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매장에 한 신사분이 오셨습니다. 양팔이 절단된 상태였지만 말끔한 정장 차림에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셨죠. 둥글게 남은 팔꿈치 윗부분만으로 능숙하게 카드를 꺼내 결제하시더니, 음료수 뚜껑을 따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말한 후에는 양팔로 조심스럽게 음료를 들어 드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장 한쪽에 놓인 신문을 그 팔로 천천히 넘기며 집중해서 읽으시더군요.
그분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며 저는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제 아버지도 한쪽 팔이 어깨부터 절단되신 상태로 살아가고 계십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생활의 불편함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봐 왔기에, 저에게 장애란 단순히 불편함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인내와 적응의 연속이며, 그 과정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 아들도 뇌성마비로 인해 걷는 것이 불편합니다. 그렇다 보니 장애를 가진 분들을 볼 때마다 저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세상에 나오는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내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 신사분께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평범하게 대하려 노력했습니다. 혹여 실례가 될까 싶어 팔 부분에 시선을 고정하지도 않았고, 장애에 대한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저에게서 느끼고 싶은 것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오히려 평범한 일상 속의 편안함이었을 테니까요. 저는 그저 그분의 일상에 방해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행동하며 평범한 하루의 일부분이 되어드리고 싶었습니다.
돌아보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 역시 우리 모두와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다만 그들의 일상이 조금 더 복잡하고, 많은 이들의 시선과 편견을 마주해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작은 배려와 존중의 마음을 담아 그들을 대하려 노력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사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런 태도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일상의 작은 위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을 이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니까요.
오늘 매장을 찾아오셨던 그 신사분에게도, 제가 작은 위안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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