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거짓사이에서

행복나그네 작성일 06.05.22 10: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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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고등학생 때 일입니다. 삐삐가 유행할 무렵이었습니다. 나는 수업시간마다 삐삐 전원을 꺼 놓다가 엄마가 병원에 가시는 날, 혹시라도 급한 일이 있을까 싶어 진동을 해놓고 서랍 안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갑자기 삐삐 벨소리가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누구 것이냐며 얼른 끄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삐삐 벨소리가 계속 울리자 선생님이 화가 나서 범인이 누군지 찾으셨는데 벨소리가 내 주위에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도, 선생님도 계속 나와 짝꿍을 번갈아보면서 삐삐 전원을 끄라고 눈치를 주었습니다. 급기야 선생님은 왜 거짓말을 하면서 수업시간을 흐트러뜨리느냐고 화를 내며 나와 짝꿍, 반장, 부반장을 상담실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을 뒤따라갔습니다. 삐삐도 가져갔습니다. 앗! 이럴 수가. 삐삐를 보니 글쎄 ‘부재중’ 표시가 있는 게 아닙니까! 당황한 나는 얼른 삐삐의 부재중 표시를 지웠습니다.


상담실에 가자 선생님은 삐삐를 받아 확인해 보시더니 “빠르기도 하다. 언제 지웠냐?” 하셨습니다. 반장, 부반장이 내 편이 되어서 경화는 착하고 순진한 아이라 거짓말을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무렵 반장, 부반장과 내 짝꿍은 사이가 나빴습니다. 결국 삐삐사건은 억울하게도 짝꿍이 뒤집어쓰게 되었습니다.


상담실을 나오면서 짝꿍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몇 달 동안 반 아이들은 짝꿍에게 왜 거짓말을 했냐며 수군거리고 심지어 사이가 나빠지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도 수업시간마다 짝꿍에게 확실히 삐삐 전원 껐냐고 확인하셨습니다.


아직도 짝꿍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내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었습니다. 짝꿍아, 다시 너를 만나게 된다면 용서를 빌고 싶어. 평생 그 일이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로 남아 있구나.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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