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명수를 판 돈의 일부가 독립운동 자금으로 들어갔고, 민 선생은 독립운동으로 수차례 옥고를 치르다 별세했다.
이후 일제의 압박으로 동화약품은 파산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 우리나라에서 ‘만병통치약’으로 꼽히던 약은 ‘활명수’였다.
활명수가 만병통치약이 된 배경에는 ‘머슴밥’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양의 음식을 빨리 먹는, 한국인 특유의 식습관 때문이었다.
위장병 치유에 탁월한 효능이 있었던 활명수는 사람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1897년 출시된 활명수는 우리나라 특허국에 처음으로 등록된 상품이다.
구한말 궁중에서 임금을 보필하는 무관(선전관)이던 민병호 선생이
궁에서 쓰던 전통 한약재와 서양 약재를 섞어 만들었다.
물약 형태인 활명수는 한약처럼 달여 먹지 않아도 돼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국내 최초로 특허 등록된 상품인 만큼 유사 제품도 쏟아졌다.
동화약품은 1919년 ‘부채표’라는 브랜드 마크를 활명수에 달았다.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원조 마케팅이 시작된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