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는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렸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있을지 모르는 스포일러가 우려되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다분히 주관적인 감정이 많이 개입된 글이고, 전체적으로 악평입니다. 게임을 재미있게 즐기셨다거나, 기대를 하고 계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찬물 한 바가지 뒤집어 쓴 기분이 될 겁니다.
올클리어를 하고 나서 처음 한 행동은, 씁쓸하게 웃는 것이었다. 거두절미하고 이 게임의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첫번째 문제점, '뻔하다.'
물론, 뻔함이 반드시 단점이 되지는 않는다. 인간은 완전히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에 더 감흥을 느끼며, 그 뻔함을 정면으로 내세워서 크게 성공한 게임(이를테면 Key의 클라나드)도 적지 않다. 사실 F&C의 간판게임인 피아캐롯 시리즈도 기본적으로 시나리오 자체는 뻔하지 않은가. 문제는 다른 요소 없이 '뻔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클라나드의 정점에 이른 연출력과 절묘한 개그, 간간이 터지는 메가톤급 반전이라든지, 피아캐롯의 밝은 분위기 속의 눈물 한 방울 같은, 뻔함을 멋지게 변주해주는 요소가 없는 것이다.
거기다 그 뻔함이 어느 정도냐하면 대충 게임의 전반을 플레이한 시점에서 후반의 전개와 스토리 상의 주요점, 결말까지 얼추 짐작이 가능할 정도였다. 이건 이 게임이 순수추리물은 아니지만, 추리의 요소를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약점이다. 사실 추리 자체도 추리를 할 건덕지가 없을 정도로 쉬운데다가 그 흔한 반전하나 없으며, '쟤 나중에 죽을거야.' '쟤 사실 ~~겠군.' '저놈이 원흉이것다. 그 동기는...' 등등의 예상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모조리 들어맞는걸 보고 있자면 성취감은 커녕 허탈감이 온 몸을 사로잡는다.(절대로 본인의 추리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_- 정말로 단순하다.)
두번째 문제점, 융합의 실패.
기본적으로 뱀파이어라는 초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인 주제와, 추리라는 철저히 현실적으로 논리적인 주제의 결합은 그 근본부터 이미 불안을 안고 있다. 물론 연출력과 전체적인 스토리의 짜임새로 어느 정도 극복을 한 예는 제법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 실패의 멋진 예가 이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추리는 추리라는게 없을정도로 너무나도 단순한데다(탐정노트니 EVE에서 선보였던 주인공 교체 시스템이니 폼은 꽤나 잡아놨지만...) 후반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뱀파이어가 전면에 등장하지만, 거기엔 공포감도 서스펜스도 없다. 뱀파이어에 얽힌 뒷 이야기도 너무 상투적이며(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는 말할 수 없지만...) 특히 갑자기 등장하는 슈팅모드의 허접함과 재미없음은 '이 F&C가 그 F&C인가?'라는 생각을 들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차라리 안 넣는게 나았으리라.
세번째, 그 외의 잡다한 문제점들.
최우선으로 꼽고 싶은 점은 볼륨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 사실 첫 플레이에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긴 하지만, 그 뿐이다. 중요한 선택 분기는 단 두 곳 밖에 없으며, 그나마도 그 중 한 부분은 엔딩 직전이다. 다양한 분기? 2주차 플레이 변경점? 서브시나리오? 다양한 엔딩? 기대한 만큼 손해본다. 평범하게 플레이해서 메인 시나리오 엔딩을 한번 봤다면 95% 이상 클리어 한 셈.
또 한 가지, 속칭 '오마케'가 너무나도 부실하다. 클리어 후 새로 생긴 스페셜 모드에 들어가보니 하위 카테고리가 딱 하나 있다. CG감상. 처음에는 '당연히' 올클리어하면 다른 것들도 뜰 줄 알았는데 안 떠서 알아보니 원래 그거 하나란다.-_-;; 그럴거면 대체 뭐하러 스페셜모드 밑에 그걸 넣어 놨나? 그냥 그걸 상위로 놓으면 될 것을. 오마케 시나리오나 이벤트, 씬 회상은 커녕 그 흔한 음악감상 모드 하나 없다. 이거 메이저 개발사에서 2006년 4월에 발매한 게임 맞아?-_-;;;;
끝으로 사람에 따라서 별 관계 없을수도, 큰 장점일수도, 최악의 단점일 수도 있는 것 하나. '주인공의 히로인과의H 불가'는 여전하다.(사실 있긴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없다. 플레이 해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사실 F&C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몇몇 작품들에서 가능하기도 했지만 배드 엔딩으로 간다거나 주인공의 상상에 불과한 등 어쨌건 정상적 전개에 따른 H는 없었다. 그게 처음으로 깨진게 피아캐롯의 최신작이 아닐지.)
대충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 게임이 무슨 세기의 졸작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작화 퀄리티는 아주 높은 편이며, 이상까지 열거한 단점들도 별 기대없이 플레이한다면 그럭저럭 넘길만한 것들이다. 사실 모든 외부요인들을 배제했을 때 이 게임에 대한 개인적 총평은 더도 덜도 아닌 딱 '범작'이다.
고로, 게임내공을 상태나쁨으로 준 이유는 두 가지. 이 게임이 무명의 2류 회사도 아닌 F&C의 작품이라는게 그 첫째,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대를 했었던 작품이라 실망이 막심하다는 점이 그 둘째이다.
왠지 Leaf의 쿠사리를 플레이하고 났을때의 느낌이랑 너무 비슷한 건 단순한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