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국화꽃 향기 1-1)

안흥골 작성일 06.08.15 23: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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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냥 재미삼아서 읽어 보시라고 올리는 겁니다.
제가 타자로 전부 쳐서 그러니 오타가 있어도 양해하시고 바주십시요

'국화꽃 향기'는 영화로도 나왔고 책으로도 나온지 오래 되어서
알고 계신분도 계시겠지만 이렇게 올려봅니다.

김하인 님의 장편소설이고 저는 '생각의 나무'라는 출판사에서 보고 올립니다.
그럼 즐감 하세요.... (혹시 삭제 당할지도 모르니 며칠마다 올리겠습니다.)


1 - 1) 첫 번째 이야기 - 꽃잎 아기를 기다리며

1999년 3월 13일
오전 10시 41분. 수술복 차림의 임산부를 실은 이동식 침대를 두 간호사와 한 남자가 뛰듯이 밀고 있었다. 푸른색과 흰색이 반반으로 칠해진 긴 복도 끝 수술실을 향해서.
어디서나 주위의 시선을 끌 만큼 준수한 용모를 가진 남자는 그의 큰 키 때문에 더욱 힘들고 초췌하게 보였다. 그는 메마르고 갈라진 입술로 침대에 누운 여자를 내려다 보며, 쉬지 않고 무엇인가 낮은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여자는 만삭인 배를 싸안고 간간이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를 흘렸다. 눈꺼풀이 까무룩까무룩 감기는 것으로 보아 이미 반쯤 정신을 잃은 듯했다.
남자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여자의 손을 꽉 움켜잡고 있었다. 파리한 얼굴의 여자가 언뜻 정신을 차리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 하자 남자는 허둥거리는 동작으로 여자의 입술 가까이에 귀를 가져 갔다.
“거.....걱정하지 말라구? 그래. 걱정 안 해. 당신은 잘 해낼 거야. 난 믿어. 당신과 우리 아기 모두 잘 해낼 거야!”
남자는 글썽이는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여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삭정이처럼 마른 여자는 자신의 뼈마디만 남은 한손을 움켜잡은 남자의 손등을 다른 한손으로 쓰다듬었다.
여자는 깊은 눈빛으로 말 없이 남자를 올려다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내 극심한 고통이 온몸을 납작하게 짓누르는지 허리와 어깨를 뒤틀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비명을 질렀다.
수술실 문을 여느라 잠시 침대가 멈춰 섰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여자의 뺨을 감쌌다. 그 손바닥 안으로 여자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남자는 마른침을 삼켰다.
“미주야! 나, 나, 여기 있을게. 잊지 마. 내가 지키고 있는 한 모든 게 잘 될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힘 내!”
여자는 바싹 말라 타들어 간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침대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그 짧은 찰나에 그녀는 안타까이 자신의 손을 놓는 남자를 희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어금니를 깨문 채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던 남자는 엄지손가락을 펴들고는 여자를 향해 활짝 웃었다. 그러나 여자는 너무나 다급한 표정으로 반쯤 허리를 일으키며 서 있는 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남자도 여자의 손을 향해 몇 걸음을 황급히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녀를 실은 침대는 이내 수술시 문 너머로 사라졌다. 코 앞에서 문이 닫히자 그는 황망한 표정이 되었다. 수술실 안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얼어붙은 듯 한동안 그 앞에 서 있다가 천천히 병에 기대어 섰다.
그는 조금 전과는 달리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아 쥔 채 복도 천장을 향해 기도하는 듯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마취시간은 40분이야.”
“마취시간이 너무 짧은데요. 한 시간은 돼야잖아요.”
“ 산모 부탁이야. 그러니까 빨리 정확히 체크하고 시작해야 돼. 오 간호사, 내 말 알겠어?”
다급하면서도 준엄한 여의사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더니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수술 집도복을 입은 여의사가 반쯤 열린 문을 잡고 복도를 내다보자 남자는 용수철처럼 튀듯이 다가갔다.
“허 선배!”
“그래. 최선을 다할게.”
“네.......네.”
“자리 비우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
“그래. 승우 씨! 그래.......”
그녀는 무거운 어조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여의사는 한 쪽 귀에 걸었던 푸른 마스크를 쓰면서 말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듯이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초조함으로 가득한 남자의 눈동자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고통스러운 듯 눈을 한 번 즈려 감고는 황급히 돌아섰다.
남자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몇 발자국을 걸었다. 반대편 벽에나 있는 아치 형 푸른 창문 앞에 멈춰 선 그는 2층 아래 화단을 내려다보았다. 푸른빛의 하늘이 아직도 매서운 자락을 숨긴 꽃샘바람에 의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그 아래로 희고 눈부신 라일락 꽃봉오리가 몇 송이 나뭇가지 끝에 맺혀 있었다. 대기 중에 퍼진 노란 봄 햇살을 흠뻑 빨아들인 꽃은 잘 매만져진 붓끝처럼 팽팽했다. 이내 꽃망울이 활짝 터져 오를 것이었다. 기나긴 겨울을 이겨낸 놀라운 생명력이 천사의 날개처럼 흠 없는 순백의 꽃잎이 되어 피어날 것이다. 나무 한 그루처럼 미동 없이 서 있는 남자. 그의 젖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미주야, 오랫동안 힘들게 몸속에 지녀 왔던 꽃을 드디어 피워내는 거야. 저기 라일락 꽃나무처럼. 우리의 라일락 꽃향기보다도 도 더 향기로운 미소를 가진 아기를 갖게 되는 거지. 하지만..........
괜한 것이 만에 걸리는군. 저 나무가 잎 없이 먼저 꽃이 피어나는 나무라는 사소한 것조차 말이야. 잎과 꽃이 함께 피고 벌도 날아든다면 더 좋았을 텐데......... 저렇게 꽃이 피어 있는 기간만이라도 다 함께 말이야. 그래, 내가 미주 네게 간절히 바라는 게 바로 그거야. ‘함께’라는 말....... 당신과 아기, 나, 그렇게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함께’만큼 따스하고 그립고 눈물겨운 말도 세상엔 없을 거야.
남자는 성근 미소를 지었다.
아가야....... 꽃잎이 피어나듯 곱고 부드럽게 엄마 속에서 나와 줄 수 없겠니? 지금 네 엄마는 무척 힘들단다. 이 아빠가 두려움에 떨 만큼. 하지만 널 생각하면 한없이 맘이 설렌단다. 너를 몸속에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가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아니? 조금 있으면 네 엄마가 너를 볼 수 있겠구나. 너를 꽃처럼 촛불처럼 뱃속에서 10개월 동안 보듬어 키웠던 네 엄마.......... 사랑하는 아가야, 네가 세상으로 오는 것을 더없이 환영하지만 이 아빠는 네 엄마가 걱정이 돼서 미칠 것 같구나. 난 네가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단다. 꽃처럼 그냥 엄마 몸 바깥으로 피어나길 꿈꾼단다. 아무 일이 없이, 그렇게.......... 그냥 그렇게 됐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라고 싶구나.
남자의 표정은 사막을 건너온 사람 같았다.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눈빛만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는 이제 나무도, 기울어진 하늘도 보지 않았다.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는 듯 고요한 눈동자 주위엔 푸른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속에 고인 기억과 감정들은 크고 맑은 눈동자 위로 천천히 길어 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10년도 넘은 장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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