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 비밀번호

cry4you 작성일 09.04.13 0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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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동통신회사에서 민원 상담하는 일을 하고있는 이혜영이라고 합니다.

2년이 훨씬 넘게 많은 고객들과 통화를 하면서 아직까지도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그날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어요.

그 날 따라 불만고객들이 유난히 많아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업무의 특성 상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고객이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해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는 말이란...

"죄송합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서... 다시 조치하겠습니다"

이런 말 외에 같이 흥분하거나 소리를 지를 수는 없거든요...

그날도 비까지 오는데다가 컨디션도 많이 안 좋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사정이기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에

제 기분은 뒤로 숨긴 채 인사멘트를 했죠...

목소리로 보아 어린 꼬마여자였어요..


이혜영 :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텔레콤 이혜영 입니다.

 

고객 : 비밀번호 좀 가르쳐주세요...

 

(목소리가 무척 맹랑하다는 생각을 하며...)

 

이혜영 :고객 분 사용하시는 번호 좀 불러주시겠어요.

 

고객 : 1234-5678이요...

 

이혜영 : 명의자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고객 : 난 데요... 빨리 불러주세요.

 

(어린 꼬마애가 엄청 건방지군...)

 

이혜영 : 가입자가 남자 분으로 되어 있으신데요? 본인 아니시죠??

 

고객 :  제동생이예요. 제가 누나니까 빨리 말씀해주세요.

 

이혜영 : 죄송한데 고객 분 비밀번호는 명의자 본인이 단말기 소지 후에만 가능하십니다.

            저희 밤 열시까지 근무하니 다시 전화 주시겠어요??

 

고객 : 제 동생 죽었어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전화를 해요??

 

(가끔 타인이 다른 사람의 비밀번호를 알려고 이런 거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전 최대한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혜영 : 그럼 명의변경을 하셔야 하니까요 사망진단서와 전화주신 분 신분증

            또 미성년자이시니까 부모님 동의서 팩스로 좀 넣어 주십시요.

 

고객 : 뭐가 그렇게 불편해요. 그냥 알려줘요.

 

(너무 막무가네였기 때문에 전 전화한 그 꼬마 애의 부모님을 좀 바꿔달라고했죠)

 

고객 : 아빠 이 여자가 아빠 바꿔 달래...

 

(그 꼬마 애의 뒤로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가입자의 말소리가 들리더군요)

 

고객 : 비밀번호 알려 달라고 그래... 빨리!!

 

아빠 : 여보세요...

 

이혜영 : 안녕하세요. **텔레콤인데요. 비밀번호 열람 때문에 그런데요 명의자와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아빠 : 제 아들이요?? 6개월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콰당 그럼 사실이란말야? -_-;; 그 때부터 미안해 지더군요...

아무 말도 못하고 잠시 정적이 흐르는데 아빠가 딸에게 묻더군요)

 

아빠 : 얘야 비밀번호는 왜 알려고 전화했니?

 

딸이 화난 목소리로

 

고객 : 엄마가 자꾸 혁이 (그 가입자 이름이 김혁이었거든요)

         호출번호로 인사말 들으면서 계속 울기만하잖아.

         그거 비밀번호 알아야만 지운단 말야..                                          

(전 그때 가슴이 꽉 막혀왔습니다)

 

아빠 : 비밀번호 알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혜영 : 아??? 예... 비밀번호는 명의자만 가능하기 때문에

            명의변경하셔야 합니다. 의료보험증과 보호자 신분증 넣어 주셔도 가능 하지요...

 

아빠 : 알겠습니다...

 

(전 감사합니다로 멘트 종료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이혜영 : 죄송합니다..... 확인후전화주십시요...

 

아빠 : 고맙습니다.

 

이혜영 : 아... 예....

 

그렇게 전화는 끊겼지만 왠지 모를 미안함과 가슴 아픔에 어쩔 줄 몰랐죠...

전 통화종료 후 조심스레 호출번호를 눌러봤죠... 역시나...

 

"안녕하세요. 저 혁인 데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멘트가 녹음되어있더군요.

전 조심스레 그 사람의 사서함을 확인해 봤죠.

좀 전에 통화한 혁이라는 꼬마 애의 아빠 였습니다.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혁아... 아빠다... 이렇게 음성을 남겨도 니가 들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오늘은 니가 보고 싶어 어쩔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혁아

아빠가 오늘 니 생각이 나서 술을 마셨다. 니가 아빠 술마시는거 그렇게 싫어했는데...

안춥니? 혁아... 아빠 안보고싶어???"

 

가슴이 메어 지는 거 같았습니다...

그날 하루을 어떻게 보낸 건지...

아마도 그 혁이의 엄마는 사용하지도 않는 호출기 임에도 불구하고

앞에 녹음되어 있는 자식의 목소리를 들으며 매일 밤을 울었나 봅니다.

그걸 보다 못한 딸이 인사말을 지우려 전화를 한거구요...

가슴이 많이 아프더군요.

일 년이 훨씬 지난지금이지만 아직도 가끔씩 생각나는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 가족들을 위해 부족한 저지만 다시 한번 기도 드립니다.

이제는 혁이 엄마가 더는 울지 않으시길

절대로 잊을 순 없는 거지만 이젠 덮어두시고 편히 사시길...

그리고 제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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