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5시 33분쯤 서울 성동구 옥수나들목 한강변에 모인 시민들이 발을 굴렀다.
강 한복판에 A(47)씨가 빠져 둥둥 떠 있었다.
고개를 물 속으로 밀어 넣은 상태. 그는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다. 극단적인 마음을 먹은 것이다.
“자전거 좀 빌리겠습니다.”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한강변을 달리던 남성이 불쑥 나와 주차된 자전거 위에 올라탔다.
그가 죽어라 페달을 밟아 도착한 끝에는 주황색 구명환이 있었다.
구명환을 어깨에 맨 그가 지체 없이 강물로 뛰어 들었다.
A씨는 강변에서 150m가량 떨어진 한강 한복판에서 허우적 거렸다.
남성은 강변에서는 바닥을 디뎌 내달렸고, 수심이 깊어지자 수영으로 전환했다.
머뭇거리던 A씨가 남성이 건넨 구명환을 움켜쥐었다.
강변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면 20여명의 시민들이 “와”하고 환호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5분.
시민들은 흠뻑 젖은 남성 주위를 빙 둘러싼 뒤 손뼉을 쳤다.
“영웅이다”라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 출동한 경찰이 신원을 묻자 남성은 “해군 출신입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한강 의인(義人)’은 현재 국방부 정보본부에서 근무하는 현직 해군장교 김용우(51)중령이었다.
구조 당일은 마침 국방부에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행복 만들기’ 날로 퇴근시간이 일렀다.
전역예정자인 김 중령은 국방부에서 ‘전직(轉職)교육’을 받은 뒤 한강변을 뛰고 있었다.
2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만난 김 중령은 군복 차림이었다.
“시민들이 모여서 고함을 지르는 곳으로 간 뒤에야 상황을 알았습니다. 우연이 겹쳤다고 할까요. 평소 조깅을 하던 코스였어요. 조깅하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구명환을 기억해 냈습니다.”
김 중령의 예상과는 달리 물 속은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발이 푹푹 빠져서 신속하게 전진하지 못한 것이다.
처음에는 달리기로 물 속으로 나아갔고, 수심이 깊어지던 구간부터는 수영을 했다.
A씨가 빠진 곳은 신장 177 cm 인 김 중령이 완전히 잠길 정도로 깊었다.
“극단적인 마음을 먹었는지 (A씨가) 두 팔을 벌리고 얼굴을 물 속에 파 묻고 있었습니다. 다가가니 처음에는 ‘감사하지만 괜찮다’라고 구조를 거부했습니다. 숨을 못 쉬는 위급한 상황이 되자 본능적으로 구명환을 잡더군요. 뭍으로 돌아올 때까지 저는 그저 ‘괜찮습니다’, ‘힘내세요’라고만 했습니다. 발이 닿는 곳부터는 손 붙들고 같이 나왔습니다.”
김 중령은 평생을 바다에서 보냈다. 고향이 제주도다.
10살 무렵부터 온 몸으로 파도를 받아가며 헤엄쳤다.
중학교 시절에는 제주도 선착장에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낸 적도 있다.
‘바다가 좋아서’ 해군이 됐다. 학군사관후보생( ROTC )으로 임관해 해군에 재직한 지 28년째. 김 중령은 ‘구조’한 것이 아니라면서 쑥스러워했다. “저는 손만 내밀었을 뿐이고, A씨가 걸어 나온 겁니다. 오히려 내민 구명환을 잡아주셔서 고마운 마음이 컸습니다.”
그는 내후년인 2020년 3월 30일 전역을 앞두고 있다.
중령 계급 재직 연령제한이 만 53세이기 때문이다.
전역 이후에는 군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안전전문업체 창업을 모색하고 있다.
아직 진로를 확실히 정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김 중령은 “전쟁이 터지면 군인은 적과 싸우지만, 평시에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본업”이라면서 “같은 상황이었다면 모든 군인들이 나처럼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김 중령이 구조한 A씨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가정사를 비관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면서 “출동까지 ‘골든 타임’에 김 중령이 구조한 덕분에 큰 일을 면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