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rpg라는 게임을 접한건 초등학교때 놀러간 사촌형을 통해서이다. 당시는 2d, 2hd 등의 5.25인치 디스크를 쓰던 시절이였고 당시 중학생이였던 형이 디스켓을 계속 갈아넣으면서 무슨 게임을 하는거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난 꼬마에 불과했고, 기껏 하는 게임이라곤 팩맨, 무도관 같은 단순한 아케이드 게임 류 뿐이였다. 그런데 우리 위대하신 사촌형(당시 내눈에는 그렇게만 보였다)은 무언가 굉장히 복잡해 보이고 영어도 많이 나오고 디스켓도 많이 필요한 게임을 아주 재미나다는듯 하는게 아닌가.
왜 다들 그런거 있지 않나? 어릴때 자기가 좋아라 형이 하는건 뭐든지 따라해보고 싶고, 웬지 어려워 보이고 복잡해 보이는 걸 하면 좀 더 어른이 된것 같기도 하고... 그런 마음도 상당 부분 있었고.. 아뭏든 아직 어려서 넌 못한다고 말리는 사촌형을 조르고 또 졸라서 게임을 복사해왔다.
그 게임이 역사에 길이남을 명작 ultima 6 였었고 그렇게 나의 rpg 여행은 시작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당시 초등학생이였다(당시의 말로 하자면 국민학생이고..) 아시다시피 국산도 아닌 외산 rpg를 제대로 소화해내기 어려운 연령이였고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생소한 장르의 게임인지라 적응하기도 쉽지가 않았다. 때문에 스토리도 모르고 대사도 하나도 이해 못하기에 그저 색깔 표시 되어있는 "join" 같은 단어만을 마구 쳐보면서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재미가 있더라.
마을의 물건을 주으면 사람들이 공격을 하는데 move 명령으로 멀리까지 이동시킨다음 주으면 괜찮다는걸 발견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숨겨진 장소 숨겨진 아이템들을 찾고, 어디선가 텔레포트 치트를 알아내서 전 맵을 엄청나게 돌아다녀보기도하고(지금 생각해도 울티마 6탄의 맵은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넓었던것 같다) 나름대로 먼치킨 만들었다고 lord british한테 한번 개겨보기도 하고.. 질리지도 않고 ultima 6탄만 몇년을 했던것 같다.
그러다가 어디서 3대 rpg라는 걸 줏어들었고 내가 미친듯이 플레이했던 ultima가 그 중의 하나라는 걸 알고 내심 뿌듯해 하기도 했었다. 3대 rpg 중의 하나가 이렇게 재미있다면 나머지 두개는 어떨까? 싶어서 뒤적거려 구한게 might & magic 3였었다.
지금 어린 친구들이야 heroes of might & magic 만 생각나겠지만, 그 당시 might & magic은 시뮬레이션이 아닌 rpg로서 굉장히 이름 높은 게임이였다.
그런데 이 might & magic(마메로 후술)이 보통 어려운게 아니더라. ultima와 다른 시스템 적인 문제는 적응 할수 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야되는지 뭘 하라는건지 도무지 알수가 없어서 좌절하던 찰라.... 당시 한창 유행이였던 pc통신을 이용 "메뉴얼" 이라는걸 구할수가 있었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유저들이 쉽게 적응 할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인터페이스 정도만 익히더라도 어느정도 플레이 할수 있지만, 그 당시의 마메는 도저히 그렇게 익힐수가 없는 게임에 속했고, "메뉴얼" 이라는게 없었다면 나로선 도저히 풀수 없는 게임 이였을꺼다.
한글판은 절대 꿈꿀수도 없었고, 영어로된 수수께끼가 수백개는 나오는(약간 과장일순 있겠지만, 진짜로 수도 없이 많은 수수께끼가 나온다. 앞도 뒤도 없고 도저히 무슨 소린지도 모르는 영어 수수께끼가..) 게임을 중학생이 클리어 하기 위해선 메뉴얼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었다. 어느 장소에 가서 누가 뭘 물으면 "chain"이라 답하라.. 이런식으로 나오는 메뉴얼을 프린터로 출력해서 보고 또 보고 닳도록 봐가면서 미친듯이 플레이했었다.
아까 ultima6의 맵이 넓다 했던가? 마메는 더 하더라. 끝도 없이 나오는 던젼, 마을, 지역, 피라미드, 섬... 헤매고 헤매도 끝이 없다. 몹 종류는 또 얼마나 많으며, 아이템의 종류는 얼마나 많던가.
대충 착용할수 있는 아이템이 무기 양손, helm, armor, gauntlet, belt, boots, robe, ring, necklace 정도 였던것 같은데 gauntlet이면 그냥 gauntlet으로 끝날것이지 wooden gauntlet - iron gauntlet - silver gauntlet - gold gauntlet - platinum gauntlet - ruby gauntlet - diamond gauntlet - ... 이런식으로 무한 증식에, armor는 종족 직업에 따라 찰수 있는게 다르고, 링은 또 5개 가량을 동시에 찰수 있고... 아이템 체계를 완전히 익히는데만도 시간이 엄청 걸렸던것 같다.
마메도 정말 징하게 했다. 짧은 영어와 여물지 않은 대가리, 메뉴얼 없으면 진행이 안되는 악조건 속에서도 어떻게든 클리어 해보겠다고, 엄청나게 해댔던것 같다.
(결국 클리어 못했다. 거의 마지막 까지 와서 용잡고 다녔었는데 한걸음 걸을때 마다 불로 지져지는 장소를 어떻게 넘어가야 하는지 해결을 못해서 접었던걸로 기억..)
자 그럼 3대 rpg 중에 2개를 해봤으니 나머지 하나를 안해볼순 없지? 그래서 시작한 wizardry 7
내 생애 최고의 게임이였고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게임이자, 가장 증오스럽고 가장 즐거웠던 게임이였다.
wizardry 역시 마메보다 크게 쉽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대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자신의 선택이 게임의 진행에 영향을 크게 미치기 때문에 짧은 영어로는 제대로 못 즐기는 게임이라는게 더 맞을듯 하다. 위저드리를 할때도 겨우 중 2~3 정도의 나이였고, 내 영어실력으론 도저히 해석해가면서 게임 할수는 없었기에, 결국은 또 메뉴얼...
당시 최고의 컴퓨터 잡지이던 "마이컴"에서 고맙게도 몇부에 걸쳐서 별책부록으로 자세한 메뉴얼을 내주기에 기쁜마음으로 메뉴얼 붙들고 늘어지기에 시작했다.
울티마는 마메-위저드리랑은 좀 많이 다르고, 위저드리-마메는 나름 비슷한 부분이 있다(뭐 가장 큰 차이는 trpg기반과 crpg게임의 차이겠지만.. 확실한건 아님. 그럴것 같음-_-) 그 두게임의 차이점이라면, 위저드리는 많이 아기자기 한대신에 마메는 좀 시원시원한 맛이 있다는거다.
위저드리의 아기자기함과 랜덤성은 엄청난 무한 세이브-로드를 요하는 게임으로 만들었고 게임 자체의 난이도도 마메-울티마 보다 훨씬 높다. wizardr7 을 해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처음에 게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게임 플레잉 타임으론 2~3시간 후에) 만나게 되는 rattkins 떼거리에 수십번의 세이브-로드를 반복하게 되면서 알게 된다.
분명히 게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제 슬슬 인터페이스도 익어가고 즐겨볼만한 시기인데 전투 한번을 못넘겨서 수십번의 세이브 로드를 거치고 나서야 겨우겨우 마을로 진입할수 있다.
그뿐인가? 난이도가 높은 게임이라서 어디 한번 잘못 들어서면 순식간에 파티 전멸, 렙업 할때 주어지는 스킬포인트도 랜덤으로 주어져서 렙업 직전엔 항상 무한 세이브-로드, 게임 막판에 거의 최강의 파티와 최강의 아이템으로 도배를 하고도 100개의 눈알이라는 괴물 몇마리 잡는데만 3일이 걸렸다. 말한번 잘못하면 물건도 안팔고 심하게 잘못하면 공격당하고 수도 없이 나오는 수수께끼에 퍼즐에... 이 게임은 끝이 없는건가.. 싶더라.
이게 끝이 아니다. wizardry를 플레이 할수록 파티와 직업-종족의 중요성을 더더욱 느끼게되고(난이도가 매우 높은편이라 대충 만든 파티론 후반 가면 한계를 느낀다) 결국은 몇달에 걸쳐 진행한 파티를 포기하고 나름대로 구상한 최강의 파티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캐릭터를 만드는데 부터 다시 시작하는데.. 파티 만드는데만 며칠 걸리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다. 요즘 게임들 배틀넷 같은 유저끼리의 경기를 제외하면 플레잉 타임 100시간 넘어가는 게임도 드물지 않던가? wizardry는 플레잉 타임이 시간 단위가 아니라 몇달 정도다. 미칠듯한 세이브-로드 신공, 노가다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게임..
아뭏든 그렇게 몇달간 미친듯이 wizardry에 매달렸다. 잠자는 시간과 뭐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모조리 wizardry에 퍼부었고 몇달후에 겨우겨우 끝까지 왔다. 퍼센티지로 말하자면 99.5% 정도? 그정도 진행했는데... 마지막 진행을 위한 열쇠 하나가 없더라. 도저히 다시 할 자신은 없었고 클리어는 하고 싶었기에, 전 맵을 싹 다시 훑어보기도하고, 전맵의 모든 몬스터들을 싸그리 전멸 시켜보기도 하고, 어떻게 에디터로 만들수 없을까 pc통신 커뮤니티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온갖 질알을 떤 다음 결국 포기할수 밖에 없었다.
정말로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미친듯이 플레이했고 너무나도 재미있게 플레이 했었지만, 결국은 마지막 클리어를 못해서 wizardry 7 은 나에게 있어서 애증이 함께 하는 오락일수 밖에 없다. (그 이후로도 고등졸업후, 제대후, 여유가 생길때 마다 다시 플레이 해봤지만 영어는 좀 성장했으되, 영어로 나오는 퍼즐과 수수께끼의 벽은 여전히 높더라)
그런데 묘하다.. 언젠가 부터 3대 rpg라는 얘기는 저 먼 옛날 전설에나 나오는 이야기 같아 졌고 rpg 매니아들도 사라졌고 디아블로 같은 액션 rpg가 주류를 이루고 간간히 나오는 정통 rpg라 할지라도 일본식 rpg가 대부분.... 마메가 그나마 히어로즈로 명맥을 이어간다고 하지만 히어로즈와 오리지날 마메는 천년광년쯤 떨어져있는 게임이고, ultima는 울온으로 그나마 선전하다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위저드리는 아예 연관된 게임이 거의 없는듯... (rts게임으로 뭐가 나왔다 하던데, 마메와 히어로즈와의 차이만큼이나 다른게임일께 분명해서 손도 안대봤다)
3대 rpg에 각각 미쳤었고 수많은 게임을 했었지만 이보다더 재미있는 게임은 아직 못본 노땅 입장에선 상당히 난감하더라. 일본식 rpg는 나랑 뭔가 안맞는건지 도저히 못하겠고 아쉬워 하던 참에... 누가 발더스 게이트 이야기를 하더라.
발더스 게이트? 나에겐 생소한 게임인데... trpg라는건 어떻게 하는건지만 대충 알지 실제로 해본적은없는데, trpg룰 기반으로 만들어진 게임.... 곰곰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wizardry 역시 Dungeon & Dragon .. 그러니깐 trpg와 연관이 있는 게임이였다(지나고 생각해보니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을뿐, 위저드리의 수치 대부분은 trpg 기반이였던거 같다)
그나마 3대 rpg의 향수를 느낄수 있는 게임일것 같아 시작해본 발더스 게이트.. 이게 또 물건이더라.
처음에 하면 상당히 당혹 스럽다. 아주 대놓고 주사위를 굴리고 전투에 익숙해지는데만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더라. 게다가 난이도는 상당히 높고, 전투 한번 잘못하면 순식간에 파티 전멸은 기본, 전투를 얼마나 요령있가 잘하는가에 따라 게임 난이도가 확 달라지기도 하고, 말도 안되게 데미지 20000씩 나오고 막 날아다니고 미친듯한 마법 난사가 이어지는 게임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룰이 있고 제한을 가진 상태에서 펼쳐지는 rpg... 머 물론 발더스 게이트는 나름 먼치킨류 게임이라곤 하지만 디아블로 같은 액션 rpg(디아블로 욕하는게 아니다. 나도 디아블로 굉장히 좋아하고 디아블로 3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팬중의 하나이지만,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다는거다)와는 확연히 다른,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게임이더라.
rpg에 목말라 있던 나에겐 오아시스와 같은 게임이였고 무척 재미있게 플레이 했었다. wizardry만큼 나를 미치게 한다거나 몰입하진 못했지만(이건 내가 나이를 먹은 탓도 있을꺼다. 뒤도 안돌아보고 게임에 미칠수 있었던 중학생때와 생활에 쫓기는 지금의 내가 게임에 몰입하는건 다를수 밖에..) 그래도 최근 플레이 해본 게임 중엔 가장 재미있더라.
현재 rpg 팬들한테 "역대 최고의 게임은?" 설문 조사 해보면 아마 일본식 rpg가 순위의 상위를 차지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난 영 못하겠더라. 어릴때부터 미국식 rpg(지금의 미국식 rpg인 발더스-엘더스크롤 과는 조금 다르지만)만을 해와서 그런지, 스토리 텔링이 많고 그만큼 자유도가 떨어지는 일본식 rpg엔 도저히 정을 못붙이겠더라. 나름 rpg 매니아라고 사람들이 추천하는 영웅전설-이스-파판 등을 플레이해봤지만 난 도저히 익숙해 지지가 않더라.
어느게 더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말하는게 아니다. 게임성의 우월을 따지자는것도 아니고, 그냥 난 그렇다는거다.
발더스 게이트 류(?) 게임도 뜸한 요즘, 내가 좋아할수 있는 rpg 게임이 참으로 고프다. 게임 하나에 미칠수 있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아마도 힘들꺼다. 예전과 같이 rpg의 황금시기가 온다는건... 온라인 게임들은 죄다 노가다와 현질만을 요구하고, 패키지 게임은 대부분 일본식으로 나오고, 반응성이 좋고 결과를 순식간에 얻을수 있는 fps와 rts의 열풍속에서 rpg가 예전만큼 많은 팬층을 가지긴 힘들꺼다.
그래도 난 아마, 그때가 돌아오길 바랄꺼고, 또 계속 기다리겠지.
ps : 던젼시즈도 플레이 해봤었는데... 최악의 실수가 처음 시작을 아예 트레이너 깔아놓고 시작한거였다. 정말 재미없더라 -_- 게임 재미도 못느끼겠고 아이템 모으는 재미뿐... rpg를 트레이너 깔아놓고 할바엔 스타를 컴퓨터랑 하는게 더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