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뭘 더 생각할 게 있겠는가, 이제 뭘 더 쓸 게 있겠는가? 내 눈 앞 우울한 책상 위에 놓여진 어머니의 편지.
어머니는 이렇게 쓰신다. “될 수 있으면 말이다, 얘야, 크리스마스 때 우리한테 내려오려무나. 내게는 목도리를 하나 사주고, 아버지께는 바지를 한 벌 사다오. 집에는 부족한 게 너무 많단다.
네가 시인이라는 거, 좋지 않은 평판만 얻고 있는 거, 난 정말이지 못마땅하다. 차라리 네가 어릴 적부터 뜰로 쟁기나 몰고 다녔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나도 이젠 늙었고 몸도 영 좋지 않단다 ........
사랑하는 내 아들아, 대체 네가 왜 이렇게 되었느냐? 그토록 얌전하고, 그토록 순한 아이였는데. 모두들 앞을 다퉈 말하곤 했지. 저 아이 아버지는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네게 품었던 우리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구나. 게다가 더 가슴 아프고 쓰라린 것은, 그나마 네가 시로 버는 돈이 꽤 많을 것이라는 허황한 생각을 네 아버지가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믄 얼마를 벌든 간에, 네가 돈을 집에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지. 네 시가 그토록 서러운 걸 보면 나도 알겠다, 시인들한텐 돈을 잘 안 주나 보다는 걸.
네가 시인이라는 거, 좋지 않은 평판만 얻고 있는 거, 난 정말이지 못마땅하다. 차라리 네가 어릴 적부터 뜰로 쟁기나 몰고 다녔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요즘은 온통 슬픈 일 투성이다. 암흑 속에서 사는 것만 같구나. 말(馬)도 없단다. 네가 집에만 있었더라면, 지금쯤 우리에겐 모든 게 있을 텐데, 네 머리로 동네 읍장인들 안 됐겠느냐.
그랬더라면 더 당당하게 살았을 텐데, 아무한테도 끌려 다니지 않고, 너 역시나 필요없는 고생은 안했을 텐데, 네 처한테는 실 잣는 일이나 시키고, 너는 아들답게, 우리의 노년을 돌보지 않았겠느냐.” ................ 편지를 구겨 버린 나는 우울해진다. 정말이지 내 이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인가? 그러나 내 모든 생각은 나중에 털어놓으련다. 답장에서 털어놓으련다...
예세닌
그는 정말로 답장이란 시를 썼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를!
내 늙은 어머니, 사시던 대로 그냥 사세요.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다 절실히 느끼고 있다구요, 하지만 내가 무얼 위해 사는지, 이 세상에서 무얼 하며 사는지 어머니는 눈꼽만큼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 어머니! 눈보라 속에서 어떻게 잠이 들 수 있지요? 굴뚝에선 웅웅대는 소리가 그렇게 불평하듯 늘어지는데. 몸을 뉘려 하면, 보이는 건 침대가 아니라 좁은 관이고, 꼭 무덤에 들어가는 것만 같을 테지요.
.... 내가 사랑하는 그 봄을 나는 위대한 혁명이라 부르지요! 오직 그 하나만을 위해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거예요. 그 하나만을 기다리며 불러대는 거예요.
그런데 이 가증스러움이란■ 레닌의 태양으로도 여태 덥혀지지 않는, 우리의 이 차가운 지구 말이에요! 바로 그래서 시인의 아픈 가슴을 안고 추태를 부리기로 나선 거예요. 술 마시고 싸움질이나 하면서 말이예요.
.... 돈에 대해서는 잊어버리세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시라구요. 죽음이라니요?! 왜 그러세요? 내가 뭐 외양간에서 끌어내야하는 소는 아니잖아요, 말이나 당나귀도 아니구 말이에요.
때가 오면, 지구에 불을 지펴야 할 때가 오면, 내 발로 나가겠어요, 그리고는, 돌아오는 길에 목도리를 사드리지요, 아버지께는 말씀하신 바지도 사드리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