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그리고 답을 내다.

이쥐쥐쥐 작성일 07.11.23 22: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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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안 나온다.

 

도대체가 안 나온다.

 

분명히 문제는 있는데,

친절하게 보기 마저 주어져 있는데,

이건 뭐  답이 안 나온다.

 

 

답답하다.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다가도 그 문제 생각만 하면

머리 속이 먹구름으로 가득 차 버린다.

 

곧 재앙이라도 내릴 듯한 그 무시무시한 기운이

나의 육체를 비롯, 감정과 생각 모든 걸 지배해버린다.

 

 

 

음...

 

좀 솔직해져 본다.

 

쉿!!  이건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인데,

사실 난,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왔을 뿐이다.

그런데 진정한 문제는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진정- 비극이다.

 

 

답을 알긴 아는데,

차마 그 답을 인정할 수가 없다. 마킹할 수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답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문제에, 마음에 드는 답이 나올 순 없는 것이다.

 

문제는 최악인데, 답은 진짜 최악이다.

 

진짜 최악이 있다면 가짜 최악도 있는 걸까??

 

아니, 그딴 건 없다.

문제도 답도 진짜 최악인데,

답이 좀 더 최악일 뿐이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이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아직은 최악이 아니다"

 

 

하지만 셰 아저씨, 당신은 틀렸어요.

 

그 문제를 받은 직후도 최악이었고,

문제를 푸는 과정도 최악이었고,

답을 도출해 낸 지금도 최악이고,

그 답을 적고 나서도 계속 최악일 것이다.

 

그냥 쭈욱- 최악인 것이다.

 

 

 

슬슬 출제자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대체 이 망할 문제를 나에게 만들어 준 의도가 궁금해진다.

 

뭘까?, 도대체 뭘까??

 

내가 온갖 시련과 역경을 견디고 이겨내어 그 문제를 풀고선

한층 더 강한 사람이 되기 원함일까??

 

자신을 내팽개 쳐놓고 살아온 나란 인간을 벌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밑도 끝도 없이 파멸해가는 한 나약한 인간을 보는 것이

그저 즐거운 것일까??

 

  

 

이래 저래 출제자의 의도를 궁금해하다가

불현듯 스치는 생각 한가지.

 

 

그렇다면 도대체,

그 "출제자"는 누구란 말인가?!!

 

어떤 * 싸이코 같은 놈이 이런 문제를 나에게 휙-

던져줬단 말인가..

 

 

아,, 왜 미처 그 생각을 못했던 거지??

 

너무나 끔찍한 문제를 앞에 놓고 있다보니

시야가 너무 좁아졌었나보다.

 

답을 다 내놓고서야 출제자의 의도를 생각하고,

또 그 의도를 생각하다 출제자의 존재를 생각하고,,

 

난 한참 길을 잘못 돌아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답은 분명 맞다.

 

나의 오만이라고??

 

아니,

나도 제발 이 답이 아니였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지만,

슬프게도 그 답은 분명 맞다.

 

 

아나운서 황정민씨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회피하려고 할 때,

당신 자신이 문제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고

 

충고 했던 말이 깊숙히 와닿는다.

 

그 문제는 커지고 커져

어느덧 나를 완전히 잠식해버렸다.

 

그 문제는 이제, 곧- 나다.

 

 

어쨌든 망할 출제자 찾기로 돌아가본다.

일단 그 인간(인간일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을 찾게 되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눈을 감고,

기억을 거슬러 간다.

 

기억의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내가 처음 그 문제를 받았던 순간으로 돌아가본다.

 

 

앗, 찾았다.

 

그때의 내가 보인다.

난 그저 멍청하게 웃고있다.

 

그 문제가 어떤 문제인지도 모르고,

그냥 웃으며 문제지를 받고 있다.

 

하여튼 저런 얼빠진 놈....

 

저기 그 자의 뒷모습도 보인다!!

 

은근 슬쩍 나에게 문제를 떠 넘기고선 도망치는

그 추악하고 비겁한 뒷모습이 보인다.

 

놓칠 수 없다.

 

달린다.

 

어렵지않게 그를 추월한 다음,

뒤를 돌아본다.

 

미칠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힘겹게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찰나,

 

늑골을 향해 성난 발길질을 해대던 심장이 순간 멈춰 버렸다.

 

그 자리에 나는 털썩 주저 앉아버렸고,

'그 자'는 내 옆을 쓸쓸히 지나가버렸다.

 

아주 슬픈 웃음을 얼굴에 머금은 채로..

 

 

'이럴 수가..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잘못 본걸거야.. 아닐거야...

 

.

.

.

.

.

.

.

 

내가 나에게- 그랬을리가 없어...'

 

 

 

 

 

 

 

이로써 모든게 분명해졌다.

 

그 출제자의 정체도,

출제자의 의도도,

내가 그 문제를 쉽게 풀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 답을 인정할 수 없었던 이유도.

 

그리고,

얼른 그 답을 마킹해 넣은 다음,

 

이제는 문제가 아니라,

 

그 답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또 어떤 문제를 떠 넘기려고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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