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사랑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심여수
하늘이 말갛게 열리고
대지의 흙내음이 향긋하고
한자락 서늘한 바람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그 곳에서
문득 걸음을 멈춘건 미련 때문은 아니었다
포스락 포스락 초록의 길이
빨강의 길이 노랑의 길이 아름답게 열리는
그러나 너무나 한적하여 눈물이 정적을 깨는
그 곳에 간 건 설움 때문은 아니었다
아늑한 숲길을 돌며
바람 한 점에도 뼈가 으스러질 것 같아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면서도
누군가 두팔 벌려 안아 줄 사람을 기다린건
계절이 가져다 준 외로움 때문은 아니었다
하늘을 보고자 바람을 보고자 한건 아니었다
내가 나를 안고 지칠 때까지 오르고 또 오르고자
느끼고 또 느끼고자 내바람에 겨워
산자락에 아무렇게나 누워 * 듯이
마구 뒹굴며 진정 웃고 싶은건
굳이 그리움 때문은 아니었다
하늘은 없는 듯이 산은 없는 듯이
그저 내가 있어 계절따라 도망가는
그대를 안고 영혼의 정원으로
초대하고 싶은 마음은
나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대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꼭 사랑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내가 살아있어 그렇게 함께 머물러
그대 숨소리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곳에선 나도 그대도 심장을 펄덕이며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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