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연산군 때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한양 남산에 999칸의 거대한 기와집이 있다는 것이다. 이 소문을 듣고 기와집을 보기 위해 전국 팔도에서 사람들이 남산으로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러나 풍문을 믿고 찾아온 사람들이 아무리 남산을 이 잡듯이 뒤져도 999칸 기와집은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거대한 기와집이 있음 직한 자리에는 가로 세로 겨우 두걸음 정도의 단칸 오두막이 있을 뿐이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찾아왔던 사람들은 허탈해 하며 발길을 돌렸다.
어느 날 한 선비가 999칸 기와집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왔다. 그 역시 허름한 오두막을 보고 함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가만히 오두막을 살펴보던 그는 깜짝 놀랐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 허백당(虛白堂)이라는 어엿한 당호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이웃 사람에게 집주인이 누구인지 물어보니 놀랍게도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육판서를 두루 지낸 명재상 홍귀달이었다. 그는 오두막을 찾아가 홍귀달에게 절한 뒤 찾아온 까닭을 설명했다.
"항간에 한양 남산에 999칸의 기와집이 있다는 소리가 자자합니다. 그런데 기 와집은 없고 대감의 허백당이 있으니 이게 무슨 조화입니까?"
홍귀달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한 말이 잘못 전해진 모양이네. 비록 허름한 오두막이지만 내가 허백당에 누우면 999칸의 사색을 하고도 여분이 남는다는 말을 자주 했거든."
선비는 한 나라의 재상까지 지낸 이가 이토록 청빈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닐 수 있음에 크게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