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PC 게임 개발사의 마지막 자존심 ′손노리′가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동안 ′for fun, for new, for you′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개발한 심령 학원 생존 게임, <화이트데이 :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 2006년 현재 출시되고 있는 수 많은 게임들과 그래픽, 사운드 등의 수준을 놓고 비교할 수 없지만, 게임이 얼마나 컨셉에 충실 했느냐 만큼은 대등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마치 미연시 게임의 타이틀과 같은 이 게임은 2001년에 출시된 1인칭 시점의 호러 게임이다. 칭찬해줄 만한 그래픽은 아니지만 게임의 주무대인 ′어두운 밤의 학교′ 분위기를 을씨년스럽게 잘 살려주고 있다.
게임은 게이머가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사탕을 몰래 선물하기 위해 한 밤중에 학교를 찾아간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그녀의 책상 속에 사탕을 숨겨놓으려다 학교가 위험하다는 것과 그녀가 아직도 학교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벌어지는 끈끈한(?) 정이 담긴 스토리로 게임이 진행된다. 호러의 진수는 무엇일까. 역겹고 잔인한 연출 등이 그 것이라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안개가 자욱한 공동묘지, 귀신이 나온다는 허름한 폐가 같은 진부한 설정 역시 아니다. 이것들은 보는 이를 관찰자의 시점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에 오히려 무섭지 않다. 화이트데이의 배경은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선택이다. 우리들 청소년기의 일상인 학교이기 때문에 더욱 호러블 할 수 있었다.
화이트데이는 우리들 기억의 학교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들은 교실에서 매점까지 재빠르게 뛰어가지 않으면 크림빵은 없는 살벌한 경쟁이 녹아있는 그런 곳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교무실, 학생주임실, 양호실, 1학년 1반, 2반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고학년 교실로 이어지는 것들. 네모난 교실과 운동장이 비추는 창문, 커다란 칠판과 분필, 교실 뒤에 놓여진 청소도구함 등 모든 것이 그대로다. 이 익숙한 환경 연출은 머리속에 자리잡혀있는 학교의 모습과 점점 일치해가면서, 게임과 현실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고 게이머를 몰입하게 만든다.
학교는 많은 비밀을 간직한 곳이다. 물론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만 공동묘지 위에 세워졌다던가 지하실에서 누군가가 죽었다거나 혹은 몇 년전 다니던 학생이 나무에 목을 매달았다는 등의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돌고돈다. 12시가 되면 운동장이 갈라지고 그 사이에서 마징가 제트가 나온다는 유치한 발상을 하고 있다면 이 순간만큼은 접어두자. 화이트 데이의 학교 역시 수 많은 전설과 비밀이 있다. 게이머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이것들을 하나씩 알게된다. 잔잔하고 소름끼치는 BGM에 작게 들리는 심장소리, 의자가 덜그럭거리는 소리, 칠판에 글씨 쓰는 듯한 소리, 양동이 차는 소리, 공 굴러가는 소리, 발자국 소리. 이 모든 소리를 화이트데이는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 소리들은 게임을 할 수록 점점 크게 들리며 게이머를 게임 속으로 잡아당긴다.
게임의 내용을 살펴보자. 학교 안으로 잠입한 게이머는 심상치않은 기운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이런 느낌을 알아차릴 무렵 만나게 되는 성아와 지현 역시 학교가 뭔가 이상하다며 게이머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이 여학생들도 뭔가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성아가 소영(게이머의 분신인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학생의 이름)이 학교에 남아있음을 알려주는 순간. 학교는 비상벨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하고, 성아는 괴로움의 비명을 지르며 게이머에게 그 것을 꺼주기를 부탁한다. 비상벨을 끄기 위해서는 니퍼로 환풍기를 열고 들어가서 기계실로 가야한다. 환풍기 안에 있는 작은 구멍에서 게이머는 수위가 한 학생을 각목으로 구타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는데, 이때부터 화이트데이의 공포가 밀려온다. 성아, 지현, 소영과 얽힌 화이트데이의 학교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고도 소름끼치게 진행된다.
화이트데이 공포의 정점에 서 있는 손달수 수위는 일반적인 호러 게임에서 ′까이꺼 한 번 맞장 떠보지′라는 생각이 불가능하다. 공격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이기때문이다. 작은소리에도 ′응?′ 하며 범위를 좁혀오고, 걸리면 기절할때까지 각목을 휘둘러대는 수위의 공포는 꿈속까지 찾아올 듯 하다.
집요할 정도로 게이머를 찾는 수위 덕분에 게이머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찰그랑 찰그랑′하는 열쇠꾸러미 소리가 점점 다가올 때나, ′흐음~′하는 콧소리가 옆에서 들릴때 게이머는 식은 땀을 흘리며 ′제발 그냥가라!′라고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게임에도 단점은 존재한다. 게임 진행의 중요한 요소 ′퍼즐′이 바구니 속 공의 숫자대로 금고를 여는 퍼즐이나 시간으로 라커를 여는 등 지나치게 쉽거나 조잡한 것이 한 예다. 또, 게임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기존 바이오 해저드 류에서 많이 다르지 않은 점 역시 아쉽다.
짧은 플레이 타임이 역시 단점으로 꼽을 수 있다. 물론 멀티엔딩으로 리플레이가 가능하지만 실제로 리플레이를 즐길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짧은 시나리오는 역시 단점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할만한 게임이 될 수 밖에 없다. 친숙한 소재가 선사하는 공포와 이상하게 여겨지던 모든 퍼즐들이 한 번에 짜맞춰지는 마지막 반전이 그 것을 모두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화이트데이를 플레이해보지 않았다면 추천한다. 시원한 여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