 되며 헌제의 후궁이었던 동승의 딸 동귀비 역시 처형당하고 맙니다. (유비의 빠른 판단력)


이 사건에 격분한 조조는 이 암살 사건의 관련자이자 자신의 뒤통수를 친 유비를 치기 위해 직접 군을 이끌고

 

서주를 침공합니다.

 

서주를 차지한지 한달도 채 되지않은 유비는 원소에게 구원을 요청하지만 그가 도와주지 않을 것임을 알고

 

혼자 힘으로 대적해보지만 역시나 역부족, 그대로 원소에게 도주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비의 처자식이 조조에게 사로잡히고 관우는 투항하는 등 말 그대로 유비군은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중년기 - 관도대전>


원소는 마침내 공손찬을 격파하고 하북 4주(유주, 병주, 기주, 청주) 를 평정합니다.

 

그 동안 노골적으로 뒤를 위협해왔던 조조의 뚝배기를 깨줄 때가 됐다고 판단한 원소는

 

10만의 군세를 이끌고 남하를 시작합니다.


(관도대전 당시의 병력에 대하여 기록이 상당히 엇갈리지만 배송지는 대략 원소군 10만 vs 조조군 4만 정도의
 병력으로 보고 있고, 후대의 연구에도 대략 이 정도의 병력차를 합리적인 추측으로 여기고 있음)


남하를 하려면 황하를 건너야 하기에 군대를 집결시키는 동안 본대가 안전하게 건널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먼저 백마 지역으로 안량과 곽도를 보내 포위하게 하는데 조조는 이에 대응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있다가


순유의 군략에 따라 다른 곳으로 가는 척 하면서 백마를 들이쳐 결국 안량의 군대를 물리치고 안량을 죽이는


전공을 올립니다. (인간병기 관우의 무쌍)


그러나 이러는 동안 원소군의 본대는 성공적으로 황하를 건너 연진 일대를 차지하고 조조는 문추까지 죽이는 등

 

두 차례의 교전에서 모두 승리하지만 결국 원소의 본대에 맞서지 못하고 관도 지역까지 후퇴하게 됩니다.


관도에서 장장 6개월이나 버티지만 버티는 동안 원소는 특유의 정치 선동과 정면에서 힘으로의 압박,

(조조를 황실을 능멸하는 역적 프레임, 이 명분을 조조암살을 모의했던 유비가 제공해줌)

 

그리고 원래부터 원가의 세력권이었던 예주 일대에서 반란을 부추기고,

 

유표와 연수를 맺어 후방을 위협하는 등 엄청난 압박을 가했고 조조는 그야말로 사면초가,

 

피가 말라 죽는다는게 어떤 것인지 이 때 경험하게 됩니다.


계속되는 세력권 내의 반란 (원소는 이에 예주로 유비를 파견), 병력차에 의한 누적 데미지,

 

심지어 보급로마저 원소군에게 공략당해 보급마저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 되자 조조군은 멘붕에 빠져

 

제대로 대처조차 못했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조조군 내부에서조차 하나 둘 원소와 내통하는 자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조조 본인마저 육체적, 정신적 피폐함을 견디지 못했는지 허도로 돌아가고자 하는 뜻을 적어 허도에 있는


순욱에게 보내지만 순욱은 절대 반대하고 조조는 그 의견을 받아들여 그대로 관도에서 버티기에 들어갑니다.


사실상 이때 조조의 세력은 거의 원소의 세력에 포위된 상황이었고 돌아가봐야 고사당해 죽는 길 밖에 없었으므로


딱히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순유는 죽을 힘을 다해 군략을 바쳐 올렸고 이 군략에 따라 원소군과의 여러 국지전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전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조조군은 그야말로 절체절명, 오늘 내일 하는 와중이었는데 이 때 반전이 일어납니다.


바로 허유가 항복해오며 군량이 모아져 있는 오소의 위치를 누설한 것입니다.

 

조조와 원소, 허유는 어려서부터 막역하게 지낸 친우사이였고

 

허유는 본래 탐욕이 많은 자라 여러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있었는데 하필 이때 업에서 심배에게

 

그의 부정부패가 발각되어 처자식이 사로잡히자 그대로 원소군을 배신하고 조조에게 달아난 것입니다.
(허유가 조조를 보고 절을 하자 "친구 사이에 무슨 절이냐" 하며 대우해주자 감격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에 조조는 원소군으로 위장해 직접 보병과 기병 5천을 이끌고 오소를 습격,

 

군량을 모두 불태우고 순우경의 코를 베는 등 전과를 올리고 서둘러 퇴각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원소는 오소에 구원을 보내는 동시에 장합과 고람에게 주력군을 주어 조조의 본진을 공략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 오소에서의 패배에 대한 책임 소재에 대해 원소군 내부의 알력다툼에 의해 (곽도가 장합을 모함함)

 

장합과 고람은 조조에게 항복해 버리고 항복의 표시로 원소군을 공격해 불을 지르는데 이 호기를 맞아 조조군 본대가

 

그대로 원소군에 들이쳐 원소군은 이 날 완전히박살이 나며 원소는 겨우 800여기와 함께 도망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때 조조가 사로잡은 원소군은 무려 7만여명에 이르렀는데 조조는 이들을 모두 학살해 버리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조조가 원소군 진영에서 그동안 원소와 내통했던 서신들을 무더기로 발견하지만 열어보지 않고 모두 태워버렸단
 일화는 조조의 대범함을 보이기 위해 잘 묘사되어 있지만 그와 동시에 원소군의 7만 군사를 모조리 죽인 악행은
 잘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창정에서 다시 한번 원소를 격파, 이에 원소군을 완전히 하북으로 몰아냅니다.

 

원소가 남은 군을 수습해 다시 세력을 다지자 조조는 황하를 넘어 진격하는 것은 역시 무리라 판단해

 

그대로 황하 이남을 지킨데 만족하고 허도로 귀환합니다.


(원소의 세력이 얼마나 강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무려 10만의 군세를 격파 -심지어 거의 몰살- 하고도 쉽사리
황하를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원소의 저력은 어마어마 했습니다)


예주(여남) 에 있던 유비마저 결국 몰아내 유비는 유표에게 도망을 가게 되고

 

이에 조조가 거의 망하기 직전까지 몰렸던 관도대전은 끝이 납니다.

 

(많은 분들이 관도대전의 결과로 원소가 죽고 그대로 원소 세력이 패망해 조조가 그 세력권을 차지한줄 알고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고, 비록 대패하긴 했지만 원소가 건재한 이상 원소의 세력 역시 하북에서 건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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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기 - 하북제패>

 

관도대전 이후 조조는 사후처리에 여념이 없었고 이때 원소 또한 군을 수습하고 세력을 재정비하고 있었는데


패배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는지 후계도 미처 정하지 못한채 급사하게 됩니다.


원소는 평소 3남이었던 원상을 총애하고 내심 후계로 내세우려 했었으나 원상이 아직 어리고 지지기반조차


못만들어준 상황에서 후계에 대한 공표도 제대로 못한채 갑작스럽게 급사하자

 

원소의 세력은 서로 갈라져 내분이 일어납니다. (사실상 원상, 원담, 고간의 3개 세력으로 분할됨)


이 틈을 노려 조조는 업성으로 진격하나 합심한 그들에게 되려 패배하고 소득없이 허도로 귀환합니다.


곽가는 진격하면 그들은 뭉칠 것이고 물러나면 내분을 일으킬 것이니 당분간 군을 물리자는 진언을 올리고


이에 조조는 의견을 받아들여 유표 공략으로 말머리를 돌립니다.

 

그러자 역시 곽가의 예측대로 그들은 내분을 일으켰고 원담이 원상에게 패배해 평원에서 포위당한채

 

항복을 청해오자 이를 받아들입니다. 

 

이를 명분삼아 다시 군을 이끌고 북상, 원상은 원담이 있던 평원의 포위를 풀고 업을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나

 

조조에게 대패하고 업성은 결국 함락이 되었는데, 원담이 이 틈을 타 원상의 세력이던 기주를 공략하자


조조는 이를 빌미로 원담마저 격파해 원담은 남피성에서 전사하고 맙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고간은 조조에게 항복을 해버리고 원상은 원희가 있는 유주로 달아나지만


반란에 의해 축출, 오환의 근거지인 유성까지 다시 쫓기게 되는데 조조가 만리장성을 넘어 유성까지 쫓아가자


요동의 공손강에게로까지 도망갑니다.

 

한편, 조조가 만리장성을 넘자 항복했던 고간이 꽤 큰 규모의 반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순욱에 의해 제압당하고

 

고간은 유표에게로 도망가다 붙잡혀 처형당합니다.


조조는 곳곳에서 원상의 잔당 세력을 소탕하며 천천히 업으로 귀환했고

 

공손강은 원희, 원상을 참수해 그 머리를 조조에게 보내게 되며

 

결국 이로써 하북 일대는 전부 조조에게 평정, 조조의 세력은 중화 제 1의 세력이 됩니다.


이때가 208년 1월이었으니 관도대전 이후 하북의 세력을 모두 평정하는데 무려 7년여의 시간이 걸리게 된 것입니다.

 

 

<4부(마지막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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