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Stay Night에서 Fate루트에 대한 견해(스포일러100%)

친구닥터 작성일 05.10.04 21: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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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내공 : 상상초월



먼저 경고합니다.
이 글은 Fate/Stay Night를 끝까지 클리어한 분들만 읽기 바랍니다.
아래 어느 게시판인지 모르지만 닉네임 '인드라지트' 라는 분이 쓴 글에 대해서
(그 글을 짱공유에 퍼오신 분이 계시더군요)
훌륭한 리뷰이지만, 본인의 견해는 상당히 다르기에 글을 써 봅니다.
물론, Fate가 어설픈 겜이었으면 누가 무슨 평을 하든 뭔 상관이랴.. 싶었겠지만
대단히 감동적인 게임이었으므로 반박을 해 봅니다.




Fate/Stay Night를 클리어하지 않으신 분은 '뒤로' 를 누르십시오.
덧붙여 진월담월희를 플레이해보지 않으신 분도 '뒤로' 를 누르십시오.








편의상 존칭을 쓰지 않습니다.

Fate/Stay Night 라는 게임은 사실 예전 어렸을 적의 게임북을 연상케 하는 진행방식을
가진, 사실상 게임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비주얼 노블에 가까운 작품이다.
아시다시피, 대단히 우수했던 '월희' 를 발매한 제작사의 후속작으로,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플레이하게 했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세가지 스토리 모두 나름대로의 매력을 독특하게 뽐내는.. Type Moon의 맛깔스러운
멀티엔딩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특히 지루해지기 쉬운 진행 중에 갑작스런 캐릭터의
확대나, 통통 튀는 효과나, 유머러스한 장면을 집어넣어 오히려 월희보다도 더
발전한 모습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작품에 대해 긴 리뷰를 '인드라지트' 라는 분이 쓰셨는데.. 물론 잘된 리뷰이고, 리뷰는
항상 본인의 주관이 들어가는 것이지만 몇가지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부분이 아쉬운 점이랄까..

물론 본인의 견해라고 항상 옳다는 것도 웃기지만, 그 리뷰의 맹점은 너무 스토리를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려고 하는 점에 있다.

Type Moon의 전작 월희를 보자... 월희에는 아시다시피 다섯가지나 되는 엔딩이 있다.
그 중에 진엔딩은 알퀘이드 엔딩. 맨 처음 플레이할 때 볼 수 있는 엔딩이다. 애니메이션도
철저히 알퀘이드 엔딩에 맞추어 제작되었다.

알퀘이드 엔딩을 끝까지 보는 동안 주인공 토노 시키의 내력이나 아키하, 히스이, 코하쿠
다른 히로인들의 이야기는 그다지 상세하지 않다. 오히려 알퀘이드와 시엘의 엔딩,
아키하와 메이드들의 엔딩으로 이야기가 두가지로 구분된 느낌을 줄 만큼 이질적인
두가지 이야기가 전개된다. 후자를 선택시에는 아예 알퀘이드란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왜일까? Type Moon의 작품은 특이하게도, 히로인들을 맘대로 선택해서 클리어할 수 없다.
정해진 순서대로 클리어하지 않으면 나머지 히로인들의 이야기는 알 수가 없다.
Fate의 경우에는 더욱 심해서, 아예 진행하는동안 처음에는 Fate 루트라고 단정을
지어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왜 진엔딩이 맨처음에 나오나? 그것은 게임의 세계관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야기, 즉 전체 게임의 주된 스토리이기 때문에 그렇다. 먼저 판타스틱하고 이질적인
세계관을 펼치며 메인 스토리를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메인 스토리에서 밝혀지지
않은 많은 부분을 상세히 설명하며 재미를 더해가는 방식이 바로 Type Moon의
스타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Fate/Stay Night의 진엔딩은? 당연히 Fate 엔딩이다. 성배전쟁과 서번트라는
두가지 축을 중심으로 한 판타지와 사랑의 이야기가 Fate 엔딩이다. 제작사에서도
그 가설을 뒷받침하듯, Fate 스토리에는 아예 다른 엔딩이 존재하지 못하도록 True 엔딩만이
있다고 못박아놓았다.

그런데 인드라지트님의 리뷰에는 수차 보이는 말이 Fate엔딩의 완성도가 낮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진엔딩이 세가지 스토리중 가장 완성도가 낮을까? 그럼 Fate/Stay Night의
메인스토리는 서브스토리보다 못한 것인가?

본인의 견해는 결코 그렇지 않다라는 점에 있다.

1. Fate는 진엔딩이면서 맨 처음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Type Moon의 스타일은 위에 말했으므로 패스하겠다.
Fate스토리에서는 시로와 세이버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주변인들의 스토리는
클리어할때까지 묻혀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월희와 마찬가지로, 처음 진행되는
메인 스토리에서는 이야기의 큰 줄기만을 훑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캐스터, 코토미네, 어새신 등등의 주변인까지 시시콜콜하게 다 말하고 넘어가면
다음 스토리에서는 당최 무엇을 얘기할 것인가?
Fate 스토리에서는 성배전쟁, 서번트, 시로, 세이버이면 충분하다. 더이상의 필요는 없다.

Fate 스토리를 끝내고 의문점으로 남아있는 것은 많다.. 당연히 많아야 하는 것이다.
의문점을 다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게임 전체를
유기적으로 보지 못하는 시각이 아닌가.

2. Fate는 옴니버스식 구성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전작 월희에서의 이야기가 알퀘이드 - 시엘 , 아키하 - 히스이 - 코하쿠 이 두가지가
각각 비슷비슷한 형식을 띄었다고 한다면, Fate는 세가지 이야기가 비교적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억지로 세 가지가 반지제왕 1편, 2편, 3편과 같다고 우길 필요는 없을 만큼.

먼저 Fate 스토리는 성배전쟁과 서번트에 얽힌 이야기로서, 주제는 판타지와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이다. 세가지 이야기중에 Fate만큼 직접적으로 사랑을 언급하는 경우는 없다.
한번 돌아보라. '사랑' 이라는 말이 UBW와 HF 스토리에 언급되었는가?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거의없을 것이다. '좋아한다' 정도의 감정에 그치는 것이다.

서번트끼리의 격렬한 전투신도 Fate쪽에 많이 나온다. 가장 먼저 플레이되는 스토리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Fate스토리만큼 몽환적인 분위기와 서번트의 존재감이 느껴지는
스토리가 없다. 그럴 수밖에. 왜냐고? 주제가 다르니까.

다른 스토리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주제 자체가 꽤 다르다는 것이다. Fate가 환타지멜로
라면, UBW는 성장영화에 가깝다. UBW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것은 알다시피 이상을
이루려 했으나 이루지 못한 미래의 영령 에미야와 현재의 꿈을 갖고 있는 에미야와의
갈등이다. 토오사카 린의 존재가 크게 부각되지만, 그녀는 히로인이나 사랑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성장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을 어른으로 이끌어주는 어머니스러운 존재이다.
H신 한번 있었다고 사랑해요가 아닌 것이다...-_-;;

세이버가 '연인' 이라면 린은 '친구' 에 가깝다. 이야기의 초점이 린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지어 데이트 씬에서도 어정쩡한 3자간 데이트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UBW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시로 자신이다.

HF는 어떤가? HF의 경우에는 더욱 '사랑' 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미 사랑은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쿠라는 처음부터 시로를 좋아하고 있다. 따라서 서로간의 감정의 공유나
가까워질듯 말듯한 긴장감 같은건 아예 없다. 데이트라고 부를 만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계속 요리와 간호와 H신-_-;; 의 반복인 것이다.

당연히, HF의 주제는 앞의 두 이야기와 다르다. 굳이 따지면 감동적인 결말을 가진
일종의 공포 혹은 스릴러물이랄까.. 서번트는 모조리 한큐에 전사하고 우리의 길사마 역시
솜사탕만한 존재감도 없다. 성배의 본질을 밝혀야 해서 그런지 텍스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 있는 그런 스토리이다.
주제는 인간에 대한 증오와 화해.. 정도가 되겠다. 이 스토리에는 시로도 존재감이 낮다.
애초에 정의의 사자라는 꿈을 포기하고 들어가는 시로는 이미 존재감이 희미해져 있다.


말이 길어졌지만, 이렇게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는 세가지 스토리를 한가지 관점에서만
이해하려 들면 잘못된 시각을 갖게 된다. 성장영화와 같은 주인공의 고뇌가 있으면
흔히 멋있고 뭔가 수준높아 보여도, 완성도와는 완전 별개의 이야기인 것이다.
세가지 스토리는 나름대로 주제가 다르고, 각각 완성도 높은 다른 장르의 영화와 같다.


3. Fate의 러브스토리로서의 완성도

Fate스토리 자체만을 갖고 보자.. 몽환적인 사랑이야기로서의 주제를 이처럼 멋지게
소화하고 있는 구성은 거의 본 적이 없다. 흔히 게임에서 사랑이야기를 할 때 (영화도
마찬가지) 가장 큰 단점은 감정선이 수직상승한다는 것이다.

잘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났는데.. 여차저차해서 다투다가.. 어느날 갑자기 널 놓칠 수
없어가 되더라.. 호감도가 20%에서 90%로 날치 뛰듯이 펄떡 뛰는 이런 이야기는
사랑이야기를 꽤 공감안가게 만든다. (ex: Final Fantasy 8)

그러나 Fate에서는 다르다.. 첫눈에 반한 그녀.. 달빛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는 시적인 표현에서 시작하는 감정선은 조금씩 조금씩 상승해서
마침내 세이버의 마음을 열고, 단순하지만 잊지 못할 대사로 끝난다.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fate루트의 사랑이야기는 정말 아름답다. 일류 쉐프의 만찬이랄까.. 멜로에서 한두번씩
가슴찡하게 만든 요소가 거의 모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극적이고 우연한, 그러나 심상치 않은 만남..
불행한 과거를 가진 두사람..
서로의 닫혀진 마음과 다른 이상..
그러나 서로를 지키고 싶은 마음..(초반 버서커와의 대결을 기억하시는지?)
하나가 되어 싸우는 두 사람..
당신이 없이는 나도 있을 수 없다는 불가분의 관계..'당신이..저의 검집이었군요..'
잡고 싶지만, 잡을 수 없는 애틋한 이별..
같은 별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두 사람의 후일..

이 모든 것이 어느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장면이기에, 혹 진부하다고 느끼거나 완성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나 이 모든 것을 이렇게 아름답게 구성해놓은 것
자체만으로도 Fate의 완성도에는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것이다.

중간의 H신이 좀..-_-;; 거시기하기는 했으나 판타지와 사랑이야기라는 관점에서 볼 때
Fate의 완성도는 더할나위 없으며 말그대로 '상상초월' 이다. UBW의 성장영화로서의
완성도와 단순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러브스토리로서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Fate가 우위에 있다.)




이 글은 전체적인 리뷰가 아니라 Fate 루트에 대한 오해에 대해 반박을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여기서 마칩니다.

어른이 된지 오래인 지금이지만..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서 다행이군요..
덧붙여 여담이지만.. 성인이 되면 누구나 에미야 시로와 같은 갈등을 하게 된답니다. 특히
아름다운 꿈을 갖고 있었을 경우 더하지요..

그리고 사쿠라 루트에서의 시로처럼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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