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 1856~1884
아버지가 영의정이였을 정도로 잘나가는 집안 출신으로
본인도 일찍이 벼슬길에 올라 고위 관료로 인정받고 있었다.
1883년 그는 미국에 보내는 사절단(보빙사)에 부대신 으로 포함되는데
이 경험은 그의 가치관을 뒤집어 엎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의 풍경 (아직 자동차는 얼마 없을때)
보방사로 다녀올때 미국의 정치 행정제도에 관심을 가졌고 정말 열심히 공부해 왔지만
당시 조선은 민씨 척신세력이 매관매직으로 해먹는 정치 행정제도를 가지고 이였고....
그는 1884년 급진개화파와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킨다.
민씨세력 축출, 청 간섭 배제, 신분제 타파, 조세 제도 개혁(탐관오리 근절), 인민 평등 등의 개혁을 추진했지만(왕정폐지 까지는 안함)
갑신정변은 민비의 활약(민비가 또 청군 부르는거 막으려고 `갑신정변은 청나라가 주도한 짓`이라고 신하들이 거짓보고를 했는데 빠르게 거짓인걸 간파하고 청군을 부름) 과 일본의 배신 덕분에 청나라에 진압되어 실패하고
그는 역적이 되어 병사들에게 살해당한다.
그의 아버지는 "늙은 신하가 역적을 키웠으니 나라에 큰 죄를 지었다." 라고 한탄하고서는 자결
아내와 일가 20명도 모두 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