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안 나온다.
도대체가 안 나온다.
분명히 문제는 있는데,
친절하게 보기 마저 주어져 있는데,
이건 뭐 답이 안 나온다.
답답하다.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다가도 그 문제 생각만 하면
머리 속이 먹구름으로 가득 차 버린다.
곧 재앙이라도 내릴 듯한 그 무시무시한 기운이
나의 육체를 비롯, 감정과 생각 모든 걸 지배해버린다.
음...
좀 솔직해져 본다.
쉿!! 이건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인데,
사실 난,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왔을 뿐이다.
그런데 진정한 문제는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진정- 비극이다.
답을 알긴 아는데,
차마 그 답을 인정할 수가 없다. 마킹할 수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답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문제에, 마음에 드는 답이 나올 순 없는 것이다.
문제는 최악인데, 답은 진짜 최악이다.
진짜 최악이 있다면 가짜 최악도 있는 걸까??
아니, 그딴 건 없다.
문제도 답도 진짜 최악인데,
답이 좀 더 최악일 뿐이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이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아직은 최악이 아니다"
하지만 셰 아저씨, 당신은 틀렸어요.
그 문제를 받은 직후도 최악이었고,
문제를 푸는 과정도 최악이었고,
답을 도출해 낸 지금도 최악이고,
그 답을 적고 나서도 계속 최악일 것이다.
그냥 쭈욱- 최악인 것이다.
슬슬 출제자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대체 이 망할 문제를 나에게 만들어 준 의도가 궁금해진다.
뭘까?, 도대체 뭘까??
내가 온갖 시련과 역경을 견디고 이겨내어 그 문제를 풀고선
한층 더 강한 사람이 되기 원함일까??
자신을 내팽개 쳐놓고 살아온 나란 인간을 벌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밑도 끝도 없이 파멸해가는 한 나약한 인간을 보는 것이
그저 즐거운 것일까??
이래 저래 출제자의 의도를 궁금해하다가
불현듯 스치는 생각 한가지.
그렇다면 도대체,
그 "출제자"는 누구란 말인가?!!
어떤 * 싸이코 같은 놈이 이런 문제를 나에게 휙-
던져줬단 말인가..
아,, 왜 미처 그 생각을 못했던 거지??
너무나 끔찍한 문제를 앞에 놓고 있다보니
시야가 너무 좁아졌었나보다.
답을 다 내놓고서야 출제자의 의도를 생각하고,
또 그 의도를 생각하다 출제자의 존재를 생각하고,,
난 한참 길을 잘못 돌아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답은 분명 맞다.
나의 오만이라고??
아니,
나도 제발 이 답이 아니였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지만,
슬프게도 그 답은 분명 맞다.
아나운서 황정민씨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회피하려고 할 때,
당신 자신이 문제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고
충고 했던 말이 깊숙히 와닿는다.
그 문제는 커지고 커져
어느덧 나를 완전히 잠식해버렸다.
그 문제는 이제, 곧- 나다.
어쨌든 망할 출제자 찾기로 돌아가본다.
일단 그 인간(인간일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을 찾게 되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눈을 감고,
기억을 거슬러 간다.
기억의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내가 처음 그 문제를 받았던 순간으로 돌아가본다.
앗, 찾았다.
그때의 내가 보인다.
난 그저 멍청하게 웃고있다.
그 문제가 어떤 문제인지도 모르고,
그냥 웃으며 문제지를 받고 있다.
하여튼 저런 얼빠진 놈....
저기 그 자의 뒷모습도 보인다!!
은근 슬쩍 나에게 문제를 떠 넘기고선 도망치는
그 추악하고 비겁한 뒷모습이 보인다.
놓칠 수 없다.
달린다.
어렵지않게 그를 추월한 다음,
뒤를 돌아본다.
미칠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힘겹게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찰나,
늑골을 향해 성난 발길질을 해대던 심장이 순간 멈춰 버렸다.
그 자리에 나는 털썩 주저 앉아버렸고,
'그 자'는 내 옆을 쓸쓸히 지나가버렸다.
아주 슬픈 웃음을 얼굴에 머금은 채로..
'이럴 수가..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잘못 본걸거야.. 아닐거야...
.
.
.
.
.
.
.
내가 나에게- 그랬을리가 없어...'
이로써 모든게 분명해졌다.
그 출제자의 정체도,
출제자의 의도도,
내가 그 문제를 쉽게 풀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 답을 인정할 수 없었던 이유도.
그리고,
얼른 그 답을 마킹해 넣은 다음,
이제는 문제가 아니라,
그 답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또 어떤 문제를 떠 넘기려고 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