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일본 군의관들의 보고서때문이었습니다.
1939년 상해파견군 제14병참병원 외과병동에 근무하던 군의관 소위 아소 테츠오(??徹男)는 '화류병의 적극적 예방법(花柳病の積極的予防法)' 이라는 보고서를 씁니다. 계기는 당시에 일본군이 중국에 진출한 이후 각지에서 강간을 하거나 매춘부를 사면서 성병이 도니까, 성병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태파악을 위해 (인근 중국 초등학교에 설치되어 있던) 육군오락소를 방문해서 거기에 있던 위안부들을 검진했습니다. 북큐슈에서 온 일본인 매춘부 20명과 조선에서 끌려온 젊은 여자들 80여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병 검사를 한 후, 아소 군의관은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냅니다.
일본에서 온 여자들은 매춘을 직업으로 하던 나이든 여성들이었으며 전원 성병이 있거나, 성병이 의심되는 반면에, 조선에서 끌고 온 여자들은 육체적으로 무구하거나 (처녀였거나) 성병이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군의관들이 모여 회의를 한 후, 창부의 질을 개선할 것을 건의합니다.
성병 예방대책으로써, 일본의 매춘부들을 쓰지말고, 조선에서 성경험 없는 어린 여자들을 데려오는 것을 보고서에서 건의한 것입니다.
장교들은 성병이 적은 이유는, 남경, 한커우 등지의 일본장교들이 드나드는 클럽이 조선여인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도 보고를 했습니다.
"命令にいわく『麻生軍?は近く開設せらるる陸軍??所の?目下其美路沙□(さん)小?校に待機中の女子百余名の身??査を行う可し』
ただちに私たち一行,軍?兵隊それに福民病院の看護婦二名を加えた名にて出かけたこれが「日支事?」以降「大東??」を通じて兵站司令部の仕事として慰安所管理の嚆矢となった。
?時軍の輸送規定には兵隊軍馬の項はあっても婦女子の項はなかったのではなはだ失?なことには物資輸送の項に該?させたりなど今から考えると妙なことであった
彼女ら「皇軍兵士」の慰問使として朝鮮および北九州の各地より募集せられた連中であった. 興味あることには朝鮮婦人の方は年?も若く肉?的にも無垢を思わせる者がたくさんいたが北九州?係の分は?往にその道の商?をしていた者が大部分で後者の中には鼠蹊?部に大きな切開の蹊瘢を有する者もしばしばあった。(p41)"
"されば?地へ送り?まれる娼婦は年若き者を必要とす。而して小官某地にて?徽中??見し如き?鼠蹊部に??手術の瘢痕を有し明らかに?往花柳病の烙印をおされし、アバズレ女の類は敢えて一考を?へたし。此れ皇軍?兵への贈り物として、?に如何はしき物(ママ)なればなり。"
어째서 조선인 위안부는 늘어나게 되었는가 - 고노 담화를 지키는 시민의 모임
どのようにして、朝鮮人慰安婦が?えて行ったか?
(이사람이 아소 테츠오. 아니 잠깐 사람?....사람새끼인가)
화류병의 적극적 예방법 (花柳病の積極的予防法)
제11군 제14병참병원 (第11軍第14兵站病院)
육군 군의 소위 아소 테츠오 (陸軍軍?少尉 麻生徹男)
2. 창부
작년 1월 소관 상해 근무중에, 1일 명령에 따라 새로 오지에 진출하는 창부들의 검진을 행했습니다.
그때 피검자들은 반도의 여자 80여명, 내지(일본) 여자 20명으로서, 반도인으로서 화류병이 의심되는 자는 극히 소수였지만, 일본인의 대부분은 현재 급성증상을 보이거나 질환으로 의심되는 자들이었고, 연령도 태반이 20세를 넘겨서 그중엔 40세도 있고 기왕에 매춘업에 수년간 종사해온 자들로 보였습니다.
반도인은 어리고 연령이 낮아서 초심자(처녀)로 보이는 자가 많은 것도 흥미로운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창부의 질은 어릴 수록 양호합니다. 즉...
전장에 보내는 창부는 어린 여자가 필요합니다.
황군 장병들에게 보내는 선물로서 실로 어떠한 물건(여자)를 보낼 것인가의 문제이므로,
검진을 한 소견으로서는, 전장에 보낼 창부는 내지 여자들은 충분한 도태를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2 娼婦
昨年1月目小官上海郊外勤務中、1日命令により、新に?地へ進出する娼婦の?黴を行ひたり。
この時の被?者は半島婦人80名余、?地婦人20名にして、半島人の?花柳病の疑ひある者は極めて少?なりしも、?地人の大部分は現に急性症?こそなきも甚だ如何はしき者のみにして、年?も殆ど20?を過ぎ中には40?に、なりなんとする者ありて?往に?す淫嫁業を?年??し者のみなりき。
半島人の若年?且つ初心なる者多きと興味ある?象を?せり。
そは後者の?には今次事?に際し?募せし、未?育補充とも言ふ可きが交り居りし?めならん。
一般に娼婦の質は若年?程良好なるものなり。?ち…(ミュウヘンの?査) "
"されば?地へ送り?まれる娼婦は年若き者を必要とす。
而して小官某地にて?黴中??見し如き?鼠蹊部に??手術の瘢痕を有し明らかに?往花柳病の烙印をおされし、アバズレ女の類は敢へて一考を?へたし。
此れ皇軍?兵への贈り物として、?に如何はしき物なればなり。
如何に?黴を行ふとは言へ、一??地へ送り?む娼婦は、?地最終の港?に於いて、充分なる淘汰を必要とす。
まして?地を?ひつめたが如き女を?地へ鞍?へさす如きは、言語同?の沙汰と言ふ可し。 "
이리하여,
산부인과 전공의사의 의학적 견해(?)에 근거하여
(아소 테츠오는 큐슈 제국대 의학부 산부인과 전공출신이었습니다),
성병감염률이 낮고 성적으로 무구한 조선의 여성이 위안부로 좋다. 특히 어리고 건강할 수록 좋다는 건의에 따라 14~20세 사이 우리나라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잡아간 것입니다.
조선이 여자들의 정조 관념이 강해서 성병이 적다는 게 이렇게 이용당한 거였죠.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여성들을 섹스 상대로 데려가게 된 이유도 저거였구요.
(저는 이것도 의문이었어요. 왜 18~29세 여성들이 아니라, 아직 채 성장이 끝나지도 않은 14-20세 여성들을 대거 잡아갔는지... 발육도 안된 14세를 상대로 섹스를 하면 좋아? 라는 의문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저 일본군 군의관 보고서로 한큐에 의문들이 다 풀렸습니다.
어린 여자애들을 데려오라고 군의관들이 건의보고서를 올린 겁니다)
의사라는 딱지를 달고서 집단으로 모여 쓰레기 같은 발상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아소 테츠오는 진성으로 인간 쓰레기였다고 생각하는 게, 저게 그냥 냉정하게 감정배제한 채, 일본군으로서 의학적으로만 보다 보니까 생긴 업무상 잘못이 아닙니다.
보고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었거든요.
"군용특수위안소는 향락의 장소가 아니라, 위생적이어야 할 공동변소입니다. 따라서 군은 위안소내에 주류를 금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軍用特殊慰安所は享?の場所に非ずして衛生的なる共同便所なる故、軍に於ても慰安所?にて酒類の禁止されあるは寧口?然の事なり。"
성병의 진전을 막기 위해 주류 통제하자는 의견은 이해가 가지만, 공동변소 라는 용어는 의학적이고 냉정한 견해라기 보다는 경멸하고 비하하는 시각이 들어가 있다고 보아야겠죠.
그러니까 위안소를 공동변소(共同便所)라고 부르고, 거기에 쓰이는 여성은 육변기로 취급하면서,
성병 걸린 일본 매춘부들 말고,
순진무구한 조선인 어린 여자애들을 육변기로 써야 한다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아소 테츠오 군의관의 이 보고서는 상해 일본군 병참담당부서에서 히트를 칩니다.
"군 간부로서 작전밖에 모르는 중견간부들은 최초 이 의견서에 크게 흥미를 갖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병참담당이었던 우리들은 일독을 하고나서, 이거 잘 썼다. 잘도 조사해줬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냐가와 군사령관도 크게 주목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당시에 (우리들은) 그녀들을 공중변소 라고 생각하는 게 강했습니다만, 병참부서가 없으면 안되는 것처럼 중국에서의 작전도 이거 없으면 안된다. 라고 우려를 한 고급간부들은 이 의견서를 크게 찬성하였습니다"
「まず軍幹部というか作?面しか知らない中堅幹部は、最初この意見書に大した興味を持たなかったようです。しかし兵站??のわれわれは一?して、よく書いてくれた、調べてくれたと思ったものです。柳川軍司令官も大?に注目されたと聞いていました。
正直に言って?時、彼女らに?し公衆便所という考えが?かったのですが、兵站部がなくてはならないように、中??線でそれがなくてはならぬものであること、より優れたものでならぬことを考えていた高級幹部は、この意見書に大いに?意を?くしたようです。」
아소 테츠오의 보고서를 받아들여 조선인 위안부를 창설한 상해 파견군 참모부장 오카무라 야스지
"예전의 전쟁 시대에는 위안부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부끄럽지만 위안부안 창설자이다.
현재 각 병단은 거의 모두 위안부단을 수행하여 병참의 일 분대가 된 형태이다.
제 6사단 같은 부대는 위안부단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강간죄가 끊이지 않는 상태이다"
이렇게 해서 조선인 여자 십수만명이 일본군 종군위안부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한편 이런 반인륜적 초대형 사고를 친 아소 테츠오는 이후에 어떻게 되었나.
일본 후쿠오카에서 의사 개업해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더 웃긴 것은 이 인간이 기독교였습니다. (전후에 개종한건지 전전 부터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본 YMCA 후쿠오카 지부 주사 대행, 일본 기독교단 후쿠오카 중부 교회 주일학교 교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자기가 위안부 창시자라고 자랑하고 다녔나 봅니다.
위안부 1호를 자기손으로 검진했다고 하는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마이니치 신문 기자 千田夏光가 궁금증을 느껴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고, 1973년 책을 출판하게 됩니다. '종군위안부'라고.
https://www.amazon.co.jp/?軍慰安婦-%E3%80%94正%E3%80%95-講談社文庫-千田-夏光/dp/406183374X
-> 현재에도 판매되고 있군요.
이게 종군위안부를 본격적으로 다룬 일본 최초의 책이라고 하더군요.
일본에서는 넷우익들과 종군위안부를 부정하는 아베쪽 우익 정치인들이 필사적으로 헐뜯고 부정하는 서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위안부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알려져있고,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책인 것 같습니다).
아소 테츠오가 1989년에 80세로 죽자, 이후 그의 딸 天?都 (역시 의사입니다)가
이건 자기 아버지를 음훼한 것이며, 거짓말이 잔뜩 들어있는 책이다.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 매춘부들이었다 는 주장을 펴며, 우익 잡지에 열심히 기고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할망구 주장은 이렇습니다.
우리 아빠는 군의관이었을 뿐이다. 우리 아빠는 밖에 나가서 사람을 강제연행하고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성병이 걸리면 치료해주는 의사였다. 그리고 지극히 의학적 관점에서 성병 실태를 보고서로 작성한 것일 뿐이다. 우리 부대내에 조선인 여자들이 젊고 육체적으로 순진무구하고 성병이 없다 라고 보고서를 올린 것이지, 조선인 여자들을 잡아오라 고 보고서를 올린 게 아니지 않느냐 라는 것입니다.
마이니찌 신문 기자가 우리 아빠의 군의관 보고서를 부풀려서 소설을 쓴 거다. 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그럴싸 하지만, 아소 테츠오의 보고서에서 성병 "예방법"으로,
조선인 여자들이 성병이 없으니 걔네들을 데려와야 한다 라고 쓴 게 사실이거든요. 당연히 보고서를 읽어본 상해 일본군 병참부와 참모부는 조선인 여자애들을 잡아오라는 건의보고서로 이해했고,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러 놓고는 책임 회피하는 전형적인 일본식 논리이죠.
긴 글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역사이기에 가져옵니다.
원글의 출처는
이곳이고 제가 살짝만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