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었던 글 중에 [마누라 팝니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재미있으면서 동시에 서글프고, 재치 있다 생각되면서 동시에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글입니다. 대충 흘려버릴 수 있는 글이지만 그러지 못한 채 저장해 두었다가 다시 읽어보곤 하였는데 그 이유는 [마누라 팝니다]는 글이 오늘날의 가정상태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약간 편집을 가한 것 외엔 원문 그대로를 아래에 인용합니다.
[아내를 팝니다]
메이커/ 장모님
모 델 명/ 퍼져 2.0
상품가/: 39,800원
2001년 10월 목X예식장에서 구입한 마누라를 팝니다. 구청에 정품등록은 이미 했습니다. 2001년 당시에는 신기해서 많이 사용했지만 그 이후로는 처박아 두었기 때문에 사용횟수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상태를 설명하자면/ 32인치급 허리가 채용되어 있습니다. 보통 2년차 주부가 28인치급을 채용한 것에 반해 4인치 이상 차이가 납니다. 음식물 소비는 동급의 두배입니다.
그립감/ 전체적 질감은 별로입니다. 무게중심도 엉덩이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얼굴밝기/ 전체적인 얼굴밝기는 어두운 편입니다. 특히 월말에 카드 값을 풀로 땡겼을 경우에 밝기가 많이 떨어집니다.
외형 및 디자인/ 구입 당시는 컴팩트였지만 지금은 액세서리와 옵션을 장착하여 매우 비대합니다. 특히 복부에 장착된 살은 영구히 제거가 불가능합니다. 참고하세요. 전체적 외관은 융으로 잘 닦아주면 그나마 봐줄만 합니다.
무게/ 안정감은 있지만 여행 시나 외출 시에는 사용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전원/ 밥 차릴 시간이 되면 꺼집니다. 특히 출근시간에는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스피커/ 동급 최고 출력의 스피커를 내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컨트롤이 불가능하고 아무 때나 흘러나옵니다. 고쳐 쓰시기 바랍니다.
특징
추적기능/ 비상금을 찾아내는 기능입니다.
음성녹음기능/ 옛날에 실수했던 말을 기가 막히게 잘 재생합니다.
메모리 포맷 기능/ 자신의 실수는 바로 잊어버립니다.
연사기능/ 1초에 수백마디를 쏟아냅니다.
아끼던 물건인데 유지비가 많이 드는 관계로 내놓습니다. 마누라를 구입하시면 추가 카드(LG, 삼성, 신한 등등)를 끼워 드립니다. 백화점 카드도 다수 있습니다. 그 외 액세서리로 구두 10여 켤레, 구입 시 받았던 박스(웨딩드레스), 추가 옷 여러 벌 등 찾는 대로 끼어드리겠습니다. 사용 설명서는 없습니다. 읽어봐도 도움 안 됩니다. A/S 안되고 반품 절대 안 됩니다.
자매품/ 남편 팝니다.
아마 윗글을 읽는 여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할 말을 거꾸로 남자가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이사 갈 때 남편들이 이삿짐 차량의 앞자리에 빨리 앉되 아내가 좋아하는 애완견을 안고 타야 버림받지 않는다는 서글픈 이야기가 확산될 정도로 여성 파워가 노골화된 시대이니 더욱 그럴 것입니다. 아내든 남편이든 서로를 평생의 반려자로 생각하고 가족을 꾸린 것 치고는 너무 가슴 아픈 현실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되도록 서로 아끼고 사랑하기로 서약해봐야 지켜지지 않을 것이니 차라리 현실적인 결혼을 하자는 사람들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결혼식을 올리되 이혼했을 경우 호적에 흔적이 남지 않도록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이들이 있고, 아예 결혼식조차 올리지 않고 함께 살다가 아무 미련 없이 헤어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러다가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역사의 유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생길 정도입니다.
최근에 저는 충격적인 기사를 읽었습니다. 일본의 톱배우 사와지리 에리카(22)가 22살 연상의 비디오아티스트 겸 DJ 다카시로 츠요시와 결혼하면서 계약서를 주고받았는데 그 내용이 정말 결혼한 것 맞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습니다. 부부 관계는 한 달에 5회까지만 가능한데 그 이상을 요구할 경우 회당 50만엔(750만원)을 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결혼이란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인데 그처럼 조건을 걸고 결혼을 한다면 결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이혼할 경우 다카시로의 재산 중 90%를 사와지리가 가져갈 수 있고, 아이에 대한 친권을 결정하는 것도 사와지리 혼자 판단한다고 명기돼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여자의,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계약서입니다. 사와지리의 경우 정말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는 한가하는 의혹이 들고, 다카시로의 경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여자와 결론을 하나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결혼 계약서의 황당함은 그 정도로 끝나지를 않습니다. 다카시로가 다른 여성과 데이트하다가 발각되면 회당 1000만엔(약 1억5000만원)을 내야하고 만약 성행위까지 했다면 2000만엔(3억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고 하는 내용이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니라 여자는 남자의 돈 때문에, 남자는 여자의 육체적 매력 때문에 거래한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더불어 가정을 이루어 행복한 삶을 이어나간다면 그 아이들이 성장하여 또 다시 아름다운 가정을 꾸밀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이기적인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했지만 서로의 욕망과 주장만 내세우다 가정을 깨뜨리게 되면 그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후에 건강한 가정의 이미지를 알지 못할 것이고 건강한 가정을 꾸려나가는데도 많은 한계를 가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날 결혼에 대해 소홀히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는데 암초로 작용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상대의 매력적인 요소와 장점만이 아니라 추해 보이는 요소와 단점까지도 용납하고 그 가운데서 서로 다듬어지는 것이 부부 사이인데 감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모든 것을 단정 짓고 끝내 서로를 구제불능의 사람으로 정의 내린 후 파국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 이들이 많으니 우리 사회의 미래가 암담하게면 여겨집니다.
[마누라 팝니다]가 아니라 세상의 그 무엇을 주어도 [내 아내는 놓치지 않습니다]라는 글을 쓰고 그런 글이 널리 퍼지는 우리나라이길 소망합니다. 사실 그런 식의 글은 저 자신이 먼저 쓸 수 있어야 하겠지만요. 아직까지 [마누라 팝니다]라는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아내를 제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느냐고 물으면 즉각적으로 그렇다고 답할 자신도 없으니까요. 건강한 가정은 건강한 사회, 건강한 나라의 기초인 줄 다 알고 있으니 그만큼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