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달쯤..
군제대후 휴학하고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피자집 특성상 치즈나 식자재 재료들이 거의 매일 들어오기때문에
폐지박스가 오지게 많이 나온다.
월매출 8천이상 찍는 대형 매장이라
일주일이면 리어카 풀로 채울 정도..
사장님이 폐지 일부로 업체에다 안맡기고 걍 어르신들 배려하심
걍 랜덤으로 가져가는거임
어르신들 싸우시면 가끔 사장님이 나가서 교통정리 하심
암튼 발주한게 들어와서 워크인에 차곡차곡 정리하고
평소처럼 박스를 뜯어서 밖에 내놓았는데
조그마난 유모차에 의지해 걸어온 꼬부랑 할머니 한 분이 가까이 오시더니
혹시 박스가져가도 되냐고 물어보더라
허리는 다 구부러져서 유모차 없이는 걷기조차도 힘들어 보였고
옷과 바지도 굉장히 낡았고 양말도 없이 맨발에 때가 다탄 고무신 신고 계시더라
얼마든지 가지고 가시라고 하고 유모차에 직접 실어다 드렸다.
고맙다면서 가시려는데
뭔가 챙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머니 저희 앞으로 매일 11시 반쯤에오시면 여기 박스 할머니 전부다 드릴게요하고 말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매일 항상 가게에서 10m정도 떨어진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기다리고 계셨다.
할머니 몫으로 상당한 양의 박스를 빼뒀음
많이 드리고 싶어도 유모차라 많이 못가져가심..
금방 겨울이 다가와 날씨가 점점 추워져서
"할머니 추우니까 가게안에서 기다리세요~"하니
자기같은 늙은이가 가게에 있으면 장사 안된다고 극구 사양하시더라
그렇게 한 3달정도 지나고 정이 들었는가
조금이라도 늦게오시면 무슨일 있는가 하고 걱정하기도하고
냉장고에 있는 야구르트나 요플레같은 간식을 챙겨드리곤 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극구 사양하셔서 어짜피 안드시면 버려야한다고하면서
협박아닌 협박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달전에 금요일 저녁쯤에 그 할머니가 가게에 들어오시더니,
여기서 제일 맛있는 피자 한판을 달라고 하셨다.
알겠습니다하고 2만8000원 하는 피자를 골라서
"할머니 이거 오늘만 특별히 행사하는데 7000원이예요~"하고 거짓말을 쳤다..
허름한 앞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둔 땀내나는 천원짜리 7장을 꺼내시더니, 나에게 주셨다.
피자를 유모차에 단단하게 꼭 고정시켜 할머니는 떠나셨다..
그렇게 1달이 흘러 2월 말쯤이였나.
매주 오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일주일이상 안오시더라..
나나 점장님이나 폐지를 못내놓고 계속 주방 뒤켠에 이주정도 쌓아두고 기다렸는데
사모님이, 할머님 돌아가셨나보네... 하고 말하더라..
나도 매주오던 할머니가 안오니 그렇게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그동안 쌓아놨던 폐지를 한꺼번에 밖에 내놓았다..
그 이후로는 할머니를 영영 보지 못했다.
할머니가 사라지신지 2달쯤 지나서쯤
첨보는 중년의 남자분 한분이 가게에 들어오시더니
여기 3~4달전에 폐지 매일 가져가던 할머니 혹시 기억하냐고 물으시더라
순간 깜짝 놀라서 그 할머니 어디계시느냐? 하고 말하니
중년의 신사분이
갑자기 급성 뇌출혈로 돌아가셨어..그 할매 갑자기 쓰러지더니 며칠 못버티고 하늘나라 가드라고
내가 그 이웃사촌인데 가족 하나도 없이 혼자 사는게 많이 딱해서 밥도 주고 집안 일도 도와주고 했거든..
어느날인가.. 피자를 한판 사가지고 오더라고 할매가 웬 피자냐 하니
요 앞 큰길 피자집에서
자기한테 폐지를 많이 준다고 그래서 미안해서 한판 사줬는데 할매는 피자를 먹을줄 모르니
우리 식구 먹으라고 갖다주더라고..
할매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 듣고 병원에 병문안 갔었는데
할매가 나 죽으면 요 앞에 큰 길에 피자집에서 피자나 한판 팔아주라 하셨네..
내 그거 기억나서 한번 왔는데 여기서 가장 비싼 피자 한판 주시게나
혹여나 할머니 잘못 되셨으면 어찌할까..친할머니마냥 걱정 했었는데
막상 들으니 슬퍼서 눈물이 나더라..
우리는 어자피 버리는 쓰레기인 페지를 고맙게 생각하시고 모아 모아서 몇백원 몇천원 버는걸로 피자를 사러오고
그 피자를 또 자기를 도와주는 다른사람한테 주고..
뭐 별거아닌 추억이였지만
오늘 일 끝나고 집에 오는데,
문득 폐지 줍는 할머니가 갑자기 생각나서 써본다..
할머니..그쪽 세상에선 무탈하시고 건강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