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케이블에서 서프라이즈 재방송을 우연히 봤는데, 정말 어이가 없는 내용을 봤네요...
서프라이즈 방송은 2017년 2월에 방영한 겁니다.
서프라이즈 대상의 이름은 나혜석 (배우 나문희 여사의 고모 할머니)...
나혜석은 일제 강점기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나 진명여고를 수석졸업하고,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신여성으로 미술교사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친일파!!!)
여학생들이 선생님은 왜 미술교사가 되었냐는 물음에 결혼하기 싫어서라고 답을 함.
실제로 나혜석은 결혼하기를 거부하는 중이었는데 그녀의 부모가 정략결혼을 하라고 강요했지만 결혼을 여성의 족쇄라고 생각하던 나혜석은 결혼을 거부하고, 부모와의 연을 끊고 독립을 해서 미술교사 생활을 했던 것임.
그리고 결혼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담아 소설로 썼는데 그 소설 제목이 [경희] 였다.
"아버지가 시집가면 좋은 옷에 생전 배불리 먹다 죽지 않겠니?"
하실 때에 경희는 그 무서운 아버지 앞에서 평생 처음으로 벌벌 떨며 대답했다.
"남편이 벌어다 준 밥을 그대로 얻어먹고 있는 것은 우리집 개나 다를 바 없지요!"
-[경희] 소설내용 中-
하지만 그래도 하늘이 정해준 짝이 있었던지 나혜석을 짝사랑하여 6년 동안 쫓아다니던 일본 외무성 외교관이었던 김우영과 결혼을 하게 됨.
이때 나혜석이 김우영에게 내건 결혼 조건이 있는데
1.'그림 활동을 방해말고 지원을 아끼지마라'
2.'무슨일이 있어도 어머니를 모시지 않겠다'
3.'내가 무슨 잘못을 해도 평생 나만 사랑해라'
이었다...
하지만 6년동안 짝사랑하면서 쫓아다녀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어 있던 김우영은 무조건 당신이 원하는데로 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결혼을 함.
그 후 조선 최초의 여성서양화가로서 대성공을 거두는데, 첫 개인전에 몇 천명의 인파가 몰려고, 약 20장 이상의 그림이 고가에 팔려나감.
한마디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
서프라이즈에서는 나헤석이 아기에 대해 했던 발언이 안나오지만 찾아보니 어이가 없어서 적겠습니다.
나혜석은 [아이는 에미의 살점을 떼어먹는 악마] 라고 분노했고, 모성애는 사회가 여성에게 인위적으로 강요한 역할이라고 주장!! 또한 모성이라는 이름 아래 어머니는 수많은 희생을 감내하고 이는 본능이 아니라 강요라는 주장.
여성에게도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의 자유와 성공 등의 욕구가 존재하며 현모양처는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인습이자 굴레라고 비판.(이건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악마라는 발언은 개인적으로 절대 받아 드릴 수 없음.)
또한 자식에 대해 [잠 없고는 살 수 없다. 이런 것을 탈취해가는 자식이 생겼다 하면 이에 더한 원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는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 정의한다.]라고도 발언.
나혜석은 결혼 1년 만에 첫아이를 낳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빠른 임신, 고통스러운 출산과 육아의 심경을 [모(母) 된 감상기]로 『동명』지 1923.1.1~21호에 발표.
[모 된 감상기]에서 나혜석은 자신의 임신 과정을 고백했는데 입덧을 하면서도 자신이 임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음.
“그런 중에 뱃속에서는 어느덧 무엇이 움직거리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은 나는 몸이 오싹해지고 가슴에서 무엇인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고 적었다.(헐!! 나참!!)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미술공부가 더 하고 싶었던 나혜석은 남편에게 유학을 다시 가고 싶다고 말했고, 남편은 흔쾌히 보내줌.
여기서 서프라이즈에서는 미술공부 때문에 유학을 간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일본 외무성 외교관이었던 남편 김우영을 따라 1년 8개월에 걸쳐 유럽, 미주 등을 여행한 것이었다. (한국 여성 최초의 세계일주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여행은 공무상 출장이 아니라 개인 여행이었기 때문에 남편 김우영은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게 되고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때 업무로 인해 남편 김우영이 나혜석을 남겨두고, 독일 간 사이에 파리에 남아 있던 나혜석은 최린이라는 남자와 바람(불륜)이 나버린다.
이 일을 알게 된 남편이 파리로 급히 돌아왔고, 귀국함. 이후 남편은 외무성 일을 그만두게 되고 변호사가 되었다.
귀국 후 경제적 어려움이 생기자 나혜석은 시댁으로 내려감.
서프라이즈에서는 불륜 때문에 바로 이혼 당한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귀국 후 8개월 밖에 안 지났을 때 잡지에 [나도 그를 퍽 흠모했다] 고 최린을 두둔했고, 남편이 외무성 일을 그만두고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자 파리에서 불륜상대였던 최린과 만나기 시작.(이건 나혜석 본인이 스스로 밝힘).
결국 남편과의 10년 결혼 생활을 접고 이혼하게 된다. (서프라이즈에서는 결혼 전 [내가 무슨 잘못을 해도 평생 나만 사랑해달라]는 조건이 있지 않았냐며 말함.)
이렇게 남편 김우영과 이혼 후 최린과 함께하기 시작하는데 최린은 나혜석을 버림.
남편 김우영은 이혼 4개월 후 재혼을 했음.
오갈 때가 없어진 나혜석은 최린에 대해 정조유린죄라며 당시 돈 12,000원의 소송을 걸었다.
평생 여성에게 강요되던 보수적인 정조관념을 거부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며 정조의 자유를 외치던 본인의 행보와 상반되는 소송 제기라.....(전형적인 내로남불임)
이혼 4년 뒤 이혼고백문을 잡지에 기고했는데
[여자도 사람이외다! 한순간 분출하는 감정에 흩뜨려지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사람이외다!
남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내자식의 어미이기 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내가 만일 당신에 같은 남성이었다면 오히려 호탕한 성품으로 여겨졌을 거외다.]
-나혜석 [이혼고백서] 中-
서프라이즈에서는 이 구절만 나왔는데 나혜석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구절이 또 있음.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여성에겐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 합니다. 서양이나 동경사람쯤 되더라도 내가 정조관념이 없으면 남의 정조관념 없는 것도 이해하고 존경합니다.]
라고도 적었다.(진짜 내로남불...)
이혼 후 나혜석은 스스로 당당(자기가 불륜 저지르고서...)하게 행동했지만 저런 어이 없는 글들을 잡지에 기고하며 정신승리하다가 가족, 친지들까지 결국 등을 돌리고, 그림도 안팔리면서 경제적 곤경에 처하게 된다.
결국 지칠대로 지친 나혜석은 프랑스 파리로 떠날 생각을 한다.
[가자. 파리로. 살러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나를 죽인 것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자로 만들어준 것도 파리다. 나는 파리가 죽으련다.]
(파리에서 불륜 저질러 놓고 뭐가 어쩌고 저째!!!!)
하지만 파리로도 못가는데 그것이 아이들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헌데 [아이는 에미의 살점을 떼어먹는 악마] 라고 분노하고, 모성애에 대해 비난하던 사람이 저런 모습 보인다는게 어이가 없었음.
참고로 나혜석의 자녀는 3남 1녀... 김나열(큰딸), 김선(첫째아들), 김진(둘째아들), 김건(셋째아들)
실제로 낳은 건 아들 셋. 큰딸은 남편 김우영의 전처 소생이었다. 한마디로 김우영은 전처와 사별한 애딸린 홀아비였다.
어쨋든 나혜석은 아이들 때문에 파리로 못가고, 양로원을 전전하며 살다가 아이들을 보기 위해 양로원을 탈출하여 김우영을 찾아갓지만 김우영의 반대로 아이들을 보지못하고 실종...
1948년 12월 나혜석은 길거리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나혜석은 영양실조 실어증으로 행려병자가 돼 사망했다.
사실 나혜석은 1920년대에 비밀리에 의열단 활동을 지원하는 등 다방면으로 독립 운동을 지원했었고, 오빠 나경석은 독립운동가이자 화가였다.
물론 독립운동을 지원하긴 했지만 저런 막장드라마 적인 삶은 좋게 볼 수가 없음.
현재는 페미들에게 우리나라 페미니즘 운동의 시초로 여겨지고 있는 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