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뭐 물어 볼 때만 글 썼는데, 이렇게 직접 마음을 담아 글 쓰는 건 오랜만이네요.
이 게시판을 보고 작성이라 이 게시판을 이용합니다.
일단 바라요, 바래요 논란에서 보통 사람들이 가져오는 내용은
바라다 → 바라요
바래다 → 바래요
라는 형태로 기본형의 뜻이 다르기 때문에 구분해서 써야 한다 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선 바라요 라는 말은 우리가 일찍이 옛날부터 쓰진 않은 말이 분명합니다.
일반적으로도 매우 보수적이었던 가요계에서도 ‘바래’를 바라다를 기본형으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 아니 모든 경우였으니까요.
그러면 바래요와, 바라요를 구분하지 않았을 때 흔히 뜻이 다른 걸 우리가 인지 할 수 있느냐? 했을 때도
확실히! 문제 없습니다.
우리 언어는 앞 뒤 문맥에 따라 뜻을 이해하는 구조로 되어있어요.
배 타고 구경가자 - 선박을 뜻하는 배
배 아프다 - 신체의 배
배는 언제 먹어? - 과일 배
이 예시로, 배 아플 것 같으니 배가 출발하기 전에 미리 배를 다 먹자
라고 말해도 우리는 뜻을 다 알지요.
바래요도 같습니다.
옷이 바래서 못 입겠어요. 그렇게 세탁하면 옷이 바래요. - 색이 변한 것
나의 바램은 평화입니다. 우리가 친해지길 바래요. - 원하는 것
옷이 바래서 유튜브 봤어요. 이 방법으로 색이 돌아오길 바래요.
라고 말해도 우리는 뜻을 다 알지요.
오히려 앞뒤 문맥에 맞지 않게 판단하고 바라요를 쓰면 문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라 보아요
바래 보아요
위 형태에서 제대로 바라다를 원하는 뜻의 형태로 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바라 보아요. - 어느 곳을 지켜 본다. 확정적이지 않은 미래를 마음의 눈으로 본다.
바래 보아요. - 원해 본다. 의인화 된 빨래가 스스로 색이 바래지기 시도했다.
미래에 올 세계평화를 바라 보며 이 연설을 마칩니다.
미래에 올 세계평화를 바래 보며 이 연설을 마칩니다.
뉘앙스적으로 차이가 있지요. 두 가지 다 쓸 수 있고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세계평화를 바라 본다.
는 원하지만 진정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를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지하고 싶을 때 쓴 표현이고
세례평화를 바래 본다.
는 미래의 불확실성과 별개로, 나는 그것을 원하기로 했다. 라는 표현입니다.
두 글자의 뜻이 같다면 한가지 형태로 통일시키는 것이 낫겠지만
두 글자의 뜻이 다르니 구분해서 쓰는 것이 맞지요.
특히 뜻이 어떠하든 발음하기 좋은 형태로 발전한 우리 한국어에 성격에도 맞지 않습니다.
몇일 - 며칠
우리가 아는 ‘몇 번째’에서 사용하는 몇 이라는 것이
일 앞으로 가면 며칠이 표준어가 됩니다.
비슷한 예로 오육월이 맞을 것인데, 오뉴월이 맞습니다.
바라요는 발음하기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몇몇 분들은 구어체로 바래요는 괜찮아도
문어체로는 무조건 바라요다 라고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왜 바래요만 유독 바라요라고 주장하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생각하는 바라다 - 바래요는 그 어감상 바래요가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그래고 바라다 바래요의 변화 형태가 문제 없는 이유는 그 비슷한 예가 한국어에 있기 때문입니다.
‘원하다’는, ‘원하요’라고 쓰지 않지요.
원하다를 원해요로 쓰는
하다, 해요 변화는 예외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원하다, 원해요
바라다, 바래요
변하다, 변해요
강하다, 강해요
약하다, 약해요
서늘하다, 서늘해요
상담하다, 상담해요
와 같이 동사, 형용사 등 여러 형태로 존재합니다.
유독, 왜, ‘바라다 - 바래요’ 형태만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어서 깊이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비슷한 형태의 ‘바래다’라는 말이 있으니
바라다 → 바라요
바래다 → 바래요
가 맞는게 아니냐? 라고 생각하고 공론화 된 후
뻘짓 많이 하시는 국립국어원에서도 그것을 앞뒤 안보고 인정한 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언어야말로 시대를 대변하는 변화의 척도입니다.
예전 말투와 현재 말투는 다르지요. 그 시대, 사람들의 태도가 많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10~2020년대는 바래요를 바라요 라고 쓰는 독특한 세대였다 라고 기억될지 모르겠네요.)
이쯤에서 지극히 주관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원하는 ‘바래요’를 ‘바라요' 라고 말하는 시점을 돌아보면, 제 기억으로는
솔직히!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10년 전후로 무분별하게 인터넷어 사용으로 문법이 무너진다 걱정할 때로 기억합니다.
(그 전부터 그런 분위기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90년대까지는 무조건 바래요 였습니다.)
2010년 바래요 상황은 팍팍한 세상에서 서로를 견재 하고 악플 달고 하는 혼란한 시대에서
서로를 잣대 위에 올리기 좋아하는 태도의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마녀사냥의 재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자연스럽게 바래요 라고 댓글을 달면 속 뜻과 별개로,
“너는 표준어 맞춤법도 모르니?”
라는 말로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거죠.
진실은,
시대에 따라 말투는 물론 단어 자체의 뜻도 바뀝니다.
지금 표준어가 500년 후 표준어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의 가장 중요한 점은 뉘앙스, 즉, 진정한 속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라요 라는 말은 제가 과거에는 한번도 써본 적 없고,
이게 표준어야 라고 누가 말했을 때 믿기 힘든 단어였습니다.
누구도 사용하고 있지 않았고, 대중가요에서도 바래요 라는 말을 쓰고 있었고
심지어 소설 등에도 바래요 라는 표현을 썼으니까요.
차라리 바라요가 아닌 ‘바라고 있어요’ 라는 표현이 맞지요.
바라요. 그것은 표준어가 아니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제가 생각하는 언어적인 느낌, 뉘앙스, 사용법 등등을 다 따져봐도 바래요입니다.
여러분, 바래요라고 쓰셔도 됩니다.
정 안되면 짜장면, 자장면 예를 들면서 바래요가 입에 잘 감겨 라는 이유만으로도 바래요를 쓰는게 맞으니까요.
(사족으로, 아이유 밤편지 가사중 마지막 ‘좋은 꿈이길 바라요’ 이 가사가 좋은 노래를 다 망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ㅜㅜ)
(다시 녹음해주길 바래요..)
평소 답답한 마음에 속앓이 하다가 흥분한 상태로 글을 써 앞뒤가 맞지 않을 것 같아 죄송합니다.
반박시 당신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