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만에 밝혀진 백제 의자왕의항복의 진실

하하하쏭 작성일 19.04.25 02:28:56
댓글 86조회 18,051추천 130
155612570399563.jpeg의자왕 (599년~660년)

 

백제의 마지막 왕으로

 

우리에게는 보통 삼천궁녀로 인해 문란하고 부정부패의 왕으로 알려져 있다

 

 





 

 

 

 

 

 

 

 

1300여년만의 진실

 

 

 

 

'예식진 묘지명'

 

 

 

 

 

 

 

어느날 중국 낙양에서 무덤이 하나 발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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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명에는 대당좌위위대장군이라고 적혀있다.

 

좌위위는 우위위와 더불어 당왕조의 16위 중 하나다.

 

여기서 16위란 조정의 금위군이다.

 

전문적으로 황제와 조정 그리고 수도의 안전을 도모하는 부대의 수장이다.

 

당나라의 황제가 신뢰하고 의지했던 사람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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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의 묘지명에는 백제웅천인이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의 백제웅천이란 백제의 웅진

 

즉, 오늘날의 충남 공주 출신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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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의 묘지명을 분석했다.

 

묘지에는

 

예식진, 조부 좌평 예다, 부 좌평 사선이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좌평이란 당시 백제의 최고 직위였다.

 

조부와 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말한다.

 

즉, 예식진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백제의 고위 관료였던 좌평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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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예식진은 614년에 태어나서 672년에 사망했다라고 적혀있다.

 

백제가 660년에 멸망했고, 좌평집안 출신인 예식진은 672년까지 살았으니

 

백제 멸망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일단 의문이 몇가지 든다

 

도대체 예식진은 누구인가?

 

그는 어떻게 백제 출신임에도 당나라의 고위직이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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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서 소정방 열전에 보면

 

'그 장군 예식이 의자왕과 함께 항복하였다'라고 적혀있다



의자왕은 660년 7월 18일 수도 사비가 아닌 웅진성에서 항복한다

 

그런데 왜 '의자왕'과 '예식'이 함께 항복했다고 적혀 있을까?

 

 

 




그리고
백제 멸망 당시 장군이였던 예식과 당나라 대당좌위위대장군 예식진은 무슨 관계일까?




일단 예식과 예식진의 관계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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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동일 인물이다.

 

백제 멸당 당시 장군인 '예식'은 당나라 고위 관료인 '예식진'과 동일 인물이다.

 

한자에 차이가 있는건 백제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한자가 변경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항복한 장수가 어떻게 당나라의 고위직이 될 수 있었을까?

 

 

 

 

 

 

 

백제 멸망 직전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당시 의자왕은 660년 7월 14일 웅진성에서 예식장군과 함께 방어선을 구축하고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의자왕은 항전을 하기 위해 수도인 사비성이 아닌 웅진성을 택했을까? 

 

그 이유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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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도였던 사비는 평지이고, 웅진은 산에 있어 방어하기가 더 쉽다

2. 웅진성을 맡고 있는 예씨 가문은 무왕 시절부터 함께 했다.

3. 웅진성 주변에는 임존성이라는 곳이 있다.

4. 임존성에는 흑치상지 가문이 있어 의자왕을 도울 수 있었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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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이렇게 오방으로 나누어 나당연합군에 대항했다

 

의자왕은 지방군을 활용해 사비를 포위하고 나당연합을 섬멸하려고 했다

 

 

 

 

만일 나당연합군이 의자왕이 있는 웅진성을 공격하면

 

임존성에 있는 흑치상지가 웅진성을 도울 수 있었다.

 

또한 오방에 있는 지역에서 군사를 동원해 나당연합군을 사방에서 공격 할 수 있었다.

 

의자왕은 이러한 점들 때문에 웅진성을 방어하는 곳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나당 연합군

 

그들에게는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는 18만 연합군의 식량

 

사비에 있던 식량은 전투중에 불에 타버렸고, 벼는 수확하려면 두 달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그들이 택한 방법은 신라로부터의 조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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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라의 식량은 진현성에 주둔해 있던 백제군 때문에 차단당했다

 

이 때문에 당나라 군사들은 식량을 보급받지 못해 지친 상태였다

 

이에 당나라는 식량 보급을 위해 길을 뚫으려고 했으나

 

백제군에게 모두 몰살당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전세가 나당연합에서 백제로 움직이고 있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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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성에서는 큰 일이 발생한다

 

항전 5일째인 7월 18일 의자왕이 갑자기 항복을 한다

 

당시 웅진성의 실질적인 군지휘관이였던 예식 장군도 함께 항복했다.

 

도대체 의자왕은 유리한 상황에서

 

왜 갑자기 항복한 것일까?

 

 

 

 

 

 

 

 

지금부터 이 모든 의문을 풀어보자


 

 

 

 

 

중국의 어느 역사책에 보니 이상한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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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의자왕의 항복을 서술하고 있는데

 

모두 의자왕이 주체가 아닌 장군 예식이 주체로 되어있다

 

보통은 중요한 사람을 주체로 쓰게 되어있다.

 

즉, 백제 항복 당시에는 의자왕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게 맞다

 

그런데 저 역사책에는 예식이 주체가 되어 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혹시 역사서에 잘못 적어놓은 것인가?

 

 

 

 

 

그 다음에 나오는 태자융(백제)의 항복 부분을 보면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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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태자융은 의자왕의 아들이였기에 태자융이 주체로 나온다

 

즉, 역사서에 잘못 적혀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역사에는 김일제라는 인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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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물은 흉노 출신으로 한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중국 역사에선 이민족이 공을 세우면 항상 김일제에 비유한다.

 

김일제는 항상 중국 역사에서 이민족의 모범이자 비유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식진의 묘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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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김일제의 무리와도 업적을 논하고 우열을 비교할 수 없으리 만큼 높다'라고 적혀 있다

 

 

 

예식진은 이민족의 모범인 김일제보다 더 극찬받는다

 

 

 

 

 

 

또한

 

당시 당나라는 개방적인 국가로 이민족이라도 공을 세우면 대우해주고, 공을 자세히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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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항복 후에 당나라로 건너가 큰 공을 세웠던 흑치상지의 묘지명을 보면

 

그가 공을 세울 때마다 어느 직위에 올랐는지 자세히 적혀있다

 

 

 

 

 

그런데 예식진은 이상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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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에 대한 부분이 하나도 적혀있지 않고

 

오직 '대당 좌위위 대장군 예식진 묘지명'이라고만 적혀있다

 

그의 공적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민족 사학자 신채호는 의자왕의 항복 장면을 독특하게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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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의 수성 대장이 의자왕을 잡아 항복하라 하니 왕이 동맥을 끊었으나..'

 

'당의 포로가 되어...'

 

 

여기서 '웅진의 수성대장'이란 예식을 말한다.

 

'동맥을 끊었다'는 자살을 의미한다

 

 

 

신채호의 서술을 해석하자면

 

 

'예식이 의자왕을 잡아 항복하라 하니 의자왕은 자살하려고 했다'

 

가 된다.





예식이 의자왕을 사로잡아 항복하라고 했다고?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역사서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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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장예식 우장의자래항'

 

저 중 명확하게 해석이 된

 

'기대장예식과 의자'를 제외하면

 

총 4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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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래항' 만 남게 된다

 

 

여기서의 '래'는 오다

 

'우'는 또

 

'항'은 항복하다

 

로 해석이 된다

 

 

 

 

나머지 글자는 명확하게 해석이 됐는데 딱 1개의 글자만이 해석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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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도대체 이 장은 무엇일까?

 

 

 

 

 

 

 

'장'은 명사로는 '장수'라는 의미가 있고

 

동사로는 '거느린다, 데리고 간다'라는 의미가 있다.

 

저기서의 장은 '동사'로 해석된다.


 

 

 

 

 

 

 

 

'기대장예식 우장의자래항'을 해석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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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이 의자왕을 데리고 와서 항복을 했다'가 된다

 

 

 

 

왕을 데리고 가다?

 

 

 

 

그렇게 유리한 상황이였는데

 

의자왕이 갑자기 항복을 했고,

 

예식이 항복한 의자왕을 데리고 당나라에게 갔다고?

 

 

 

 

 

뭔가 이상하다

 

 

 

 

해석이 안된 '장'이라는 글자에는 아직 의문이 남아있다.

 

 

 

 

 

'장'

 

어떻게 해석을 해야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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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고 가다?'

 

아니면

 

'체포해 가다?' 

 

 

 

이 '장'에는 의문이 있었고

 

 

중국 현지의 역사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됐다.

 

 

 

 

 

 

 

한문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중국 역사학자의 의견을 들어봤다.

 

 

 

 

 

 

 

 

 

 

이 중국 역사학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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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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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사로잡아서'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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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서 배신이다








                그렇다







백제 출신의 항복 장수였던 예식진

 

 

 

 

 

 

 

대당 좌위위 대장군 예식진의 공적은

'주군을 배신하고 항복시킨 것'이였다.

 

 

 

 

 

 

 

 

모든 비밀이 풀렸다.

 

예식진의 묘지명에 공적이 적혀있지 않았던 이유

공적 없이 한 번에 황제를 보좌했던 대당좌위위대장군의 자리에 올랐던 이유

유리한 상황의 의자왕이 갑작스럽게 항복한 이유

 

 


 

 

 

 

 

 

 

660년 7월 18일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은

 

주군을 배신한

 

예식진에 의해 항복하게 됐다.

 

그렇게 678년간 이어져 온 찬란한 백제는 한 장수의 배신에 의해 멸망했다.

 

 

 

 

 

 

 

 

 

 

 

백제의 의자왕은 항전 중 유리한 상황이였음에도

 

한 장수에 의해 사로잡혀 강제로 항복하게 됐다.

 

그렇게 600년을 넘게 이어진 백제는 멸망했다.

 

 

 

 

 

 

그리고 의자왕은

 

자신이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인해

 

1300여년이 넘도록 후대의 사람들에게 조롱당해 왔다.

 

 

 

 

 

 

 

 

배신자 예식진의 묘비명에는 당나라 황제의 사랑이 어느정도인지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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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아름다운 총애를 입고...

천자의 은혜로운 빛이 흡족히 내려지고...

 

 

 

 

 

 

 

 

 

이후

 

 

 

예식진은

 

백제와 의자왕을 배신한 후

 

잘 살다가

 

 58세의 나이에 사망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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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유해는 당의 고위관료들이 묻히던 무덤인 고엔위안에 안장됐다.

 

 

 

 

 

 

또한

 

 

 

의자왕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삼천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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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년 완성된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보면
삼천궁녀에 대한 언급은 찾아 볼 수 없다.

 

 

즉, 이 삼천궁녀는 후대의 문인들이 

 

지어낸 허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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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충남 부여에서는 봉토식이 있었다.

 

이 봉토식은 백제의 마지막왕인 의자왕의 봉토식이였다.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은 

 

 

 

1340년만에

 

 

 

전쟁 포로로서의 일을 끝내고

 

 

 

백제땅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155612687283044.png
참고 및 출처 : KBS 역사추적 5회예식진 묘지명 - 1300년 만에 밝혀진 의자왕 항복의 비밀

원문 출처 - 펨코
긴글은 안퍼오는데 내용이 재밌어서 퍼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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