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패션은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스타일은 영원하다.”(프랑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메트로섹슈얼, 위버섹슈얼, 크로스섹슈얼….
가수 비에서 다니엘 헤니를 거쳐 ‘왕의 남자’ 이준기까지. 패션 및 스타일은 남성에게도 보편 코드로 자리 잡았다.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남성 화장품시장은 해마다 7% 이상의 고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올해는 4500억 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이 같은 추세는 남녀의 성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 투영된 것이다. “과거에는 경제력의 우위를 가진 남성이 여성을 미적 대상으로 봤지만 남녀 경제력에 격차가 줄어들면서 남성도 여성들의 미적 판단대 위에 오른 것”(김정운 명지대 교수)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여성들은 어떤 남성 스타일을 좋아할까. 좋아하는 연예인이 아닌 바로 곁에 있는 남자 친구나 동료 중 어떤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쿨’ 또는 ‘꼴불견’이라고 여길까.
동아일보 위크엔드팀은 최근 헤어 및 패션 스타일 전문가들과 함께 20∼34세 직장 여성 및 여대생 200명을 대상으로 남성 스타일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최신 남성 헤어 및 패션 트렌드에 대한 호감도를 포함해 액세서리 미용 화장 등 전반적인 남성 스타일을 물었다. 조사결과 남성의 스타일에 대한 여성의 지적은 예상보다 날이 서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헤어스타일▼
▽“목을 덮지 않고 단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볼 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얼굴. 얼굴 분위기를 좌우하는 헤어스타일은 첫인상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끌로에’의 현실 고 원장이 선정한 10개의 최신 남성 헤어스타일 가운데 여성들은 ‘댄디 올백 스타일’(43%)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꼽았다. 목을 덮지 않는 길이에 이마와 귀가 드러나고 자연스럽게 쓸어 넘겨 흐트러짐 없는 분위기를 연출하므로 “단정하다” “깔끔하다” “세련됐다”며 많은 여성이 호감을 나타냈다.
두 번째로 많이 선택한 스타일은 ‘울프 컷’(38.5%). 옆머리를 짧게 치고 윗머리를 기른 뒤 약간 흐트러진 듯한 야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 소속의 데이비드 베컴이 유행시켰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스타일에 공을 들였다” “세련되면서도 편안해 보인다”며 높은 점수를 받았다.
두 헤어스타일은 나머지 헤어스타일의 선호도를 모두 합친 것(18.5%)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직장 여성은 90% 가까이 댄디 올백 스타일(47%)과 울프 컷(42%)을 골라 극단적인 면을 보였다. 고 원장은 “두 스타일 모두 정장이나 캐주얼에 상관없이 잘 어울리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남성=짧고 단정한 헤어스타일’의 식은 나이가 많을수록, 남성 스타일에 관심이 없을수록 더 통했다. 25∼34세 여성들은 댄디 올백 스타일(53.2%)과 울프 컷(38%)의 격차가 큰 데 반해 20∼24세 여성들은 오히려 댄디 올백 스타일(36.4%)보다 울프 컷(38.8%)을 많이 꼽았다. 남성 스타일에 “관심 있다”고 대답한 여성들(70.5%)도 근소하지만 울프 컷(41.8%)을 댄디 올백 스타일(41.1%)보다 많이 선택했다.
비교적 차이가 나지만 세 번째는 이마와 귀를 덮는 장발의 ‘위버섹슈얼 스타일’(15%). “귀엽고 예쁘다” “스타일이 살아 있다” “미소년 같다”고 평했다. 직장 여성은 7%에 머물렀지만 여대생들은 23%나 선택해 장발에 거부감을 보이는 직장인에 비해 대학생은 긴 머리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장발이나 파마는 No… 이준기 스타일도 부담스러워”
여성들이 싫어하는 남성의 헤어스타일은 더욱 분명했다.
남성과 여성의 성향이 섞인 중성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크로스섹슈얼 스타일’(51%)이 가장 싫어하는 것으로 꼽혔다. 여성들은 “부담스럽고 여자 같다” “일본 색채가 너무 강하다”, 심하게는 “느끼하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대학생(49%)보다 직장인(53%)이, 20∼24세(43.8%) 25∼34세(62%) 순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더 싫어했다. 남성을 볼 때 헤어스타일을 가장 먼저 본다고 말한 여성(46.2%)보다 다른 것을 먼저 본다고 말한 여성(51.7%)이 더 많이 꼽았다.
고 원장은 “크로스섹슈얼이 올해 핫(hot) 트렌드인 데다 이는 ‘왕의 남자’ 이준기 스타일과 근접한 것인데도 의외”라며 “남성이 여전히 여성의 긴 생머리 스타일을 선호하듯 여성도 아직 남성을 볼 때 보수적인 경향이 짙은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많이 꼽은 ‘섀기(shaggy) 컷’(21%)도 지난해부터 10, 20대 초반 남성들에겐 인기있는 스타일. ‘섀기’는 ‘무성한, 덥수룩한’이란 뜻으로 모발에 레이어(층)를 내 숱을 줄이는 기법. 습기가 많은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아무나 소화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며 역시 직장인이거나 나이가 많을수록 거부감을 보였다.
옆 가르마의 장발 웨이브(12.5%)도 인기가 없었다. ‘두 번째로 마음에 들지 않는 헤어스타일’ 문항에서는 24%를 기록해 크로스섹슈얼 스타일(23%)보다 많았다. “여자 같다”에서부터 “파마는 무조건 싫다”는 대답도 있었다.
곱슬머리를 길게 기른 듯한 가벼운 ‘펑키 스타일’(6.0%)도 인기가 없었다. “아줌마 파마”라고 혹평하는 여성도 있었다. 위버섹슈얼 스타일은 선호하는 이가 훨씬 많긴 했지만 “촌스럽다”며 싫어하는 이들(3.5%)도 있었다.
▼패션▼
▽“깔끔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믹스 앤 매치 좋아”
패션에 대한 선호도는 헤어와 달리 다양했다.
가장 많은 응답자가 나온 것은 상의는 흰색 티셔츠에 네이비 색 재킷, 하의는 청바지를 입은 믹스 앤 매치 스타일의 ‘머린(marine) 룩’. 55%로 2위(9.5%)와의 차이가 컸다. 흰색이나 남색을 기본 톤으로 사용해 시원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스타일로 “어느 자리에나 어울리는 스타일”이면서도 “헐렁한 진에 피트(fit)한 재킷이 세련됐다”는 평.
남성 스타일에 대한 관심 유무에 따라 전체평가와 1, 2위가 엇갈렸던 헤어와 달리 패션은 남성 스타일에 관심있는 여성(61%)이 관심 없는 이(40.7%)보다 더 선호했다. 남성 스타일 중 패션을 먼저 보는 여성(58.4%)도 보지 않는 여성(43.5%)보다 많이 꼽았다. 나이대는 20∼24세(55.4%)와 25∼29세(57.6%)는 평균 이상인 반면 30∼34세(45%)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두 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은 ‘캐주얼 댄디 룩’(9.5%)도 남색 벨벳 재킷에 청바지를 입은 믹스 앤 매치 스타일. “순수해 보이면서도 산뜻하다” “센스 있으면서도 편안하다”면서 남성 스타일에 관심 없는 여성들(13.6%)이 관심 있는 이들(7.8%)보다 선호했다.
트렌치코트와 셔츠, 티셔츠 등 여러 옷을 겹쳐 있는 ‘레이어드(layered) 룩’도 9.5%로 캐주얼 댄디 룩과 함께 인기였다. “귀여운 느낌” “활동적인 대학생 분위기”라는 반응이 많은 가운데 20∼24세(9.1%)보다 25∼29세(13.9%)가 좋아했다.
네티션닷컴의 황보수정 실장은 “전체적인 분위기는 심플하면서도 몸에 붙는 재킷이나 트렌치코드 등 포인트가 있는 스타일에 대한 반응이 좋다”면서 “단정하고 깔끔하면서도 편안한 남성상을 바라는 여성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속이 비치거나 현란하면 질색”
여성들이 싫어하는 스타일은 4가지로 요약해 말할 수 있다. 속이 비치거나 몸에 너무 달라붙거나 ‘슬리브리스 셔츠’(일명 나시) 혹은 펑퍼짐한 ‘양복바지’.
상체 윤곽이 드러나면서 속까지 비치는 ‘시스루 룩’에 대한 비호감이 가장 높았다. 200명 가운데 76명(38.4%)이 가장 싫어 하는 스타일로 꼽았다. 남성 스타일에 관심이 많거나 남성을 볼 때 패션을 먼저 보는 이들일수록 더 싫어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20대(39.5%)에 비해 30대(26.3%)는 거부감이 훨씬 덜한 점. 30대 중에 5%는 오히려 ‘제일 좋다’고 대답했다.
프릴 달린 블라우스 셔츠와 흰 바지의 ‘펑크 룩’(21.7%)이 그 다음 순위.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딱 달라붙는 바지에 너무 여성스럽고 예뻐” 불편해했다. 대학생(15%)보다 직장 여성(28.6%)이, 20∼24세(18.3%) 25∼34세(26.9%) 순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싫어했다.
황보 실장은 “여성들은 세련된 남성을 좋아하면서도 너무 ‘패셔너블’하진 않길 바라는 보수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면서 “남성은 컬러풀한 옷을 입게 되더라도 광택이 없거나 화려한 무늬가 없는 소재를 선택하기 바라는 경향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실크 재질의 셔츠에 양복바지를 입은 크로스섹슈얼 스타일(17.2%)과 ‘슬리브리스 셔츠’(15.2%)도 인기가 없었다. “느끼하다” “부담스럽다”부터 “아저씨나 양아치 같다”는 혹평도 있었다. 남성을 볼 때 패션을 먼저 보는 이들이, 직장 여성보다 여대생이 많이 꼽았다.
▼액세서리▼
여성들은 남성의 헤어와 패션에 대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냈지만 액세서리나 향수, 미용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남성 액세서리에 대해서 46.3%가 ‘상관없다’고 답했다. “귀고리든 팔찌든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만 하면 오히려 포인트가 돼 근사해 보인다”(대학생 지은경 씨)고 말했다. 남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액세서리는 직장 여성과 대학생의 의견이 엇갈렸다. 직장 여성은 팔찌(21.5%)보다 귀고리(32.7%)를 더 싫어했지만 여대생은 귀고리(16.2%)보다 팔찌(23.4%)를 더 많이 꼽았다.
남성이 향수를 쓰는 것에 대해서는 65.5%가 ‘좋다’고 대답했다. “친근감이 생긴다” “인상이 좋아진다” 등 다양한 대답 가운데 “담배 냄새보다 훨씬 낫다”는 주장도 많았다.
피부미용은 ‘스킨 로션 에센스 정도의 기초화장’(49%)과 ‘팩과 마사지도 괜찮다’(48%)는 의견이 팽팽했다. ‘남성은 화장을 해선 안 된다’와 ‘색조화장도 괜찮다’는 응답은 똑같이 3명(1.5%)씩 나왔다.
남성들이 패션에 관심을 갖는 것은 81%가 ‘좋아 보인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직장인 34명(37.7%)과 여대생 20명(28.7%)은 자신의 애인이나 남편이 관심을 갖는 것에는 ‘상관없다’며 한발 물러서거나 ‘싫다’고 대답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용어설명
<패션>
머린룩=네이비와 화이트의 해군(선원) 스타일
모즈룩=1960년대 ‘비틀스’ 풍의 통이 좁은 양복 스타일
펑크룩=1970년대 반항적인 영국 젊은이들의 패션
크로스섹슈얼룩=중성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남성 스타일
슬리브리스룩=민소매 패션
시스루룩=속이 비치는 옷
레이어드룩=길이와 색상이 다른 아이템을 겹쳐 입는 스타일
밀리터리룩=군복 스타일
메트로섹슈얼룩=여성만큼 외모에 신경쓰는 도시 남성 스타일
캐주얼댄디룩=캐주얼하면서도 점잖고 깔끔한 패션
<헤어스타일>
울프 컷=짧은 옆머리에 길고 흐트러진 윗머리
댄디 롱 웨이브=뒷머리가 약간 긴 유럽풍 웨이브
위버섹슈얼=이마와 귀를 약간 덮는 길이로 거친 듯 부드러움
메트로섹슈얼=길이가 길고 자연스럽게 층이 진 도시적 느낌
댄디 올백=깔끔하게 뒤로 넘긴 머리
모던=짧지 않으면서도 깔끔한 현대적 분위기
섀기 컷=층을 많이 내 커트한 머리
펑키=반항적 느낌의 곱슬 머리
크로스섹슈얼=배우 이준기 분위기의 중성 스타일
장발 웨이브=긴 웨이브 스타일
■어떻게 조사했나
헤어 앤 메이크업 전문숍 ‘끌로에’의 현실 고 원장(헤어)과 패션업체 네이트닷컴의 황보수정 실장(패션)의 자문을 통해 최신 유행이면서도 대표적인 10개의 남성 트렌드 샘플을 선정했다. 설문 문항 구성은 국민대에서 패션 강의를 하고 있는 정재우 강사와 본보 나선미 기획위원이 참여했다.
9∼17일에 직장 여성의 경우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직원(각각 50명)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설문 조사를 했다. 대학생은 연세대 이화여대 부산대 등에서 온·오프라인 조사를 병행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구간에서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