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해소 음료는 정말 숙취를 해소할까?
송년회 등으로 술자리가 잦은 연말. 술과 함께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제품이 있다. 술을 빨리 깨게 해준다는 '숙취해소제'다.
1992년에 처음으로 출시된 이후 여러 제품이 잇따라 출시됐고 숙취해소제 시장은 꾸준히 성장해 이제 연 2천억원대에 달하는 규모로 커졌다.
하지만 숙취해소제를 먹고 효과를 봤다는 의견과 효과가 없었다는 의견이 갈린다. 더러는 숙취해소제가 정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도 한다.
숙취해소제는 정말 숙취해소에 효과가 있는 걸까? 관련 연구 내용과 복수의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따져봤다.
숙취해소제?…약·건강기능식품 아닌 '일반식품'
흔히 말하는 숙취해소제는 명칭 때문에 자칫 의약품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사실 의약품이 아니다. 숙취를 해소하는 건강기능식품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건강기능식품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숙취해소제라는 표현 자체가 틀렸다. 식품이든 의약품이든 '숙취해소제'라는 명목으로 허가를 받은 제품은 없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 대부분 음료 형태인 만큼 '숙취해소 음료'라고 부르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숙취해소를 표방하고 있는 제품들을 `일반식품'으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이 아니기 때문에 까다로운 인증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는 숙취해소 효과를 인증받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식약처는 안전성과 기능성을 입증한 제품에만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의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일부 환(丸) 형태의 제품도 있지만 모두`식품'이다. 일반식품을 알약이나 캡슐처럼 의약품 형태로 만드는 건 불법이다.
`숙취해소'를 목적으로 허가받은 의약품도 없다. 간 기능 개선제나 강장제, 피로회복제는 있지만 숙취를 직접적으로 해소하거나 제거할 수있는 의약품은 개발되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식품이든 의약품이든 임상시험을 통해 효능을 인정받거나, 숙취해소에 명백히 효과가 있다고 인증받은 제품은 없다.
때문에 숙취해소 음료는 성분표시만 제대로 하면 시중에서 판매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음주전후', '숙취해소' 등의 표시를 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과다한 음주는 건강을 해칩니다"라는 주의사항을 표시하게 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 - 식품 등의 표시기준)
과거 식약청(현재 식약처)이 숙취해소제를 표방한 제품이 사용한 '음주전후', '숙취해소'라는 문구가 소비자들로 하여금 잘못된 인식을 갖게 할 우려가 있다며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 했지만, 헌법재판소가 해당 문구 사용의 금지가 영업과 표현의 자유, 재산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면서 해당 문구를 표시한 제품들이 활발히 유통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약처는 영업자가 숙취해소에 대한 근거를 가지고 정해진 규정에 따라 제품에 관련 내용을 표시할 수 있도록 유도·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의들 "의학적 근거 약해...맹신은 금물"
전문의들은 숙취해소 음료의 효능이 의학적·임상적으로 검증된 게 아니기 때문에 맹신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김양현 고려대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효능에 대한 근거가 미약한 것이 대부분이다. 현재까지 가장 좋은 숙취해소 방법은 술을 적게 먹거나 아예 먹지 않는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김 교수는 "간 기능 개선이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한 동물 연구에서는 별 효과가 없다는 결과도 있다."면서 "숙취해소 음료를 마시면 술을 많이 먹어도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준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도 "임상적으로 봤을 때 숙취해소제의 효과는 거의 없거나 있다고 해도 미미한 수준이다."라며 "특히 숙취해소 음료를 마시면 술이 금방 깰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 마련인데, 사실상 그런 효과는 없다고 보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숙취해소 음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직접적인 숙취해소 효과에 대해 검증된 점은 없지만 인체의 숙취해소 활동을 일부 돕는 보조식품으로서의 역할은 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음료 자체가 수분이고 간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성분이 소량 들어있다는 점을 고려한 판단이다. 다만 그 정도의 수분과 영양은 다른 식품을 통해서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김경수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숙취해소제는 단순 보조식품일 뿐 치료약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 과신해 과음을 하면 심각한 간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며 "특히 알약이나 환 형태로 된 제품은 '약'으로 오인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대원 한양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도 "경험적으로 특정 음식이나 식품을 먹는 경우 술이 깨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 단기간의 진통·각성효과인 경우여서 숙취해소 음료가 알코올을 분해하거나 배출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조영윤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효능에 대한 충분한 근거는 없지만, 일종의 자기만족을 위해 섭취하는 측면이 있는 만큼 `주관적으로 느끼는 효능'에 대해서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전문의들은 올바른 숙취해소 방법을 묻는 말에 "특별한 숙취해소 방법은 없다."고 강조하면서 '가벼운 음주', 충분한 수분과 채소 섭취', '적절한 휴식' 등을 추천했다. 숙취해소 음료가 개당 4~5천원이 넘는 가격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른바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자 입장에선 반갑지 않을 수 있는 대목이다.
관련 연구도 "효능 근거 미약"…추가 연구 필요
알코올이 숙취를 일으키는 원리는 아직까지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알코올이 체내에서 분해될 때 생기는 과잉의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신체에 각종 영향을 미쳐 숙취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 의견이 유력하다. 그렇다보니 아세트알데하이드의 분해를 돕는 효과를 강조한 제품들이 많이 출시됐지만, 의학적 근거는 빈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기관과 국립병원, 국내 대학 병원 등에 의약품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약학정보원은 지난해 말 '숙취해소제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저자(김성철 영남대 임상약학대학원 겸임교수·약학정보원 학술자문위원)는 보고서에서 "숙취해소제가 효과가 있다는 임상적 근거는 약하다."고 결론내렸다. 그는 숙취해소제 복용과 상관없이 "간기능 자체의 증진이 알코올 대사에 도움을 주고 알코올로 인한 아세트알데하이드의 피해를 감소시켜 주지만 그럼에도 숙취를 신속히 해소시켜주지는 못한다는 것이 정설이다."라고 밝혔다.
저자는 또 "혈중 당류의 부족은 숙취를 야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숙취해소제는 설탕 함유량이 다소 높게 나타난다. 당뇨병환자나 대사증후군 환자, 비만 환자는 설탕 함량이 많은 제품을 복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영국의학잡지(British Medical Journal)에 실린 내용도 언급했다. 2005년 발표된 '알코올 숙취 예방 및 치료 요법'이라는 연구에 따르면 "숙취를 해소시키는 의료적 방법은 없다."고 결론내렸다. "숙취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알코올 음료를 섭취하지 않는 것"이라며 "대부분의 치료법은 숙취를 완전하게 제거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아직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숙취해소제(음료)의 효능을 집중적으로 다룬 연구는 거의 없다. 업체가 자체적으로 연구한 결과들이 있긴 하지만 공신력 있는 결과라고 할 순 없다. 간 기능에 도움을 주는 성분에 대한 연구는 과거부터 활발히 진행됐지만, 숙취해소 효과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손에 꼽을 정도다.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숙취해소제 시장이 나날이 커지는 만큼 그 효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