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
1962년 6월 6일,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81년 대일고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에 진학하였다.
순수 음악을 전공하였지만, 대중 음악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작곡 뿐만 아니라 작사, 편곡 그리고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 키보드 등
여러 악기에 능통했던 그는 대학 졸업을 앞둔 1984년, 그는 클래식과 재즈를 대중 가요에 접목하는 음악적 지향점을 세웠다.
대학 재학 시절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연주자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조용필은 훗날 유재하의 대표곡이 되는 〈사랑하기 때문에〉를 자신의 7집 앨범에 먼저 취입했다.
대학 졸업 후인 1986년에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활동하였다.
1987년 8월에는 자신의 데뷔 앨범이자 유작 앨범이 된 《사랑하기 때문에》를 서울음반을 통해 발표한다.
이 음반은 당초 '음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심의에서 반려가 되었으며,
발매 초기에도 평론가들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얻지 못했다.
클래식 음악의 화성학과 갖가지 악기들의 음색을 터득한 유재하는 기존의 대중 가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노래를
만들었으며, 음악 관계자들조차도 '노래가 이상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음반 발표 후인 1987년 11월 1일 새벽,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부근에서 술에 취한 친구 성(成)씨가 몰던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중앙선을 침범하여 마주오던 택시와 정면 충돌하여 사망했다.
향년 26세. 사망후 일반인들과 음악 전문가들 사이에 유재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으며, 유재하의 음악은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스물 여섯해라는 짧은 삶에 단 한 장의 앨범을 남겼지만 '발라드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김광진, 신승훈 등의
후배 음악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유재하를 기리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1989년부터 계속되고 있다.
혹자는 만약 유재하가 살아 있었다면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특히 발라드의 역사에 있어 큰 변화를 가져왔을 거라 말한다.
비록 한장의 유작 앨범이 우리가 접할 수있는 그의 음악 전부이지만, 그만큼 우리 한국 음악계에 전해진 그의 음악적인 역량이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