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혁(가명·38)씨는 미혼부다. 5년간 동거하던 여성은 올해 초 아이를 낳고 돌연 집을 나갔다. 법률적 남편과 별거 중이었던 여성은 “곧 이혼할 것”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아이의 출생신고를 미뤄왔다. 그런데 집을 나간 뒤로는 아예 연락조차 되지 않고 어디에 사는지도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김씨는 혼자 아이의 출생신고를 해 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아이는 엄마나 엄마의 동거친족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돼 있기 때문이다. 아빠가 출생신고를 하려면 ‘아이의 엄마 이름과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돼야 한다.
하지만 김씨의 시도는 실패했다. 유전자 검사표를 제출하고 아이 엄마와의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모든 이야기를 소명했지만 아이 엄마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법원은 아이 엄마의 이름으로 사실조회를 해서 엄마의 인적사항을 알아냈고, 결국 ‘친생자 출생신고를 위한 확인 신청’ 소송은 기각됐다.
김씨는 “아이 엄마는 출생신고에 전혀 협조할 생각이 없고 연락을 계속 피하고만 있다”며 “아이는 계속 커 가는데 출생신고가 안 돼 있으면 예방접종 지원부터 어린이집에 가는 것까지 모두 문제가 생겨 버린다”고 하소연했다.
김씨와 같은 처지에 있는 미혼부들의 출생신고를 가능하도록 한 법률안이 2015년 신설돼 시행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벽이 너무 높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설된 가족관계등록법 57조 2항에 따르면 생부가 ‘내 자녀가 맞다’는 내용의 인지허가를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데, 이 때 “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어 모를 특정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인정돼야 한다.
그런데 재판부에서는 법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해 엄마의 이름과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 모두를 알 수 없는 경우에만 아빠의 출생신고를 인정하고, 셋 중 하나라도 알고 있다면 기각하는 경우가 많다. 전현정(법무법인 KCL) 변호사는 “법안의 취지는 친생부가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아이들의 생명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 모의 등록기준지나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는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모의 이름까지 모르는 경우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엄마의 이름과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 인지 여부를 묻는 이유는 엄마와 이 아이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됐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 아이가 다른 사람의 친생추정, 즉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생모의 남편 자식으로 기재돼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중으로 가족관계등록부가 작성되는 것을 막는다는 취지다.
이 때문에 생부의 출생신고에 관한 절차가 태어난 아기 중심이 아닌 ‘행정 편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1부장은 “아동에게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빨리 출생등록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며 “부자관계나 가족관계에 대한 확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녀에 대한 출생신고의 어려움 때문에 양육을 포기하거나 출생신고를 미루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출생신고가 출생 즉시 이뤄질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계류 중이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일단 출생신고가 되도록 하거나, 친부의 소송 자체를 지자체가 지원해주도록 하는 내용 등이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복 출생신고’가 가족관계법의 근간을 흔든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여전히 미혼부의 출생신고를 꺼리고 있다”며 “이로 인한 피해는 전적으로 아이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만큼, 이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출처 : https://news.nate.com/view/20191122n02936
음... 생각해볼 사각지대 문제인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