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부산에 있던 A씨는 미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달 14일 귀국 전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시작된 중국 우한에 머물렀다. 잠복기(최장 14일)가 거의 끝났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커졌다.
결국 이날(지난달 27일) 오전 10시쯤 1339(질병관리본부 콜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콜센터에서 관할 보건소 직원을 연결해줬다. 보건소 안내에 따라 2시간 간격으로 다시 체온을 쟀는데 열이 37.8도로 올랐다. 결국 오후 2시쯤 보건소에 상황을 알렸고, 오후 6시엔 구급차로 국가지정격리병상에 이송돼 검사를 받았다.
악몽 같은 하루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확진 여부가 1차로 나오는 시각은 다음날 오전 1시쯤. A씨는 병원에서 홀로 '감염됐으면 어쩌지'라고 되뇌며 초조하게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인터넷에 나온 의심자 너 아니지?" "괜찮아?" 오후 9시가 넘어서자 지인들의 전화와 '카톡'이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친구 맞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A씨가 그제야 인터넷에 접속해보니 자신의 성과 주소, 특이사항 등 개인 신상이 포함된 보고 형식의 글이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였다. 거기엔 의심환자 발생 경위와 향후 대응 방향 등이 자세히 담겨 있었다.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악플'도 대거 달렸다.
병원에 온 지 3시간도 안 돼 A씨의 모든 것이 까발려진 상황. 심지어 A씨의 시어머니·시아버지도 문제의 글을 읽고 사돈에게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안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움켜잡고 있었는데 내 이야기가 인터넷으로 퍼지고 수많은 댓글이 달리면서 무서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진신고를 했는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괜히 신고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다음날 새벽 나온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퍼져나간 '찌라시' 때문에 말 못 할 상처를 입었다. 발병 위험에서 벗어난 대신 대인기피증에 가까운 불안감을 떠안았다. 신종 코로나 감염자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했다. 그는 "밖에 나가는 게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소수의 관계자밖에 모르는 정보가 어떻게 퍼져나간 걸까. A씨는 남편 B씨와 함께 유포 경로를 수소문했다. 관할 보건소에 연락했더니 보건소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었다. 방역 대응을 위해 경찰 측에 전화로 전달한 내용이 유출된 것 같다고 했다.
보건소 관계자는 "A씨가 부산에서 처음 나온 신종 코로나 의심환자여서 경찰이 크게 반응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정보가 유출돼 우리도 당황스럽다. 자진신고한 환자에게 죄송할 따름이다"고 했다.
A씨 부부는 결국 국민신문고와 보건복지부, 경찰청에 민원을 넣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신상 정보 유출 경위를 파악하고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보고 형식 등을 봤을 때 경찰 내부에서 유출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내사를 진행하면서 신상 정보가 담긴 게시물과 악플들도 다 삭제 요청한 상태다"라면서 "최대한 빨리 내사를 진행해 경위를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A씨 부부는 신상 유포자의 엄중한 처벌, 재발 방지책 수립 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 내사에서 수긍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면 법적 대응도 고려하고 있다.
남편 B씨는 "의심환자를 격려하고 보호해줘야 할 기관이 신원을 보호해주지 못할 망정 오히려 나서서 퍼뜨리고 당사자와 지역 사회 전체를 공포에 떨게 했다"면서 "이런 상황을 간접 경험한 의심환자가 자진신고를 흔쾌히 하겠냐"고 반문했다.
https://m.news.naver.com/rankingRead.nhn?oid=025&aid=0002972973&sid1=102&ntype=RAN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