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 논란, 관객을 가르치려 하지 말라
[오마이뉴스 박봄이 기자] 전설 속의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동양의 신화 용, 그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녀석이 실체를 드러냈다. 심형래 감독의 6년에 걸친 제작기간,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CG, 해외 1500여 개봉관 확정 등 숱한 화제를 일으키며 8월 1일 그 모습을 드러낸 <디워>.
<디워>의 엇갈리는 평, 그 중심의 스토리
▲ D-war 포스터 ⓒ2007 영구 아트 무비연일 보도되는 <디워>의 평은 극과 극으로 치닫는다. 한 편에선 <디워>를 B급 아동영화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할리우드 SF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자랑스러운 우리 기술의 성공작이라 찬사를 전하기도 했다.
특히 비평의 중심에는 엉성한 스토리라인이 한몫 한다. '어설픈 스토리라인으로 눈요기로만 관객을 현혹시키는 영화'라는 평까지 나왔으니 도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이런 악평까지 보도되고 있는 것일까.
<디워>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음 직한 신화 속의 이무기와 용을 주제로 한다. 여의주의 운명을 가진 여인과 그를 지키는 남자, 그 인연이 후생으로 이어져 악의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고자 여인을 뒤쫓고 결국 선의 이무기와 악의 이무기 부라퀴가 정면 대결을 벌이게 된다는, 아주 단순한 내용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디워>는 관객에게 친절한 영화였다. 흔히 사용되는 이중 삼중의 복잡한 관계도 없었고 바로 전 장면에 깔아놓은 심각한 복선을 되새김질하느라 눈앞의 장면을 놓칠 일도 없었다. 또한, 악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슬픈 과거가 있어 차마 미워할 수 없는 뭐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도 벌어지지 않는다. 순수한 악과 순수한 선의 대결, 이것이 바로 <디워> 스토리의 전부이다.
영화가 끝나고 절로 '시원~하다' 소리가 나올 만큼 뒤끝 없이 깔끔한 영화였다. 그러나 대부분 프로라 불리는 '평론가'와 '영화 전문 기자'들은 이 단순한 스토리를 문제로 삼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이무기와 용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 무엇을 바랐을까.
'이무기와 육감적인 금발 미인이 사랑에 빠졌는데 미인이 부라퀴 무리에게 납치되자 이무기가 조폭들과 함께 부라퀴 무리를 물리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미인은 유부녀였으며 두목인 부라퀴와 이복남매였다. 이복남매간의 가슴 아픈 사랑!!! 그럼에도 사랑을 위해 희생한 이무기는 안타깝게도 불치병에 걸려 용이 되지 못하고 사망한다. 결국, 조폭들은 이무기의 복수를 위해 LA 한복판에서 사시미칼을 들고 마지막 결투를 벌인다.'
뭐 이 정도로 꼬아놓으면 스토리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의 배를 채워줄 수 있을까.
그리고 난 스토리 부진이라는 것이 한국 영화계에서 그토록 물고 늘어지기 좋은 구실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내가 여기서 또 '이런 이런 조폭 이런 부인이 어쩌고'라거나 '저런 저런 집안 저런 흥망성쇠 저쩌고' 이렇게 국내 영화 예를 들기 시작하면 골 아파지니 넘어가도록 하겠다.(나 또한 명색이 시나리오를 쓰려는 사람 아닌가, 다 떨어진 밥그릇이라도 내 밥그릇은 챙겨야 하기에…. '급'비굴….)
굳이 덧붙여 보자면 <디워>는 스토리의 문제가 아닌 몇몇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쉬웠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낯선 연기자들과 마주하고 있자니 괜히 더 어색해지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신인 연기자들은 배역 비중의 감당이 어렵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그 어디에도 연기력에 대한 평은 없고 오로지 스토리의 문제성만 제시된다. 스토리는 연출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논란의 중심에 세우고픈 사람은 따로 있다는 의미일까.
언론 vs 여론, 왜 눈을 가리고 입을 막는가
▲ 악의 이무기 부라퀴. ⓒ2007 영구 아트 무비언론 보도와 프로 평론가들과는 반대로 <디워>에 대한 누리꾼 즉, 관객들의 영화평은 대다수 호평이 주를 이룬다. 과연 이들이 단순한 애국심만으로 찬사를 보내겠는가. 눈이 즐거운 영화, 심장이 뛰도록 통쾌한 영화, 어린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 분명히 관객이 호응할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영화이기에 이들은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 언론은 <디워>에 대해서만큼은 관객을 가르치려 든다.
"당신은 잘못 보았어요, <디워>는 유치해요."
"관객님들, 수준을 높이세요, <디워>는 300억짜리 우뢰매랍니다."
"300억으로 겨우 이 정도에요? 돈 낭비예요."
"영구가 미국 가서 영화 한 편 찍었는데 우리나라 분들, 애국심에 이러시네요."
"CG는 그런대로 1점 정도 주겠지만 뭐…."
"영화 이론에 근거하여 본 <디워>는 치기 어린 한 코미디언의 어쩌고저쩌고…."
한 마디로 '니들이 영화를 알아?' 이런 식이다. 마치 <디워>를 재미있게 보았다 하면 영화를 모르는 '수준낮은' 관객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를 조성한달까. 2007년 지금의 관객이 옛날 못 먹고 못살던 시절 1년에 극장 한번 가는 걸 자랑이라고 생각하던 그 때의 관객들이라 생각하는가. 쉬운 예로 누리꾼들의 리뷰 사이트를 가보라. 이건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가 사라진 지 오래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찍어내듯 뱉어지는 조폭과 욕설이 난무하는 영화들이 훌륭해서, 관객이 정말 원해서 드는 게 아니다. '어차피 한번 웃고 말' 영화라는 걸 알면서도 보는 거다. 추석 날 가족들과 한번 '깔깔' 거리면 끝일 영화를 찾다 보니 눈높이가 점점 낮아져 거기까지 간다는 것을 왜 모르나.(물론, 그걸 노리신 거라면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아마추어'에요. 다시 한번 '급' 비굴) 그때 언론은 과연 지금의 <디워>처럼 신나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었는가.
마치 수만 명의 사람들은 아우성치며 '이 정도면 미래가 보여!! 멋져!'라고 외치는데 그 위에 거대한 바윗덩이가 꿈쩍도 않고 그들의 입을 짓누르는 모양새 아닌가. 왜 여론을 반영하지 않고 되레 관객의 눈과 입을 막고 모른 척 하는가.
이 땅에 스필버그와 팀 버튼을 탄생시키기 위하여...
▲ LA 중심에서 빌딩을 타고 오르는 이무기. ⓒ2007 영구 아트 무비난 SF/판타지를 몸살나게 사랑하는 사람이고, 이 세상 어딘가에 우리가 모르는 그들만의 세상이 있을 거라 상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환상과 꿈을 영화로 대리만족하며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아마 대부분 관객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손가락에 가위 끼고 나타나는 '가위손'에 설레고 난데없이 지구에 떨어져 아이들과 손가락을 맞대는 'E.T'를 동경하며 가보지도 않은 별나라 원숭이들의 전쟁에 가슴 졸였다. 무시무시한 공룡들이 활개치는 모습을 보며 '역시 할리우드!'라며 탄성을 내뱉으며 기립박수도 쳤다.
한편으로 '우리도 언젠가는 저런 영화를 만들겠지'라는 기대도 했지만 왠지 까마득한 미래의 일이지 싶어 금세 체념하곤 했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봤자 소재도 없고 기술력도 없을텐데…, 라고.
하지만, 지금 그 기대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애국심으로 무조건 손을 들란 소리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신화로 만들어진 SF 판타지, 그걸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기자는 이야기이다. 무엇과도 비교치 말고 머릿속의 계산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 이 순간 우리 눈앞에 펼쳐진 우리의 신화를 즐겁게 감상하면 되는 것. 그리하면 곧 이 땅에도 팀 버튼과 스티븐 스필버그가 탄생할 수 있다. 지금 그 시작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심형래 감독이 목이 터져라 외쳤던 그것, '왜 한국은 안 되는가.'
관객은 이미 '될 수 있다'에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관객을 대변하는 이들이 안경을 벗어줄 때다. 선입견을 버리고 심형래가 아닌 <디워>를 보자. 과연 <디워>가 그토록 B급 저질 영화인지, 대다수 관객 수준이 정말 떨어져서 이토록 열광하는 것인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처음 영화를 보았던 그때의 심장으로 영화를 영화로서 바라보는 것. 비판은 그 이후에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