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침되거나 나포된 일본 함선은 모두 총 59척이었고, 한산도로 도망친 와키자카 휘하의 병력 400여 명(이순신이 조정에 올린 《견내량파왜병장》에는 400명, 《와키자카기》에는 200여 명)은 군량이 없어 13일간 미역을 먹으며 견내량과 무인도에서 머무르다가 뗏목으로 겨우 탈출하였다.
마나베 사마노조는 이때 자신의 배가 소각되자 섬에서 할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