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손.

병아리왈 작성일 07.05.22 14: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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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할머니 품에 남겨졌습니다.
공사판을 떠돌며 생활비를 버느라 허덕이는 아버지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고 할머니는

산나물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온종일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나물을 캔 뒤 밤이 하얗게 새도록 할머니는 그 나물을 다듬었습니다.
어스름 새벽이 되면 할머니는 나물함지를 머리에 이고 시오리 산길을 걸어가 나물을 장터에

내다 팔았습니다.
"애기엄마, 나물 좀 들여가구려. 싸게 줄게."
하지만 장사는 잘되는 날보다 안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나는 할머니 없는 빈집이 싫었고 할머니가 캐 오는 산나물이 너무 싫었습니다.

숙제를 다하고 나면 으레 손톱 밑이 까맣게 물들도록 나물을 다듬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손톱 밑의 까만 물은 아무리 박박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눈 앞이 깜깜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토요일까지 부모님을 다 모시고 와야 한다. 다들 알았지?"
중학교 진학문제를 의논해야 하니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시고 갈 사람이라곤 할머니뿐인데....
나는 선생님의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어, 어휴..."
허름한 옷, 구부정한 허리, 손톱 밑의 까만 땟국.....
나는 내심 걱정이 되어 속이 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할머니 손톱 밑의 그 까만 때를 보는 게 싫었습니다. 시무룩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말을 꺼냈습니다.
"저, 할머니... 선생님이 내일 학교에 오시래요."
하는 수 없이 내뱉긴 했지만 할머니가 정말 학교에 오시면 어쩌나 싶어 나는 저녁도 굶은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오후였습니다.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교무실에 갔다가 나는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하, 할머니!"
선생님은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지영아., 할머니께 효도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나는 선생님의 그 말씀에 와락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눈시울을 붉히며 잡아드린 할머니의 손은 퉁퉁 불어 새빨간 생채기로 가득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딸이 초라한 할머니의 부끄러워한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아침 내내

표백제에 손을 담그고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닦으셨던 것입니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손등에서 피가 나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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