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시즌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다고 처음으로 속내를 꺼낸 김광현. 일본으로 출국 전 만난 김광현과의 인터뷰.(사진=이영미)>
김광현(31·SK)을 만났다. 2019 WBSC 프리미어12 예선라운드 C조 한국과 쿠바와의 경기를 마친 8일 늦은 밤이었다. 다음날 일본으로 출국을 앞둔 상태라 긴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는 메이저리그 진출과 관련된 솔직한 고백이었고, SK 구단에 대한 정중한 부탁이었다. 김광현은 지금까지 모든 걸 프리미어12 이후로 미뤘다. 그게 대표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른 내용들이 기사화 되는 부분들이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싶었다는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SK 입단 후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아요. 13년 만에 처음으로.”
구단주의 ‘구두 약속’
2016시즌 마치고 SK와 FA 계약을 마무리한 김광현은 자신의 부모님을 모시고 최창원 구단주와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식사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가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부모님이 계시는 자리에서 구단주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우리 팀에도 SK 출신의 메이저리거가 나왔으면 좋겠다. 광현이가 15승 거두고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룬 다음에 미국으로 가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민경삼 전 단장님도 함께 계셨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구단주 님은 제게 메이저리그에 가는 걸 돕겠다고 말씀해주신 것이죠.”
SK 최창원 구단주는 야구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열혈 팬으로 유명하다. 그는 바쁜 일정 중에도 KBO리그는 물론 류현진의 선발 경기를 챙겨 볼 정도로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높은 편이다. 이전 시무식 때는 공식적으로 “SK에서도 메이저리그 진출 선수가 나오기를 기원한다”고 밝혔을 정도다. 김광현은 이토록 야구를 좋아하는 구단주의 적극적인 지원 약속을 믿고 가슴에 담아둔 자신의 꿈을 다시 끄집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2014년 포스팅을 통해 접촉했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계약이 무산된 후 제 마음에서 메이저리그라는 단어를 지우고 살았어요. 샌디에이고에서는 2년에 구단 옵션 1년을 제시하며 연봉을 100만 불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클럽하우스 라커에는 ‘KIM’이라고 쓰인 유니폼과 선물까지 준비해둔 구단이 200만 불도 아닌 100만 불의 몸값을 제시했을 때 살짝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별 볼일 없는 선수로 취급받는 듯 했으니까요. 협상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준비도 부족했고, 저에 대한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포스팅에 나간 결과가 너무 참담했습니다.”
2014시즌 마치고 김광현은 갑자기 포스팅을 선언했고, 구단은 메이저리그 ‘입단’이 아닌 ‘진출’ 기자회견을 열었다. 물론 선수의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포스팅의 문을 연 것이지만 김광현에 대한 구단의 준비와 홍보는 절대 부족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김광현과 관련된 자료를 축적해 놓은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상태에서 포스팅에 나선 김광현은 포스팅 금액 200만 불을 받아들이겠다는 구단의 허락을 받고 샌디에이고로 향했다가 연봉 100만 불을 제시받기에 이르렀다. 낮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던 김광현은 샌디에이고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캐나다전에서 혼신의 투구를 선보였던 김광현.>
팔꿈치 수술, 2년 동안의 준비
그런 김광현에게 최창원 구단주는 메이저리그 진출의 희망을 다시 심어준 은인인 셈이다. 김광현은 2017년 팔꿈치 수술을 통해 통증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 제대로 공을 던지게 된다면 재도전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꿈을 부풀릴 수 있었다.
“2018시즌에 힐만 감독님이 제게 투구수 관리를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닝을 늘리고 싶었거든요.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려면 스카우트들에게 건강하다는 걸 보여줘야 했고, 그러려면 150이닝 이상은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감독님한테 로테이션 거르기 싫다고 말씀드렸는데 힐만 감독님은 제 건강을 앞세우셨어요. 136이닝을 소화했고, 11승 8패를 기록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기 때문에 저로서는 그 약속이 현실로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비록 15승은 이루지 못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은 달성했으니까요. 당시 메이저리그 팀에서 실제적인 오퍼도 있었어요. 무엇보다 수술 후 구속이 증가했고, 안정감 있게 마운드 운영을 해온데 대한 자신감도 컸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제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고요. 축승회와 감독님 이취임식 때 구단주님이 오셨지만 그 자리에서 개인적인 문제를 꺼내기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기억하시겠지, 잊지는 않으셨겠지 하는 마음으로 구단 연락을 기다렸는데 어떠한 메시지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김광현은 어쩔 수 없이 1년 더 뛰고 팀을 우승 시킨 다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무엇보다 염경엽 감독이 팀을 맡게 된 상황에서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김광현은 염경엽 감독에 대해 남다른 고마움을 갖고 있었다. 자신을 미국에 보내주려고 시즌 전부터 철저히 관리해줬기 때문이다.
“감독님은 넥센 시절 강정호, 박병호 선배를 미국에 보낸 경험이 있으시잖아요. 저와의 면담 때도 2019시즌 이후 메이저리그에 가야 하니 투구수 100개 이상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5번 정도는 제 선택으로 100개 이상 던질 수 있다는 조항도 있었고요. 감독님의 배려 덕분에 올시즌 건강한 몸 상태로 시즌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감독님이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도, 지식도 많으시고, 무엇보다 선수 입장에서 생각해주시는 부분이 무척 감사했어요.”
김광현은 염경엽 감독의 지원을 받고 시즌 목표를 상향 조정할 수 있었다.
“스프링캠프 때 가진 인터뷰 내용을 보면 올시즌 목표로 200이닝과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겠다는 내용, 그리고 평균 6이닝 이상을 던지겠다고 언급한 부분이 있습니다. 정규시즌 180이닝에다 포스트시즌 20이닝을 채워 200이닝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렇게 목표를 이룬 후 당당한 모습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올시즌 커브와 스플리터를 많이 보여준 것도 제 가치를 높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김광현=투피치’라는 인식을 허물고 싶었던 것이죠. 투수 김광현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했으니까요.”
<멋진 수비를 선보인 김현수, 그를 반기는 김광현.>
팬들의 응원, 김광현 마음을 움직이다
그러나 정규시즌 우승은 물론 한국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했던 SK는 줄곧 지켜오던 선두 자리를 빼앗기고 플레이오프 탈락이라는 변수를 맞이한다. 이후 김광현의 메이저리그행은 미궁으로 빠져 들었다. 김광현은 플레이오프 마친 다음날 나온 기사들을 보고 곧장 손차훈 단장을 찾아갔다고 한다.“기사들을 보면 마치 제가 우승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내년 우승을 위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미루겠다고 말한 것처럼 소개됐더라고요.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단장님을 찾아가 왜 이런 기사가 나오게 됐는지를 여쭤봤고, 구단주님과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는데 팀이 우승 못했다는 이유로 1년 더 남아달라고 한다면 저는 무슨 명분으로 공을 던질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김광현은 대표팀 소집 일정으로 최창원 구단주를 만날 수 없었다고 한다.
김광현은 SK 입단 후 모든 부분을 구단에 일임해 왔다. 자신의 연봉도 FA 때 외에는 구단이 제시해준 대로 받아들였다. 구단의 도움도 받았고, 지도자들의 배려 속에서 성장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에이스’의 자리를 묵묵히 감내하며 마운드에 올랐고, 공을 던졌다. 김광현이 기자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 건 나름 큰 용기가 필요했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었다.
“나중에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 두려웠어요.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선배들이 어느 순간 조용히 정리되는 걸 보고 자란 저로서는 제 목소리를 내는 게 조심스러웠습니다. 겨우 할 수 있었던 이야기가 ‘메이저리그는 제 꿈입니다’가 전부였었죠. 무엇보다 저는 이미 SK와 4년 계약을 맺은 선수입니다. 그 계약을 충실히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고요. 그런 부분도 제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게 됐던 것이고요.”
그럼에도 김광현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팬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사실 메이저리그 진출은 제 개인적인 꿈이잖아요. 그런데 팬들이 제 꿈을 응원해주고 보내주라고 하고, 가서 잘하라고 응원하는 글들을 보고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SK 팬들 입장에서는 제가 남아 있는 게 맞는 거잖아요. 그래야 더 좋다고 생각할 텐데 왜 안 보내주느냐고 말하는 걸 보고 순간 울컥해지기도 했어요.”
7일 캐나다전은 김광현한테 굉장히 중요한 경기였다. 개인적으로 복잡다단한 현실 속에 마음 잡기가 어려웠지만 정신력을 발휘하며 간신히 중심을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경기 전날 자신의 메이저리그 진출 관련된 기사들 속에서 구단의 부정적인 반응을 접한 김광현은 또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제가 대표팀에 들어가기 전 단장님께 부탁드렸거든요 프리미어12가 끝난 후 말씀 나누자고요. 그런데 계속 생각지 못했던 기사가 나왔어요. 많이 힘들었습니다. 위안을 삼은 건 댓글 내용이었습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가서 해보라’는 내용들이 제게 큰 힘을 줬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뿐이었어요.”
<김광현을 보러 온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5년 전 샌디에이고와의 포스팅 계약이 무산된 이후로 다시 거슬러갔다. 김광현은 당시 이런 고민에 빠졌다고 토로한다.
“많은 포스팅 비용과 연봉을 받고 LA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이 형과 제가 어떤 차이가 있는 지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살펴봤습니다. 기록 면에서 제가 현진이 형보다 떨어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변화구 구사 능력, 제구, 이닝 소화 부분 등에서 차이가 났으니까요. 샌디에이고 협상 실패 이후 스플리터를 연습했습니다. 혼자서 연습해 오다 2018년 손혁 코치님(키움 히어로즈 감독)을 만난 후 자신감을 찾게 됐었죠. 제가 스플리터를 던지면 계속 맞는다고 걱정하니까 코치님이 ‘슬라이더 던지면 홈런 안 맞냐?’라고 물으시더라고요. 모든 구종은 얻어맞는 게 당연하다고요. 그때부터 맞으려고 던졌어요. 신기하게 안 맞더라고요. 안 맞으려고 구석구석 찌르고 조심스럽게 상대하면 얻어맞았고요. 가운데로 던질 줄 알아야 사이드로 뺄 수 있다는 걸 다시 배웠습니다. 작년에는 유리한 카운트에서만 스플리터를 던졌다면 올시즌에는 불리한 카운트에서도 스플리터를 던졌어요. 그게 잘 먹혔고요. 다양한 구종을 갖고 있으면 타자들이 혼란스러워 하잖아요. 성급해지고. 컨트롤이 있으면 볼넷이 줄기 마련이고, 볼넷이 적으면 투구수가 줄어들 게 되겠죠. 투구수가 줄어들면 이닝은 늘어날 것이고요. 이렇게 모든 건 다 연결돼 있더라고요.”
올시즌 김광현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이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활약 중인 메릴 켈리였다. 켈리와 함께 원투펀치를 형성했던 김광현으로선 켈리가 애리조나 5선발로 자리를 잡는 걸 지켜보며 가슴이 설?다는 말도 보탠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저는 SK 소속 선수입니다. 구단이 보내주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상황인 것이죠. 그래도 이 인터뷰를 하는 건 만약 제가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건 제 의지가 아니라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조건 없는 응원과 메시지를 보내주신 팬들도 제 진심을 아셔야 하니까요. 제가 목소리를 내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김광현이 못하면 다른 선수는 더 못하는 일’이라고.”
김광현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말한다. 1년 후, 2년 후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팀들이 있을 때,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함만이 남아 있다.
김광현이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나면서 기자에게 묻는다.
“그런데, 저 정말 갈 수 있을까요?”
<어렵게 용기를 낸 김광현. 분명한 건 김광현은 구단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일도 진행할 수가 없다. 그 사실을 김광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로 팬들에게 입장을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