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종욱.. 전who 사무총장

css1111 작성일 20.03.27 17: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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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그 일이 옳은 일인지만 생각하라. 그리고 그 일을 실천하라. 하기도 전에 안된다고 생각하지 마라. 누구는 말한다. 일을 하기도 전에, 일하는 사람이 부족해서, 돈이 없어서, 시간이 부족해서, 도와주는 데가 없어서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만약 그 일이 진정 옳은 일이라면 사람도, 돈도 다 따라오게 된다. 거듭 말하지만 과연 이 일이 세계인들의 건강을 위해서 옳은지만 고민하라. 그리고 옳다면 행동하라."
전 WHO 제6대 사무총장. 행운이나 강대국의 뒷받침, 이전 경력의 후광이 아닌, 자기 분야에서의 공적과 노력만으로 국제기구의 선출직 수장을 역임한 최초의 한국인.[1]

2. 생애[편집]

서울 경복고등학교,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26살의 나이로 다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동 대학원의 산업공학 및 미 하와이 주립대 대학원(전염병학)에서 석사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의대 재학 시절부터 경기 안양시 나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봉사를 하였으며, 이 시절 부인인 일본인 카부라키 레이코(鏑木 玲子) 여사[2]와 만나 결혼했다. 1976년 대학 졸업 후 부부가 함께 태평양 피지로 가 빈곤환자에 대한 봉사활동을 시작, 1983년에 WHO 남태평양지역 사무처 나병퇴치팀장으로 근무하면서부터 WHO와의 인연을 맺게 된다. 이때의 봉사로 '아시아의 슈바이처'라는 별명을 얻기도.

이후 WHO 남태평양지역 사무처 질병예방관리국장, 예방백신사업국장, 정보화담당팀장 등을 거쳐 결핵관리국장으로 있으면서 2003년 1월 말 7차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끝에 마침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제6대 WHO 사무총장 자리에 취임하게 된다.

취임 당시 연설은 아래와 같다.
"We must do the right things
We must do them in the right places
And we must do them right ways"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올바른 장소에서 해야 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이미 예방백신 사업국장 시절 소아마비 유병률을 세계인구 1만 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리는 성과를 올려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사무총장에 취임할 당시 "300만 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치료제를 보급"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주변은 실현되지 못할 거라고 우려했는데, 이에 대한 그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수많은 이유가 있고 그럴 듯한 핑계가 생기지. 시작하기도 전에 고민만 하다간 아무것도 못 해. 옳은 일만 하면 다들 도와주고 지원하기 마련이란 걸 명심하라고."
결국은 우려대로 100만 명에게만 보급하고 나머지 200만 명에게는 보급하지 못했다. 당초 계획의 절반에도 미달한 것이었고, 외견상 '실패'라고 평가해도 할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실패'한 후 다음과 같이 밝혔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며, 재정지원도 늘어나지 않아.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지.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실패는 훨씬 큰 결과를 남기는 법이야. 바로 그 점이 중요한 거야."
무엇보다도 그 '실패'의 결과로 100만 명에게 에이즈 치료제를 보급하였고 아프리카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관심도 높였다. 어려운 목표라고 시도조차 안 했다면 단 한 명에게도 혜택이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연 30만km를 비행하며 150일을 출장다녔지만 비행기는 항상 2등석 이용에 수행원은 2명만 데리고 다녔다.[3] 자기 집도 없었으며, 전용차는 토요타 프리우스 2세대였다.[4] 차에 대한 말은 이랬다.
"세계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WHO사무총장이 환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잖아. 그리고 스위스나 유럽에서는 내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사무총장이나 직원 누구라도 차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능력으로 승부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이렇게 소박한 생활을 한 것에 대한 대답은 이러했다고 한다.
"우리가 쓰는 돈은 가난한 나라 분담금도 섞여 있다. 그 돈으로 호강할 수 없다."
2004년 조류독감 확산 방지, 소아마비와 결핵예방, 흡연규제 등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꿈이 있고 열정이 있는 젊은이를 좋아했던 그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화려한 외교관을 상상하지 마라. 그리고 편협한 인종주의와 속좁은 애국심 같은 것으로는 국제기구에서 견디기 힘들다. 더군다나 열정없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죄악이다."
이러한 성과와 행보들을 통해 그는 전 세계로부터 "행동하는 사람"(man of action)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이후에도 에이즈 퇴치사업, 조류인플루엔자 확산방지사업 등 주로 소외되고 가난한 저개발국 질병을 예방하는 데 헌신하던 중, 2006년 사무총장 재직 3년째에 과로로 쓰러져 스위스 제네바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61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최고 등급의 국민훈장인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세계인의 건강에 더욱 많은 공헌을 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특히 WHO에서 선출된 후임 사무총장 마가렛 찬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이여수스가 국제의료기구의 수장으로서 적절치 못한 언행과 친중적 행동으로 비판받고 있는 점에서 그의 위대함과 빈 자리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5]

그의 생애는 지식채널ⓔ와 KBS의 특집 다큐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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