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1. 밤에 지인들과 번화가 골목길에서 이동중에 맞은편에서 말리부 말리부차량이 다가옴.
2. 비켜설려는데 천천히 전진하더니 무릎 부분을 범퍼로 침.
3. 뒤로 물러선 뒤 도주할까봐 몸으로 막음
4. 갑자기 풀악셀 밟더니 치고 도주함 (옆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 사이드미러도 함께 침)
5. 도주하는 차량 후미를 찍어 경찰에게 인계(차종, 번호판 확실히 보이게끔) 및 진술서에 목격자인 지인들 연락처 기재
6. 미처 다 빠져나오지 못한 오른쪽 다리 전치 2주 타박상, 염좌 진단
7. 경찰에서 CCTV, 블랙박스, 목격자 진술 등 어느것도 확보한 게 없음. 있는거라곤 피해자 진술 뿐
8. 진술만 가지고는 혐의입증이 어려워서 증거불충분으로 종결.
9. 지인들에게 확인해보니 검찰, 경찰 통틀어 전화 받은적 한번도 없다고 함.
자세한 내용
2019년 9월 5일 밤 천안의 어느 번화가.
나는 교통사고 피해자가 되었다. 흰색 말리부 차량이었다.
비가오던 날이었다. 지인들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 맥주 한잔하며 못다 한 이야길 나누자고 제안했다.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목적지인 상가건물까지 채 20m를 남기지 않은 곳. 반대편에서 흰색 말리부 한 대가 맹렬한 기세로 다가왔다. 나를 칠 듯 말 듯한 위치에서 멈췄다.
비켜서려던 나의 우측엔 주차된 차량이 있었고, 사람이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의 좁은 틈밖에 없었다. 무슨 운전을 이렇게 하나 싶었다.
몸을 돌려 왼쪽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차는 앞으로 천천히 전진하더니 내 무릎 부분을 범퍼로 쳤다. 그것은 분명, 빨리 꺼지라는 협박이었다.
나는 놀라서 뒤로 물러서 몸으로 차를 막았다. 그러나 성급한 운전자는 하차하지도,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말리부는 우렁찬 크락션을 자랑이라도 하듯 길게 울리며 힘찬 엔진 소리와 함께 100미터 육상선수처럼 돌진했다. 내 몸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다.빠져나오지 못한 오른쪽 다리가 차량과 부딪혔다. 충격으로 몸이 돌아갔고, 넘어지지 않으려 보닛을 짚었다. 잠시 후에 알았지만, 돌진한 차량은 주차된 차량의 사이드미러도 긁었다.
차량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뛰어가면서 조수석 창문을 손으로 강하게 몇 번 두드렸다. 차량은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달리기론 쫓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들고 있던 휴대폰으로 도주하는 차량을 촬영했다. 차량 번호와 차종이 명확하게 보였다. 생전처음 경찰에 신고를 접수했다. 주변에 보이는 가장 큰 음식점 이름을 이야기했다. 더 정확한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도로명 주소를 불러주자 알았다고 했다.
한 10분이나 지났을까. 순찰차 한 대가 도착했다. 어렸을 때부터 경찰을 보면 영웅처럼 느껴지고, 괜히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들은 나의 상태와 인적사항을 파악한 뒤,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사이드미러가 긁힌 차량의 주인은 사건 현장 바로 옆 식당 사장이었다. 가게가 탁 트인 삼겹살집이었다. 사장님은 우리에게 크락션을 울리며 지나간 차량이 맞느냐고 반문하였다. 경찰관들은 피해차량의 사이드미러, 사건 현장, 입고 있던 슬랙스에 범퍼와 부딪힌 흔적 등을 촬영했다.
지인들은 나를 달랜 뒤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하러 이동했고, 나는 귀가했다.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30분 일찍 눈을 떴다. 아니, 떠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통증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이상하다. 어제는 분명 크게 아프지 않았는데. 흥분상태에선 통증을 못 느낄 수 있다며 자고 일어나면 꼭 병원에 가보라던 경찰관의 당부가 떠올랐다.
아... 맞다. 오늘 시험일인데. 문득 생각이 났다. 하반기 고과에 반영되는 파견교육이었다. 먼저 부서 관리자에게 전화로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건강이 최우선이니 진료 및 치료를 잘 받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후엔 서무에게 연차사용을, 교육파견 담당자에겐 시험응시가 불가능함을 통보했다.
시험장 대신 대학병원 정형외과로 향했다. 교통사고라고 이야기하니 사건 접수번호를 물었다. 뺑소니 사건이라 접수번호가 없다고 답했다. 아무런 보험도 가입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치료비는 내 돈으로 지급했다. 다행히도 X-Ray 진단결과 골절은 없다고 했다. 진단명은 전치 2주의 염좌 및 타박상. 소염진통제와 근육이완제가 처방됐다. 약값도 내 돈으로 지급했다.
(사건일 +6일) 9월 11일.
추석 연휴 전날이었다. 오후 4시가 넘었지만, 경찰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왜 연락이 오지 않을까. 초조했다. 번호가 선명하게 찍힌 사진까지 넘겼는데. 왜 연락이 없을까. 이러다 못 잡는 거 아닐까. 그 차량이 대포차라서 못 잡는 게 아닐까. 상상력은 의문을 만들고 확대, 재생산했다. 답답한 마음에 경찰서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설명하니 사건이 뺑소니팀 팀장에게 배정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지금은 담당자가 출장 중이라 통화는 불가능하고, 연락 달라는 메모를 남겨놓겠다고 했다.
(사건일 +12일) 9월 16일.
추석 연휴가 끝난 월요일이었다. 담당수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해 차량 운전자를 찾았으며, 내 전화번호를 주어 연락하라고 하겠다고 했다. 추가로, 사건 당시 목격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사건일 +13일) 9월 17일.
이틀 뒤인 19일 오전에 출석하라는 담당수사관의 전화를 받았다. 직장인이라 오전은 곤란하다고 답했다. 수사관 본인이 오후에 출장이라, 동료에게 부탁해 놓을테니 오후에 와서 조사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사건일 +15일) 9월 19일.
피해자 진술을 위해 경찰서에 출석하는 날이었다. 직장에 양해를 구해 일찍 퇴근하고 경찰서로 향했다. 차로 족히 한 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이동중에 처음으로 가해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나의 건강상태부터 확인했다. 이어서 손해를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음악이 크게 틀어져 있었고, 감각이 무뎌 몰랐다는 말을 덧붙였다. 보험이 다 들려 있기 때문에 도주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글쎄...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
그는 합의를 부탁했다. 구체적인 합의 금액이나 시기는 집안 어른들과 상의 후 알려주겠다고 했다. 30분이 지나고, 뜬금없이 가해자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고는 5일에 났는데, 왜 19일이 되어서야 경찰서에 가느냐고 물었다. 외에도 사고와 관련된 사항들을 캐물었다.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묻어있는 건 분명 의심이었다. 대답을 하다가 화가 치밀었다. 자세한 건 아들분께 확인하시죠. 했더니 부모가 알아야 할 것 아니냐, 부모한테 말해주지 못할 게 뭐가 있느냐고 역정을 냈다. 가해자가 미성년자도 아닌데 내가 사건 당사자도 아닌 부모에게 왜 설명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찝찝한 기분으로 피해자 조사를 마치고 나왔다.
(사건일 +19일) 9월 23일.
가해자 어머니로부터 두 번째 전화가 왔다. 아들이 의용소방대에 다니는데 부산으로 가면서 나와 합의를 부탁했다고 한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산은 전화가 안 되는 동네인가? 아들이 스물다섯밖에 안되어 젊은 혈기로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으니, 동생이라 생각하고 좋게 합의하자고 했다. 진단서 제출을 보류해 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사건일 +20일) 9월 24일.
문득 수사 진행상황이 궁금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담당수사관은 특가법(도주차량 운전자의 가중처벌)을 적용하여 기소의견으로 송치 예정이라고 했다. 송치되면 전화를 주겠다고했다.
(사건일 +26일) 9월 30일.
가해자로부터 합의를 요구하는 전화가 왔다. 아직 치료 중이기 때문에 합의하긴 이르다고 대답했다.
(사건일 +43일) 10월 17일.
갑자기 대인보험이 접수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문자에 안내된 대인보상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뺑소니는 특가법상 도주차량에 해당하면 자기부담금 300만 원이 있어 가해자 측에서 개인합의를 진행하려 했다. 그러나 이후 경찰서로부터 뺑소니를 적용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접수한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사건 후 43일 만에 대인보험이 접수되었다. 물론, 접수되기 전까지의 치료비는 모두 내가 부담해야 했다.
(사건일 +48일) 10월 22일.
담당수사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송치예정이라는 답변을 받은 뒤로부터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사건의 송치 여부에 관해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수사가 진행은 되고 있는 건지 초조했다. 결국 할 수 있는건 다시 전화로 물어보는 것밖에 없었다. 담당수사관은 내 이름과 인적사항을 확인한 후, 송치예정이라는 답변을 줬다. 한 달 전의 답변을 그대로 녹음한 것 같은 대답이었다.
담당수사관과의 영양가 없는 통화가 끝난 지 몇 시간 후. 보험사 대인보상 담당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담당수사관이 뺑소니 혐의가 아닌, 다른 법을 적용해서 송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쯤에서 합의하시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바로 앞에 통화한 나도 모르는 사실을 보험사 직원이 알려왔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석해서 조사받으라는 전화를 제외하고는 다 내가 전화로 물어본 것뿐이었다.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다. 교통사고 피해당사자에게 원래 진행사항을 알려주지 않는 게 맞는지. 알려줘야 한다면 왜 알려주지 않은 것인지 확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사건일 +49일) 10월 23일.
교통계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민원 내용을 검토해본 결과에 대해 알렸다. '중간수사내용 통지'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을 사과했다. 담당자에게 '교양'함으로써 잘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사건일 +69일) 11월 12일.
검찰로 송치되었다는 통보도 없었는데, 검사실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의 인적사항을 파악한 뒤, 사고에 관해 이야기했다.
확보된 CCTV도, 블랙박스도 없었다. 있는 거라곤 피해자 진술이 전부였다. 경찰에 출석해서 작성한 진술서에 목격자 이름과 연락처도 모두 기재했지만, 추가적인 수사는 없었다. 따라서, 뺑소니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대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도주치상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상해 사실의 입증이 필요하니 진단서와 치료내용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달라는 연락이었다. 때마침 휴무일이라 검사실로 관련 서류를 들고 직접 찾아갔다.
담당검사는 신임검사였다. 컴퓨터 본체만큼 쌓여있는 서류 더미를 옆에 두고 한 손에는 골무를 낀 채 사건기록을 뒤졌다. 드라마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근사해 보이진 않았다. 조사는 약 두 시간 정도 이뤄졌다. 가해자가 충격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는지 아닌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온 힘을 다해 사실대로 진술했다.
경찰 담당수사관의 차적조회 시점을 물어봤다. 사건 접수일로부터 6일 뒤였다. 조사받고 있는 나와 담당검사의 옆으로 검사실 한쪽에 따로 마련된 방을 쓰는. ㅡ 아마도 직급이 높은. ㅡ 검사가 와서 보더니, 힘들겠는데? 한마디를 던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가해자는 당시 늦은 시간이었고(22시 20분경), 지나가는 취객이 시비 거는 것으로 여겨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자리를 이탈했다고 했으며,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들었을 만큼 크게 소리가 난 사이드미러와의 충격을 왜 몰랐느냐는 질문에는 음악을 크게 틀어놔서 못 들었다고 진술했다.
(사건일 +99일) 12월 12일.
검찰 조사를 받은 지 한 달이 지났다. 가해자와 9월 30일에 마지막으로 통화한 지는 74일이 지났다. 검찰에선 아무 소식이 없었다. 할 수 있는건 전화로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전화를 받은 담당검사는 처분이 끝났는데 통지를 받지 못 했느냐고 되물었다. 결과적으로, 수사내용만 가지고는 혐의 입증이 어려워 증거불충분으로 처분되었다.
상해에 대한 부분이 남았다. 하지만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피의자가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된 경우, 공소를 제기할 수 없어서 형사적으로는 종결된 것이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통화를 마무리하고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검사실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교통사고는 대부분 인지사건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불기소처분 통지 예외에 해당한다고 한다. 다소 친절한 설명과 함께, 공을 들였지만 주어진 것들로는 어려움이 있었다는 말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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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에게 확인해보니 검찰과 경찰을 통틀어 사건과 관련하여 전화를 받은 적은 한번도 없다고했다. 그렇게 'CCTV도, 블랙박스도, 목격자와 목격자의 신상은 있지만, 목격자 진술은 없는 사건'은 종결되었고, 사람을 앞에 두고 풀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미치광이 운전자는 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더불어 내 맘속에 간직하던 영웅은 자취를 감췄다. 그들은 그저 국가의 녹을 먹고, 제복을 입은 공무원일 뿐이었다.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 아직도 비오는 날이면 다쳤던 오른쪽과 무릎과 정강이 근육은 그날 일을 되새기는 것 마냥 저릿하다. 병원에선 심리적인 요인이 있을거라고 했다.
도주하는 차의 조수석 유리창을 손으로 두들기는게 아니라, 들고있던 휴대폰으로 깨어버렸더라면. 그때도 결과는 같았을까. 실없는 상상을 해본다.
+) 아직 보험사와의 합의가 남아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만으로 짜증이 솟구치고, 엄두가 나질 않는다.
+) 출동경찰관에게 인계했던 차량 후미사진 첨부합니다.
출처 웃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