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어김없이 강남행 버스에 몸을 태우고 아침길을 가던 중
저승버스가 뒤에서 쫓아오는지 바로 정류장에서 막 떠나는 버스를
뛰어와서는 문을 두드리고 어렵게 타신 40대 초중반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에게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주머니에서 꼬깃 꼬깃 접혀진 천원짜리 두 장을 피면서...
"에휴...숨차라... 이거 강남 가는거 마찌요?"
한 글자 한 글자 강하면서도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게
어색한듯한 어투... 분명 당신의 피곤한 두 다리를 의지하며 살아와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지 않으신 그런 느낌이었다.
그냥 그런 아주머니이거니하고 다시 내 손에 펼쳐친 책으로
집중하려는 찰나... 그 아주머니의 롱 점퍼와 어울리지 않는
목도리가 눈에 띄었다.
패션에 뛰어나지 않은 내가 남 옷 입은거에 상관할 입장은 못 된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의 점퍼와 목도리는 순식간에 나의 마음에
몇 일전 일을 떠올려 놓게하였고
그 아주머니의 점퍼와 목도리는 누구것이며,
오늘은 정말 추운 날이고, 아주머니의 옷장은 산지 한참이 지난
후줄근한 아줌마표 평상복과 이불만으로 거의 채워졌을 것 같다는
추측이 들게 하였다.
몇 일전 어머니는 겨울이 왔으니 따스히 입고 다니라며 내 방 베란
다에 있는 옷들을 꺼내다 내 방 붙박이장에 살포시 놓아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고 철 없는 맘에 이것들을 왜 갔다 놓았냐고
유행도 지나고 멋도 없어서 입지도 않는데 왜 가져다 놓았냐고...
어머니께서 보기에는 추운 겨울, 아들자식 따뜻하게 해줄 그런 옷들
이었고 본인께서 열심히 일하셔서 번 돈으로 사주신 그런
옷들이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그 옷들을 옷이 아닌 그저 공간만 차지하는
짐으로 분류하였고, 어머니께서는 '이거 괜찮은데... 이거 이렇게
입으면 괜찮지 않니? 그럼 이거 엄마가 입을까?'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에게는 짐일뿐인것들을 가지고 거실로 가셔서 아버지께 ' 당신
이거 입을레요?' 하시면서 당신께는 여전히 이것들은 좋은 옷이고
입을만하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 때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왜 그렇게 싫었는지...
이제는 옛날이 아니라고... 예전처럼 옷 한벌 잘 못사고... 겨울 옷이
없어서 가을 옷 껴입고 다니는 내가 아니라고......
그 아주머니의 롱 점퍼와 목도리는 철없는 그 날의 기억을
상기시켜주었다.
물론 위의 추측들은 확인할 길이 없는 그냥 나의 생각일뿐이지만
바지와 구두에 어울리지 않는 그 adi*as 스포츠 롱점퍼는
아주머니께서 사셨을... 그런 색상도 디자인도 가격도 아니였을
것이다. 게다가 그것에 걸치신 목도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어디 내놔도 이쁠 딸아이의 겨울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을뿐이였고... 길거리에 널려있는 몇천원짜리 옷도 이쁘다며
부추겼을 당신안에 들어있는 여자를 절제하면서 아껴 아껴
모은 돈으로 입혔을뿐이지만... 그 딸아이의 변덕이 그 옷의 주인을
원치않았을 그 어머니로 바꿨을뿐...
이제 집안 사정이 좋아져 돈 걱정 없이 산다고...
추운 겨울, 겨울용점퍼조차 없어 가을옷 수개를 껴입고 다니며
어이없는 겨울 터프가이 행새대신...
옷장에 널린 옷은 옷이 아니며, 내 옷장에 옷이 없다고
새 옷 살 궁리를 하는 나에게
그 아주머니의 롱 점퍼와 목도리는...
여전히 너의 어머니는 너처럼 비싼 옷을 사지 않으시고 세일로 저렴하게
산 옷도 고급스럽게 보이게 하는 센스를 가지고 계시며
몇일 전 너가 못 마땅해 했던 옷들은
원래 너의 어머니가 동창회에나갈때 입었을...
아버지와 이웃들에게 아줌마대신
세련되고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을...
그런 옷 대신 들어가 있던
그런 옷이었다고 말해주었다.
지금 유복한 가정안에서 걱정없이 공부를 하여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어머니께서도 만족할 직업을 갖게 되어
내 미래를 가꿔갈 통장을 갖게 된다면
일단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고
가장 먼저 내 과거를 안아드리고 입혀드리고싶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께 여자를 선물로 드리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